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념] 20230325
글이 고플 때, 글 앞에 앉을 수 있다는 것이 크나큰 은혜였다는 것을 뒤늦게 깨달아 가는 요즘이다. 불규칙한 패턴으로 널따랗게 퍼져있으나 신기하게도 딱 들어맞은 정갈한 문단 앞에 오래도록 아주 머물고 싶은 나날이다. 어떤 무엇, 어떤 누구, 신경을 빼앗길 만한 아주 작은 단위의 그 어떤 것이든 방에 처박아, 절대 열 수 없는 온갖 자물쇠를 그 문에 걸어 닫고, 그 방문에 기대어 숨을 가쁘게 몰아 쉬며, 숨이 가쁘도록 날 뒤쫓아 온 일상 그 고약한 것을 아주 잊어버리고 싶다.
떠나보내는 것에 유난히도 쥐약인 난 여전히 크지 못하고 어린아이로 남아 있다. 애도와 묵념은 도저히 배움으로 성장되지 않고 미련하게 지나치게 오래 남아 늘 후회만 남기는 특성은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나의 성격이 된다. 5살 어린아이인 채로 자라지 못한 부분이 비단 그뿐일까. 여전하게도 실망스러운 나 자신을 새삼스럽게 여기지 말자고.
시선을 돌려 아름다움을 찾아가고 싶다. 소소하고 속물스런, 나에게서 벗어난 내가 새롭게 뜬 눈으로 걸어가고 싶은 곳. 틀림으로부터 소거법으로 찾아가는 정답. 다른 차원으로 뻗어나간 새로운 갈망으로, 굽어진 관절을 펴 뻐근하도록 팔을 늘리고 그것도 모자라 다섯 개의 손가락을 있는 힘껏 펼쳐 손아귀에 쥐고픈 대상. 을 천천히 묵상하고 또 묵상하고.
매일 아침, 2호선 합정에서 당산으로 가는 길. 터널에 있던 전철이 갑작스레 강 위에 놓이면 핸드폰을 보거나 눈을 감고 있던 지하철 안 이들이 일제히 반짝거리는 강을 눈동자에 담는다. 나도 그런다. 눈을 감아도 잔상이 남을 정도로 강을 오래도록 쳐다본다. 흘러감, 흘려보냄이 내 마음에도 일어나길 원하면서. 강을 오래도록 바라보는 모든 이들도 나와 같이 흘러감을 묵상하는 것일까. 그들도 나와 비슷하게 소소하고 속물스러운 자신들의 일상을 흘려보내고 또 이를 묵념하며 상처를 치유하고 싶은 것일까. 무슨 마음으로 반짝임을 그토록 허겁지겁 눈에 담는 것일까.
강에 들어갔다 나오는 행위로서, 거듭남을 신과 사람 앞에서 공인받는다는 침례. 얼마 전 강을 지나치면서 매일 아침 이곳을 오가는 내 일상도 거듭나는 행위이길 소망했다. 이제야 그 행위가 자격을 갖추었음을 인정받는 축하의 세레모니가 아니라 지독하게도 나를 뒤쫓아 온 나, 비로소 죽은 나를 향한 애도와 묵념이었음을 덜컹대는 지하철 안에서 깨닫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