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생신날에 대판 싸운 이유

엄마는 나와 다른 사람이라는 걸 인정하는 시간

by 브릭

제목을 보면 엄마랑 원수 같지만 사실 그렇지 않다. 엄마는 내게 자매 같은 친구고, 선생님이고, 소중한 사람이다. 그런데 엄마는 이성적인 사람이고, 나는 감성적인 사람인지라 종종 다툼이 일어난다. 그게 하필 엄마 생신날이었다. 딱 한 달 전에 엄마의 생신이었다. 12월이 되고 생신이 점점 다가왔다. 무엇을 할지 고민하다가 처음으로 ‘미역국’을 해드려야겠다고 생각했다.


부끄럽지만 내 요리 실력은 초보라고 할 수도 없다. 이렇다 하게 요리를 해본 적이 거의 없으니 말이다. 요리라고 해봐야 계란 후라이, 라면 끓여먹는 정도가 전부다. 요즘도 요리를 조금씩 해봐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지만 쉽게 실천으로 이어지진 않는다.


이제껏 엄마가 해주시는 요리를 먹기만 했지, 내가 엄마를 위해서 요리를 한 적은 없는 것 같았다. 그래서 엄마 생신날에 미역국을 끓여드리는 것도 특별한 의미가 있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생각만 하고 실천으로 이어지지 못했다. ‘미역국 만드는 법’을 검색해보긴 했는데, 미역을 불리고 하는 과정들이 복잡해 보였다.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단계는 아니겠다 싶어서 일찌감치 포기하고 다음을 기약해야겠다고 다짐했다. (요리 잘하시는 분들 존경합니다)




어쨌든 아침은 밝아왔고, 엄마 생신날이 되었다. 그래도 작년엔 선물을 미리 골랐던 것 같은데 이번에는 ‘미역국’만 잠깐 생각하다가 엄마 생신을 맞이해버렸다. 나도 참 무심하다. 미리 선물이라도 샀으면 좋았을 텐데 뒤늦게 후회했다. 엄마한텐 현금이 제일 좋기야 하겠지만, 수입 없이 백수생활을 보내고 있는지라 그럴 형편은 되지 않았다. 엄마한테 생신 축하드린다고 얘기하며 평소처럼 아침을 먹었다. 그날은 일요일이어서 주일예배를 드리고 오후가 되었다. 평소 보냈던 주일과 비슷했다. 엄마는 생신에 별 감흥이 없다고 하셨고 말로만 건네는 축하에도 서운해하지는 않으셨다.


저녁에는 동생도 알바를 가고 오빠도 시간이 안 된다고 해서 다른 날에 가족 식사를 하기로 했지만 내 마음이 불편했다. 애인과 친구들 생일은 챙기려고 노력하면서 정작 엄마 생신을 제대로 신경 쓰지 못했다는 사실에 죄송한 마음이 들었다. 오빠랑 남동생도 엄마한테 생신 축하한다고만 얘기하고 딱히 드린 게 없는 것 같긴 했지만, 중간에 하나밖에 없는 딸은 엄마를 더 챙겨드려야 하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래서 남자친구와 데이트를 마치고 집에 오는 길에 롤케이크를 샀다. 사실 엄마는 건강식을 선호하기 때문에 케이크를 그다지 좋아하시진 않는다. 그래도 모카맛 롤케이크를 좋아하셨던 것 같아서 그 위에 초를 꽂고 생신 축하 분위기를 내드리고 싶었다. 선물은 따로 챙겨드려야겠다고 생각했다.


엄마는 없는 살림에 사 와서 고맙다고 하셨다. 아빠도 잘 사 왔다고 하시면서 그래도 우리 딸 밖에 없다고, 효녀라며, 정말 별 거 아닌데도 그렇게 얘기해주셨다. 그냥 케이크도 아니고 롤케이크에 초를 여섯 개나 꽂으니 웃음이 나오긴 했지만, 아빠랑 같이 생신 축하 노래를 불러드렸다. 내가 롤케이크를 사 온 것에 엄마보다 아빠가 더 신나 보이기도 하셨다. 아빠는 정말 먹는 것을 좋아하시기 때문이다.


그에 비해 엄마는 생신을 맞이한 당사자임에도 별로 신나 보이지 않으셨다. 나는 이대로 지나가면 섭섭할까 싶어서 분위기라도 내려고 롤케이크를 사 온 건데, 어딘가 불편한 표정을 짓고 계셨다. 엄마는 어떤 점이 불편하셨던 걸까. 롤케이크를 사 갔을 때가 저녁이 지나고 좀 늦은 시간이었다. 야식으로 먹기에는 아빠의 뱃살이 걱정되어서 다음날 개봉할까 했는데, 지금 하자고 하셨다. 나는 내일 먹어야겠다 생각하며 먹지 않았고 부모님만 드셨다. 그럼 롤케이크가 문제였을까.




