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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arrot Jun 18. 2020

장풍 쏘는 초등학생

두려울 것 없는 해맑은 김초딩

두려울 것이 없는 해맑은 김초딩




노느라 바쁜 어린이 골목대장



초등학교에 들어가기 전까진 당시 살던 아파트 동네의 또래 친구들과 단지 앞에 모여 얼음 땡이나 땅따먹기, 고무줄 놀이 같은 별의별 놀이를 다 하면서 날이 어두워질 때까지 함께 어울려 놀았다. 정확한 이유는 기억나지 않지만 당시 나는 골목대장이었다. 친구들과의 싸움은 일절 하지 않았는데 아마도 게임을 잘 이끌어서 그런 것 같다.


그래서 나의 어린 막냇동생도 대장의 권한으로 게임에 껴줄 수도 있어서 내심 뿌듯해 했었다. 지금 돌이켜보니 무더운 여름 밤 9시까지 단지 앞에서 땀에 흠뻑 젖도록 놀았던 적도 있었는데, 부모님이 맞벌이를 하셔서 그렇게 늦게까지 놀아도 나무라는 사람이 없었기 때문에 한정없이 놀았던 것 같다.







몸으로 부딪히며 체득하는 초등학생


초등학교에 입학하고 나서는 학교에서 사귄 친구들과 주로 자전거를 타고 동네를 달리곤 했는데, 이때부터 자주 넘어지기 시작했다. 어느날은 교정 안의 내리막길을 내려가기 위해 자전거를 타고 쌩쌩 달리다가 굴렀던 적이 있다. 그날은 팔이고 다리고 온몸이 성한 곳이 없이 피가 나고 멍이 들었었는데, 아파서 울면서도 기어코 다시 일어나 자전거를 타며 친구들과 놀았었다. 그 정도로 친구들과 어울려 노는 것을 좋아하기도 했고, 아픈 것보단 새로운 것을 경험하는 것을 좋아하는 아이였다.


당시 유행했던 롤러스케이트와 롤러블레이드도 누군가의 도움 없이 넘어지면서 혼자 타는 법을 터득했다. 처음엔 너무 많이 넘어져서 온 몸에 상처가 남아나지 않았지만 겁없는 초딩은 결국 둘 다 잘 타게 되었다. 그래서 잘 타는 거 자랑한다고 설치다 또 많이 다쳤었다.






장난기 많은 초등학생의 학원생활


어머니께서 학원에 등록해 주셔서 피아노와 태권도 학원에 등록하여 다니게 되었다.


태권도는 둘째 동생과 같이 다녔는데 나보다 체구가 작은 주제에 태권도를 더 잘해서 질투했었다. 그래도 둘 다 품띠까지 취득할 정도로 꾸준히 다녔다.


피아노 학원에서는 피아노를 매일 같이 배웠지만 연습을 적게 하고 빨리 나가서 친구들과 놀고 싶은 마음에 동그라미 그리는 메모지에 한번 연습하고 두세 번을 더해 동그라미를 그렸다. 그래서 당시 피아노 선생님한테 길다란 30cm 자로 맞았는데 자를 세워서 때리셔서 무척이나 아팠다. 그래도 피아노를 연주하는 것을 좋아했기 때문에, 나름 열심히 배워서 피아노 대회도 나가 최우수상을 수상했었다.




 

-장풍 쏘는 김초딩


어릴 적부터 하도 장난기가 많아서 에피소드가 꽤 많은 편인데 하나를 말하자면 학교 유리창을 깨버린 적도 있다.


초등학교 때 있었던 일이다. 우리 반은 이미 종례를 마친 상태였고, 다른 반 친구랑 함께 집에 가려고, 같이 종례받았던 같은 반 친구랑 종례 중인 친구의 반 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평소처럼 친구와 장난치며 놀다가, 격했는지 내 몸이 종례중이던 반 유리창에 부딪혔는데 유리창이 산산조각이 나버렸다.

와장창-

아직도 산산이 흩어지던 유리 파편들이 기억에 아른거린다.


첫번째, 모든 시선이 내게 집중되었고,

두번째, 시선들은 깨진 유리 파편으로 옮겨갔다.

세번째, 시선들이 다시 내게 돌아왔다.


다행히 나는 다치지 않았지만 종례 중이던 그 교실의 선생님과 다른 반 친구들이 놀라서 날 바라보던 그 모습이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친구들과 선생님들은 장풍도 쏠 줄 아냐며, 나를 새로운 눈으로 보셨다. 유리창은 학교 기물 파손에 해당되어 유리창 값을 물어줘야 했다. 유리창 값을 부모님께 이야기하려 했을때 어찌 그리 조심성이 없냐며 혹시나 화를 내시진 않을까, 걱정스러웠다. 하지만 나의 생각과는 다르게 부모님은 어디 다치진 않았냐며 물으시곤, '우리 딸 힘도 세지!’하고 웃어넘기셨다.


지금에와서 생각해보니 내가 어릴 적부터 장난기도 많으면서도 마냥 밝을 수 있었던 건 부모님의 영향이 큰 것 같다. 학교 유리창을 깨서 물어줘야 한다고 했던 일이 있고 난 뒤부턴 내게 고민이 생기거나, 큰 일이 생겼을때 부모님과 상담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이 되었을 정도였다.








어릴 적의 나를 돌아보니 크고 작은 일 속에서 성장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처음하는 일에 겁을 집어먹기 보단 일단 부딪혀 보자는 마음가짐으로 임했고, 그 속에서 넘어지고 깨지면서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 냈다. 남들에게 보일 정도로 뚜렷한 무언가를 만들어내지는 못하더라도 나 스스로에게 부끄러움이 없도록 최선을 다하며 아등바등 살아 온 것이다.


초등학교 때 내가 깬 것은 유리창이었으나, 실질적으로는 내 안에 잠들어 있던 장풍으로 새로운 것에 대한 두려움을 부순 것이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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