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는 즐거움에 대하여
내가 학생일 때는 공부가 정말 싫었다. 나를 평가하는 시험으로 가득한 학교 공부에 진절머리가 났다. 나에게 시험이란 사람을 이리저리 재단하는 도구였다. 심지어 내가 정한 기준이 아닌 것으로 나를 재단하는 것이 참을 수가 없었다. 내가 어떤 것에 관심이 있는지, 그들은 신경 쓰지 않았다. 그저, 그들은 나에게 과제를 줄 뿐이었고, 나는 내가 좋든 싫든 최선을 다해서 그 과제를 완성해야 했다. 열심히 하지 않으면 사회가 내 불안함을 마구 자극했기 때문에, 나는 '그들이 원하는 대로'되는 것이 최선이라고 생각했다.
그러자 상황은 더 악화되었다. 그들은 '내가 좋아하는 것'조차 평가하기 시작했다. 나는 방과 후에 취미로 중국어를 배우고 있었다. 중국어를 배운 지 3개월이 지난 어느 날, 나는 엄마의 잔소리에 떠밀려서 자격증 시험을 봐야 했다. 그렇게 중국어는 즐거운 취미에서 '잘 해내야 하는 것'으로 바뀌었다. 그런 루틴을 계속 반복하다 보니, 무언가를 배울 때마다 나조차도 나를 평가하게 되었다.
"처음 배우는 것 치고는 잘하네?"
"더 완벽하게 해야 하지 않을까?"
"그거랑 관련된 자격증을 따면 스펙이 더 좋아지지 않을까?"
왜 남들이 취미를 직업으로 삼지 말라고 했는지 어렴풋이 알 것 같았다. 나는 다행히도 취미가 많은 편이라서, 좋아하던 것이 직업이 되어도 다른 취미가 금세 생겼다. 하지만 그 취미는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나는 항상 그 취미로 무언가를 '생산'해내야 한다는 압박감에 시달렸다.
마치 내가 '나의 취미'에게 이렇게 말하는 것 같았다.
내가 너를 이만큼 좋아해 줬으면 너도 뭔가 나에게 줘야 하는 거 아니야?
나는 '내가 좋아하는 것'들에게 마구 소리치고, 다그쳤다. 그럴수록 '나의 취미'는 나와 멀어져 갔다. 무척 속상했다. 그리고 이 상황이 뭔가 익숙했다.
할머니는 나에게 항상 넘쳐나게 사랑을 주지만, 그 사랑에는 늘 이런 말이 동반한다.
"내가 너를 어떻게 키웠는데, 전화도 좀 자주 혀. 그리고 외국 나갈 생각은 하지 말고. 그럼 내가 널 못 봐서 얼마나 속상하겠니?"
이 말 뒤에는 많은 의미가 담겨 있다. 첫째로는 할머니가 나에게 해왔던 노력에 대한 인정 욕구, 둘째로는 할머니가 나에게 원하는 보상과 그 방법, 셋째로는 내 행동을 제한할 자격이 있다는 것이 포함되어 있다. 그래서 나는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속으로 이런 생각을 한다.
"할머니, 저도 할머니가 저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잘 알아요. 하지만 저는 외국에서 제 할 일을 해야 하는 걸요. 저도 할머니를 많이 사랑하지만, 제가 하고 싶은 일도 저에게 중요해요."
하지만 차마 이런 말을 하지는 못하고, 할머니와 거리를 두게 된다.
아마 '나의 취미'들도 그렇게 나와 멀어지지 않았을까?
요즘은 우쿨렐레를 배우고 있다. 처음에는 유튜브에서 어떤 여자가 우쿨렐레를 치는 게 멋있어 보여서 시작했다. (마침 근처에 월 만 원에 우쿨렐레를 가르쳐주는 곳이 있기도 했다.) 치다 보니 우쿨렐레는 꽤 재밌었다. 기타보다 쉬웠고, 들고 다니기도 용이했다. 이모한테 등 떠밀려 배운 피아노보다 훨씬 애정이 갔다.
나는 일하기 싫을 때와 잠이 안 올 때 우쿨렐레를 친다.(다행히 집 방음이 좋은 편이다.) 신기하게 그런 시간에만 틈틈이 쳐도 실력이 는다. 관객 앞에서 우쿨렐레를 치며 노래할 정도는 아니지만, 바닷가에 홀로 앉아서 노래 부르는 풍경이 되기에는 충분하다. 나는 우쿨렐레에게 뭔가를 강요하지 않기로 결심했다. 이미 그는 나에게 너무나도 많은 것을 해주고 있기 때문에.
사실 우쿨렐레 말고도 취미는 많다. 그중 하나는 스페인어를 배우는 것이다. 하지만 스페인어 배우기는 마냥 즐길 수만은 없는 상황이 되어버렸다. 페루에 가게 되어서 본격적으로 '공부'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나는 '잘해야 한다'라는 생각이 내 머릿속을 지배하는 순간, 그에 대한 즐거움이 싹 사라진다. 스페인어를 배우는 '목적'이 생겨버렸기 때문이다. 나에게는 '목적'이 항상 평가였기에 나는 그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스페인어를 공부하며, 항상 내가 '못하는 것'을 실감해야 한다.
비록 지금은 무언가를 배울 때 '평가'라는 말에 끊임없이 흔들리고 무너지지만, 언젠가는 '목적'이 나에게 다가와도 흔들리지 않고 과정 즐길 수 있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
“내가 너를 이만큼 좋아해 줬으면 너도 뭔가 나에게 줘야 하는 거 아니야?”라고 말하는 대신,
“내가 너를 좋아하니까 나랑 더 많은 시간 동안 행복하자.”라고 말하며 내 취미들을 소중히 여기고 싶다.
앞으로는 제주를 주제로 단편 소설을 연재해보려고 합니다.
당분간은 매주 수요일에 [제주에서 만난 사람들]에 새글이 올라갑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