엄마의 표정에 내 마음도 편하지 않아서 여쭤봤더니 정답은 둘 다였다. 엄마는 먹는 걸 별로 안 좋아하는데 밤에 사 와서 아빠가 먹게 됐다고 하셨다. 기껏 엄마를 생각해서 사온 롤케이크이었는데 그 말을 듣고 기분이 확 상해버렸다. 나는 분명 다음날 먹자고 했는데, 왜 아빠가 먹게 된 것까지 내 탓이 되어버리는 건지, 내가 사간 롤케이크가 왜 엄마의 마음을 불편하게 만든 건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아무리 딸이어도 그렇게 말을 툭 내뱉어도 되는 건가. 내가 사간 롤케이크가 마음에 안 들었다고 해도, 사람 성의가 있지 않은가.


방금 전에 하하호호 웃으면서 엄마의 생신을 축하했던 분위기는 온데간데 없어졌다. 순식간에 분위기는 얼음장이 되어버렸고 살벌하기 그지없었다. 속에서 화가 치밀어 올랐다. 친구가 선물을 해줬는데 마음에 안 들었다고 대놓고 얘기하실 거냐면서, 딸한테는 왜 그렇게 얘기하시냐고 엄마 진짜 이상하다고 쏘아붙였다. 선물이 마음에 안 들었어도 생각해줘서 고맙다고 그렇게 마무리 지으면 되는 거 아니냐고 그렇게까지 얘기해야겠냐며 버럭버럭 화를 냈다. 엄마는 아차 싶으셨는지, 바로 미안하다고 하셨다.


하지만 엄마의 사과에도 화가 풀리지 않았다. 내 안에 터져 나오는 분노를 억제하기가 너무 힘들었다. 방 안에 들어가서 이불에 얼굴을 파묻고 속으로 끙끙대며 소리 없는 아우성을 내질렀다. 롤케이크를 괜히 사 왔다는 억울한 마음에 눈물이 나왔다. 이게 뭐라고 내 감정을 이렇게 소모해야 하나 싶었다. 정말 별일 아닌데 이 일에 화내고 있는 내가 너무 한심했다.


엄마는 혼자 열을 내다 지쳐있는 나한테 다시 찾아오셨다. 엄마가 이기적이어서 미안하다고, 엄마도 말을 툭툭 내뱉는 걸 알고 있어서 지혜롭게 얘기하고 싶은데 그게 어렵다고 하셨다. 그렇게 화내고 있으면 너만 힘들지 않냐고 물으셨다. 감정이 조금 누그러진 상태여서 솔직하게 말씀드렸다. 맞다고, 너무 힘들다고 하니, 엄마는 ‘엄마도 그럴 수 있지’ 생각하면서 너그럽게 사과를 받아달라고 하셨다. 그렇게 눈물로 화해를 했다.




엄마는 진짜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엄마는 틀렸다고 생각했다. ‘어떻게 딸한테 그렇게 말할 수가 있어?’라는 생각에 엄마한테 화가 났다. 하지만 아무리 엄마라고 해도 상황에 맞지 않는 반응이 나올 수 있었다. 완벽한 기준을 가지고 엄마를 바라보고 있는 건 다른 사람이 아니라 바로 ‘나’였다. 엄마는 완벽한 사람이 아니었다. 엄마지만 가끔 실수도 할 수 있고 잘 고쳐지지 않는 단점도 가지고 있는 그저 평범한 사람이었다.


나 또한 화가 나면 금방 풀고 싶어도 풀리지 않는 것처럼, 엄마는 나와 같은 보통의 사람이었다. 엄마는 틀린 사람이 아니라 나와 다른 사람이었다. 너무나 당연한 사실인데, 그것을 인정하지 못해서 화가 났다. 엄마의 실수를 용납하지 못하고 화를 냈던 것이 죄송했다. 그것도 엄마 생신날에 대판 싸우는 딸이라니. 그럼에도 이 일을 통해서 엄마와 나의 다름을 인정하게 되는 소중한 시간이었다.




다음날 외부 일정이 있어서 나갔다 오는 길에, 엄마가 양말이 필요하다고 했던 것이 떠올라서 지하상가에서 천 원짜리 양말을 사다 드렸다. 엄마는 만 원짜리 롤케이크를 사 갔을 때보다 더 좋아하셨다. ‘엄마는 실용적인 걸 좋아하는 사람이구나,’ 알고 있었지만 새삼 느낀 순간이었다. 선물의 가격과 분위기보다 엄마에게 필요했던 물건을 사드리니까 좋아하셨다. 엄마가 좋아하시니 나도 좋았다. '만 원짜리 롤케이크보다 천 원짜리 양말을 더 좋아하시는 우리 엄마'라고 글을 써야겠다고 하시니, 엄청 웃으셨다. 같이 웃으니 좋았다. 그리고 말을 덧붙이셨다. “그렇다고 내년 생일에 양말 사 오지는 말고. 알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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