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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arrot Jun 17. 2020

공무원 시험 준비 3년, 창살없는 감옥을 탈출하다

3년의 공시 그 후, 잃어버린 나를 찾았다.

공무원 시험 준비 3년, 창살없는 감옥을 탈출하다

약 3년의 공시생 생활




 나의 약 28년 인생을 통틀어 이보다 더 어두웠던 적은 없었다.


공부 시작에 들어가기 앞서, 카톡을 삭제하고 지인들과의 연락을 모조리 다 끊었다. 오로지 가족이랑 안부 연락 정도만 했고, 세상과 단절하여 독하게 공부하겠다 마음먹었다.



2017년 7월, 무진장 더웠던 여름이었다. 누구나 도전해볼 수 있는, 세상에서 가장 공평하다는 공무원 시험에 대한 도전을 시작한 달이었다.


학원을 알아보기 위해 뜨거운 뙤약볕 속에서 열심히 발품 팔아 종묘를 거쳐 노량진 학원가로 왔다. 공무원 수험생에게 가장 유명했던 공단기부터 가 보았는데 강의실은 300명의 수험생이 다닥다닥 앉아서 수업을 들어야 하는 그런 공간이었다. 나의 학습 특성상 그런 곳에서 선생님과 아무런 아이컨택없이, 자유로운 대화 없이 삭막하게 공시 스타트를 끊고 싶지 않았다. 그곳에서 현장 강의를 들을 바에 인강을 선택하는 것이 상대적으로 더 저렴하고, 이득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비교적 학원생 수가 적은 타 경쟁 학원에 등록했고, 7월 중순부터 학원 일정에 맞춰 수업을 듣기 시작했다.


매일 아침 새벽 6시에 일어나 아침밥을 먹었고, 7시에 피곤한 몸을 전철에 실었다. 7시 반쯤 학원에 도착하면 자습하고 있는 몇몇 수험생들 사이에서 나도 자습을 시작했고, 8시면 학원 수업이 시작되었던 것 같다. 12시까지 수업을 듣고 1시까진 점심시간이어서 식당가에 가서 항상 혼자 밥을 열심히도 먹었었다.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나는 것이 싫어서 더 많이 먹으려 했었다.


학원을 4개월 정도 다녔는데, 4개월 동안 오로지 혼자 다녔다. 그곳에선 친구를 사귀지 않았었는데, 첫 공부할 때 독하게 기계처럼 공부하자고 스스로 다짐한 것 때문에 고독을 자처한 것이었다. 다행히 내가 외로움을 덜 타는 사람이라서 힘들진 않았다. 행색은 폐인처럼 하고 다녔고, 오로지 수험서만이 나의 친구이며 가족이다,라고 생각했다. 


 1시부터 다시 오후 수업이 시작되고 6시에 수업이 끝나면 7시까지 저녁을 먹고 나서, 그 이후론 자습시간이었다. 그럼 나는 10시까지 학원에서 자습을 하고 지친 머리를 마사지하며 전철에 다시 몸을 싣고 밤 11시쯤엔 집에 도착했고, 12시에서 1시까지 복습 겸 한 번 더 수험서를 훑어보고 잠에 들 수 있었다.


그렇게 4달을 보내고 나니 이제는 학원 수업보단 혼자서 공부하는 시간을 늘려야 할 때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11월 한 달 동안은 자습실에서 하루 종일 학원에서 진행하는 7급 전용 자습반을 신청해서 좀 더 나의 개인적인 공부에 집중했다.





 그러다 평소와 다름없던 주말에 평소처럼 공부하고 집에 가는 길에 몸이 이상함을 느꼈다.

속이 더부룩하고 식은땀이 났다. 아, 더 이상은 못 걷겠다 싶어서 지하철에서 내려 의자에 앉아 상태가 나아지길 기다렸다. 그러다 물이라도 먹으면 나아질 것도 같아 편의점을 가려고 일어서는데 갑자기 눈 앞이 깜깜 해지며 시야가 보이지 않았다. 눈앞이 일순 검은 곰팡이처럼 변하더니 그대로 의식을 잃었다. 


 다시 눈을 떴을 때는, 찬 대리석 바닥에 누워 있는 몸이 느껴졌고, 정신 차리라며 내 얼굴을 두드리는 아주머니의 손바닥과, 놀란 눈을 한 어느 할아버지, 어딘가로 전화하는 다급해 보이는 아저씨가 보였다. 다행히 오래 정신을 잃은 것은 아니었고, 내 손을 주물러주시고 물을 가져다주신 친절한 부천 사람들 덕분에 금방 정신을 차렸던 것 같다.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아찔하고, 도움의 손길을 건네주셨던 분들에게 진심으로 감사하다.)


그때 태어나 처음으로 구급차를 타봤다. 지금 생각해보니 육체적인 한계는 이때부터였다.





 12월 초, 이 이상의 서울에서의 수험생활은 경제적 부담밖에 되지 않기 때문에 본가로 내려가서 공부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본가로 와서 도서관에서 매일 출퇴근 도장 찍듯 부지런히 다녔다. 도서관 휴무날은 독서실에 가서 공부했고, 독서실마저 쉬는 명절날엔 집에서도 흐름을 놓지 않으려 필사적으로 공부했다. 매일 아침 도서관에 가장 먼저 도착해서 불을 켜는 것이 일상이 되었고, 도서관 직원분들의 얼굴을 어느새 다 알게 되었다.




