노아가 방주를 건조하는 데 걸린 시간은 대략 100년이라고 한다. 세상 사람들이 매일 같이 취하고 음행 하면서 시간을 보내는 동안, 노아는 그들의 조롱을 듣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을 청종했다. 매일 같이 나무를 베고 다듬고 그것들을 제단 쌓듯 쌓아 올렸다. 삶 자체가 예배였던 시간이라고 해야 할까.
본 적도 없는 것을 100년 동안이나 만들면서 얼마나 많은 좌절과 시행착오를 겪었을까. 주변 사람들은 노아가 미쳤다며 비웃었을 것이고, 방주가 거의 다 지어져 그 어디에서든 보이기 시작했을 때에는 누구든지 노아를 안주 삼아 한잔했을 것이다. 방주를 짓는 것 그 자체로 신실한 순종과 고난의 좁은 길이었다.
드디어 방주가 완성되고 노아의 가족들과 동물들이 방주에 들어갔다. 곧 홍수가 시작되어 그 안에서 일 년이라는 시간을 보내는 동안, 한 가장이 짊어지고 있었을 책임감과 긴장감은 방주만큼 거대했을 것이다. 쉴 틈 없이 흔들리는 배, 사라진 생명들에 대한 슬픔, 떨어져 가는 식량과 언제 땅에 닿을지 모르는 막연함. 이 모든 것들이 다 노아의 몫으로 그의 어깨를 짓눌렀을 것이다.
마침내 땅이 마르고 모든 생명이 멸절한 세상으로 걸어 나왔을 그의 심정은 또 어떠했을까. 아마 참아왔던 안도의 한숨을 낮고 길게 내뱉었을 것이다. 일 년 동안 자신만 쳐다보던 가족과 동물들이 세상으로 눈을 돌려 기지개를 켰을 때 그의 다리는 힘이 풀렸을 것이다. 안도감과 감사함으로 자연스럽게 제단을 쌓았을 것이다.
그렇게 하나님께 감사의 예배를 드리고 난 후 노아의 바로 다음 행동은 '포도나무를 심은 일'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군생활을 하고 있는 나도, 보통 몇 주 간의 지독한 훈련이 끝나고 나서는 동료들과 벼르던 막걸리를 한 잔 하곤 했었다. 나 말고도 많은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노아에게 이입할 수 있지 않을까.
그것은 노아의 이유 있는 한 잔, 기다렸던 한 잔, 작정했던 한 잔이었을 것이다.
100년간의 인내, 1년간의 표류, 모두 죽고 없어진 세상에서. 작정하고 마셨으니 취해서 벌거벗은 상황쯤이야 너무도 개연성 있는 전개라는 생각이 들지만, 그로 인하여 하나님께서 깨끗하게 하신 새로운 세상에 다시금 죄가 시작되었다. 함은 아버지의 벌거벗은 모습을 욕되게 하였고 저주를 받았다. 새로운 죄의 씨가 뿌리를 내리기 시작했다. 그 죄악은 함의 자손을 통하여 끊임없이 이어지며 지금까지 하나님을 대적하고 하나님의 아들들을 위협한다.
아담이 선악과를 먹고, 가인이 아벨을 죽이고, 죄가 세상을 덮었다가 이제 막 사라졌나 했는데 이렇게 허무하게 다시 시작되었다. 인간의 본성이 악하기 때문에 애초에 죄라는 것이 없어질 수 없는 것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아무리 의로워 보이는 사람이라도 사람이기에 죄를 짓게 되고, 죄를 지으면 징벌이 자신과 자손에게 돌아온다는 것은 성경 속에서 수도 없이 찾아볼 수 있다. 반석을 쳐서 물을 냈던 모세도 그랬고, 밧세바를 범했던 다윗도 그랬다. 홍수 심판까지 지나온 당대의 완전한 자, 노아의 한 잔에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지만 그렇다고 징벌을 면할 순 없었다.
죄에는 징벌이 따른다는 성경의 교훈이 오버랩되었고, 그 어떤 '한 잔'이나, 혹은 그 어떤 죄지음에 아무리 그럴듯한 핑계를 붙여봤자 소용없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나는 4년 전 술을 끊었지만, 지금도 어떤 특별한 경우를 물색하며 술 마실 궁리를 하는 자신을 발견하곤 한다. 요즘 너무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기 때문에, 정들었던 부대를 떠난다는 이유로, 자녀들을 양육하며 느끼는 좌절감을 핑계 삼아 '한 잔만 마실까?' 라며 기회를 엿보고 있었던 스스로를 돌아본다. 하지만 그 어떤 한 잔이나, 혹은 그 어떤 죄에 아무리 그럴듯한 핑계를 붙여봤자 저지르고난 뒤에는 소용이 없다는 것이 성경의 가르침이다.
구원받은 성도로서 죄를 멀리하고 항상 경계해야 하는데, 한편으로는 죄를 지을 수밖에 없는 인간이라서 매일 같이 무너지고 또 좌절한다. 다행히 예수께서 십자가 보혈을 흘리심으로 천국에 갈 수 있는 길은 열렸으나, 죄는 끊임없이 우리를 넘어뜨리고 또 종국에는 그 죄로 인해 벌을 받게 된다. 온갖 고초를 겪은 노아의 한 잔에는 그럴듯한 이유가 있었지만 그 때문에 죄와 징계가 뒤따랐다. 지금도 어려움이 닥치면 막걸리 한 잔이 떠오르지만, 노아를 생각하며 어금니를 꽉 물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