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Carrot Jul 09. 2020

지하철에서 짜증 난 그 여자

아가씨, 말이 심하네



당시의 나는 매일 같이 노량진 학원에서 하루의 반 이상을 살면서 생활하고 있었다. 그날도 어김없이 전철에 피곤에 찌든 몸을 싣고 집으로 가는 중이었다.


운이 좋게 지하철에 자리가 있어 좌석에 편안하게 앉아 양 귀에 이어폰을 끼고 눈을 감았다. 그 안락함에 잠에 들랑 말랑하고 있는데 갑자기 누군가가 고함을 치는 소리가 들렸다. 꽤나 높은 음의 소리라 무슨 소리인가 하고 눈을 떴는데 20대 초반으로 보이는 여자분이 50대 후반으로 보이는 아저씨에게 인상을 쓰며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무슨 일인가 싶어 한쪽 이어폰을 빼고 그들의 대화를 들었다.

여성분이 지하철을 탔는데 음식이 담긴 종이컵을 들고 탔었고 그것을 먹고 있었다. 그것을 보고 있던 한 중년의 아저씨가 그 여자분에게 한 마디함으로써 사건은 터졌다.



아가씨, 전철에서 음식을 먹으면 안 되지~





지하철이라는 공공장소에서 음식을 먹는 것은 다른 승객들에게 실례인 것이 맞다. 그리고 그 모습을 본 시민의식이 투철한 아저씨가 실례를 저지른 그 사람에게 한 소리 할 수 있는 것도 맞다. 충분히 그럴 수 있는 일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아저씨의 지적을 들은 여자분은 상당히 기분이 나빴나 보다.



아저씨가 무슨 상관이세요.


그 여자분은 인상을 있는 대로 쓰며 그렇게 말했다. 그녀의 어감은 누가 들어도 기분 나쁠 만하게 들렸다. 젊은 아가씨의 당돌한 대답에 기분이 상한 아저씨도 말을 더 보탰다.



무슨 상관이냐니?
아가씨, 말이 심하네. 지하철에서 음식을 먹는 건 당연히 안 되는 거 몰라?

중년의 그 아저씨도 상당히 기분이 상하셨는지 언성이 높아졌다. 그런데 그 여자분은 거기에 대고 더 가관인 말을 해버렸다. 듣는 둥 마는 둥 했던 나조차 놀라 입을 딱 벌릴 정도였다.




아저씨가 무슨 상관이세요.
제가 음식을 먹던 말던, 무슨 상관이냐고요. 아저씨 갈 길 가세요. 재수 없어 진짜.




재수 없다니. 내가 아저씨라면 벙쪄서 아무 말도 못 했을 거다. 어떻게 그런 말을 그 많은 사람들 앞에서 할 수 있을까. 그 자리에서 여자분의 말을 들은 승객들 모두 인상을 구겼고, 그분에게 이제 그만하라는 눈치 주는 분위기가 되었다. 하지만 그분은 아무것도 들리지도, 보이지도 않았나 보다.












그 여자분은 충격적인 말을 들은 아저씨에게 그것을 받아들일 시간적 여유를 주지 않고, 그것만으론 부족했는지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아마 친구에게 전화를 건 것 같았다. 본인이 지금 지하철에 음식을 가지고 탔는데 웬 이상한 아저씨가 계속 자신에게 뭐라고 한다며 바로 앞에 그 당사자를 두고 정말 열심히도 흉을 봤다. 그리고 그 여자분과 통화하는 친구는 거기에 동의했나 보다.




그러니까 말이야. 짜증나 죽겠어.





아저씨는 어이가 없으면서도 화가 많이 나셨는지 그 여성분을 향해 계속 화를 내셨다. 그 여성분 또한 그에 지지 않고 아니, 아저씨를 잡아먹을 듯이 몰아세웠다. 그러다 결국 보다 못한 주변 사람들이 아저씨를 말렸다. 아저씨 저런 사람 그냥 무시하세요. 라며 화가 난 아저씨를 지하철의 몇몇 승객분들이 진정시켰고, 그렇게 갑작스럽게 일어난 지하철 소음 사건은 마무리되었다.











그런 경우는 처음 봤는데 너무 충격적이었다. 물론 지하철에선 음식을 먹지 않는 게 맞다. 아저씨 또한 굳이 하지 않아도 될 이야기를 한 걸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여자분은 자신보다 훨씬 나이가 많은 아버지 뻘의 아저씨에게 그런 식으로 막말을 할 수 있는 권리는 없다.


듣고 있는 내가 다 민망할 정도였다. 주변에 있던 다른 승객들도 말리고 싶지만 그 젊은 여자분이 자신은 잘못한 게 하나 없다는 안하무인의 태도로 나오는 것에 막상 나서기엔 부담스러웠을지도 모른다. 자신보다 훨씬 나이 많은 아저씨에게도 그렇게 막말을 하는데 내가 말린다고 하면 어쩌면 똑같은 상황이 벌어질 것이 뻔하고 상황은 더 악화되었을 것이라 생각했다. 당시에 나는 그 상황에서 그 둘의 다툼에 끼어들기는 솔직하게 겁이 났다.










하지만 그 상황을 지켜보는 내내 아저씨가 너무 안쓰러웠다. 그날 얼마나 상처가 되셨을까 싶기도 하고 혹시나 마음이 여린 사람인 아저씨가 집에 가서 누군가에게 화풀이를 하거나 자신보다 훨씬 어린 딸뻘의 젊은이에게 욕을 봤으니 우울해 하진 않으셨을까.


만약 내 부모님이 그런 상황이었어도 가만있을 수 있을까 생각해보니, 아니다.


나의 부모님이 그런 일을 겪는다면 결코 그렇게 방관자처럼 바라만 보고있진 못할 거라 생각이 들었다. 일단 부모님이란 생각에 감정이 먼저 앞서겠지만 말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다음번에 이런 상황을 또 한 번 마주한다면 용기 내어 내가 도울 수 있는 분을 돕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의 부모님이라고 생각하면 좀 더 쉽게 용기를 내지 않을까. 언젠가 똑같은 상황이 또 눈앞에서 벌어진다면 용기 내어 나설 수 있는 내가 되길 바란다.





작가의 이전글 그날 친구 하나를 잃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