그렇게 1년이 지났고, 2018년 8월 첫 번째 시험을 쳤다.


시험날 아침, 아버지께서 시험장에 직접 데려다주셨다.

‘우리 딸은 할 수 있어!’라는 아버지의 한 마디에 치열하게 공부했던 지난 수험생활이 하나하나 떠올라 나도 모르게 눈물이 차올랐다. 하지만 아버지께 약한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아 꾹 참아냈다. 곧 시험을 본다는 긴장 때문에 손에 땀이 났지만 파이팅 넘치는 모습으로 아버지를 배웅하고 시험장 안으로 들어갔다. 일찍 온 덕분에 책상과 의자의 삐걱임은 없는지, 기울어져 있지는 않은지를 점검해 볼 수 있었다. 혼자 조용히 필기했던 것들을 다시 되짚어 보았고, 시험 시작 전 5분 전엔 마음을 진정시키려 명상을 했다.


'최선을 다했어, 뭐가 됐든 공부한 만큼 하자! 후회 없이 풀고 나오는 거야.'


그렇게 나의 첫 시험이 끝났다.


시험을 보고 나오는데 현실감이 없었다. 잘 봤는지 못 봤는지 조차도 짐작할 수 없어서 일주일 정도는 멍하게 시간을 보냈다.


일주일 후, 결과를 보니 처참했다.


 분명 후회 없이 공부했고, 쉬는 날도 없다시피 공부했는데, 왜 이 정도밖에 안 나왔지? 공부방법이 잘못되었나? 하는 생각으로 며칠 밤낮을 베개에 머리를 묻고 좌절하고, 나 자신을 벼랑 끝으로 한없이 추락시켰다. 공부를 한 것도 나고 시험지를 보고 시험을 친 것도 나였기 때문에 탓할 건 오로지 나밖에 없었다.





1년 동안 공부해본 경험으로 앞으로의 시험을 위해 나의 어떤 점이 부족한지 스스로 체크하고 그에 맞춰 새로운 마음가짐으로 다시 수험생 생활을 시작했다. 다시 차갑게 불타올랐다.


순 공부시간을 더 늘렸고, 헛되게 보내는 시간을 줄이려고 노력했다. 점심은 집에서 싸온 도시락을 먹고 저녁은 삶은 계란과 토마토를 먹었다. 그렇게 10달을 넘게 삶은 계란을 매일같이 먹으니, 계란만 보아도 신물이 났다.





2019년 8월 두 번째 시험을 쳤다.


나의 약점을 보완했기 때문인지 보완한 과목은 확실히 점수가 많이 올랐다. 세네 과목은 합격선이었으나, 첫 번째 시험에서 성적이 좋았던 과목들이 내 발목을 잡았다. 그래도 두 번째 겪는 것이라 그런지 처음보단 충격이 덜하고 무던해졌다. 하지만 이 짓을 1년 더? 해? 진짜?라고 무의식적으로 생각했고, 스스로 지쳐가고 있다는 것을 얼핏 느낄 수 있었다.


두 번째 시험을 치고 난 후, 제대로 슬럼프가 찾아왔다. 육체적으로 힘든 것도 있지만, 정신적으로 나는 도대체 뭘 위해서 나의 청춘을 보내고 있는지 다시 한번 생각하며 공시를 놓고 싶은 마음이 저 구석에 조금씩 생겨나기 시작했다.





2020년이 되었다.


여느 날과 같이 아침에 책을 펴고 공부를 하는데, 집중이 되지 않았다. 문득 공무원이 되기 위해 공부하고 있지만, 과정이 이리 불행하다고 느껴지는데 되고자 하는 것을 이루었을 때 과연 행복할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만약 이걸 그만두면 뭐해 먹고살아야 하지, 포기하면 이도 저도 아닌 사람이 되는 게 아닐까. 별별 생각이 다 들었다. 왜 나는 이 길을 걷고 있지? 이제 그만하면 안 될까. 그만두면 가족들은 날 뭐로 생각할까. 친구들은?


그렇게 독하게 하더니, 결국 안됐네 하고 패배자로 여길까. 이런 생각으로 한 달가량을 혼자 고민하고 주위 시선에 대한 걱정만 늘어놓다가 드디어 결정을 내렸다.


이만하면 나 스스로 충분하다 여겼고, 남의 눈을 두려워할 것이 아니라 나는 나 자신을 두려워해야 했다. 공시를 시작하기 전의 나는 하고 싶은 것은 무엇이든 도전하면서 사람 만나는 것을 즐기고, 무엇을 하든 열심히 하는 사람이었다. 그런 나를 다시 되찾고 싶었다. 다시 내가 되고 싶었다. 공시를 위한 3년의 시간은 내가 아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지금, 나는 다시 내가 되었다.


잃어버린 나를 되찾았기에 과거의 어두웠던 나를 돌아볼 수 있는 지금 이 순간이 그저 감사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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