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를 생각하며 키운 채소
집에서 금이야 옥이야 키운 자식을 세상에 내보내는 마음이 이런 걸까. 오늘은 우리가 유기농으로 기른 감자와 당근, 그리고 양배추를 근처 하나로마트에 내놓는 날이다. 햇볕에 반짝이는 흙먼지가 아직도 채소 껍질에 살짝 남아 있고, 땅속에서 갓 꺼낸 흙 냄새가 코끝에 은근히 맴돈다. 땅과 모두를 죽이는 화학 비료 대신, 하루 여덟 시간씩 온몸으로 뒤집고 고르며 만든 천연 퇴비를 뿌려 키운 채소들이다. 이 과정은 인건비로 계산이 불가능할정도로 많은 시간이 들었지만, 우리는 그게 손해라고 생각한 적이 없다. 그 시간만큼 흙과 이야기하고 자연과 연결되는 시간이 나에게 허락되었다는 뜻이니까. 즉, 자연을 아끼고 채소를 먹을 사람을 생각하며 작물을 키우는 그 모든 행위가 나 자신에게 행복한 일이 되는 것이다.
우리는 채소를 파는 방식에도 작은 실험을 했다. 일회용 비닐 대신 진열대 위에 신문지를 바스락거리며 곱게 깔고, 그 위에 채소들을 정성스레 놓았다. 양파 봉투도 신문지를 접어 직접 만들었다. 플라스틱 없는 진열대 위에 당근의 주황빛, 감자의 누런빛, 양배추의 초록빛이 어우러져 색연필로 그린 듯 다채로웠다. 하나로마트 직원은 “우리도 환경을 위한 전환을 꿈꾸고 있었다”며 우리의 도전을 반겼다. 처음엔 “흙이 떨어져 지저분하다”며 불평하던 다른 판매자들도, 긴 대화 끝에는 “나도 한 번 해볼까?” 하며 동료가 되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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