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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튜라 Oct 11. 2020

좋아하는 노래를 틀어주세요.

일상 속 간단한 선물.

  수업이 예상보다 일찍 마무리되어 약간 시간이 남을 때, 늘 학생들이 하는 말이 있다.     

 

“쌤~ 노래 틀어주세요.”     


  “무슨 노래?”하고 되물으면 아이들이 목소리를 높여 자기가 듣고 싶은 노래 제목을 말한다. 대부분의 아이들이 자신이 좋아하는 아이돌의 노래를 말한다. 여자아이들은 대부분 방탄소년단, 세븐틴과 같은 남자 아이돌 그룹의 노래를 많이 신청한다. 남자아이들은 쇼미더머니에 나온 노래나 여자 아이돌의 노래를 신청하는 편이다. 학생들이 눈을 반짝이며 좋아하는 가수의 노래를 듣는 것을 보면, ‘그렇게나 좋을까’하면서 마음 한편이 흡족해진다. 여기서 아이들의 취향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내 취향으로 선곡을 할 때면 아이들의 반응은 정말 냉정하다. ‘아~’라는 짧은 탄성을 내뱉으며 바로 엎드려 버린다. 축져진 모습으로 그런 구닥다리 노래를 들을 일은 절대 없을 거라는 뜻을 분명히 전달한다.      



  좋아하는 노래를 듣는 일은 누구에게나 즐거운 일이다. 반면에 즐겨듣지 않는 노래를 듣는 일은 꽤 힘든 일이다. 언제 어디서라도 원하는 노래를 즐길 수 있는 시대이다. 자신의 취향대로 플레이리스트를 채우고, 자신의 음악 세계를 만들어 낼 수 있다. 우리의 선택권이 강해진 만큼 인내심은 약해졌다. 자신의 음악 세계 밖에 있는 음악을 만나는 일은 꽤나 지루한 일이 되어버렸다. 선택권이 나에게 있는 경우에는 얼른 다시 내 세계 안으로 돌아올 수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를 종종 견뎌야 할 때가 있다. 학생들이 학교에서 겪는 순간처럼.     

  내 차에 타는 사람들은 그 소중한 선택권을 빼앗겨 버린다. 그냥 내가 트는 음악을 들어야 한다. 나의 배려 없음은 잠깐만 타게 되는 사람들에게는 큰 영향을 주지 않지만, 자주 내 차를 타야 하는 사람들에게 큰 고역이다. 좋아하지 않는 노래들을 계속 듣는 건 고문과 비슷한 측면이 있다.

  가장 크게 고통을 받는 사람은 다름 아닌 여자친구이다. 함께 한 시간만큼 많은 부분에서 취향이 겹치는 여자친구이지만, 음악적인 부분에서만큼은 서로의 취향을 포갤 수 없었다. 여자친구가 좋아하는 취향의 노래는 가사말이 예쁜 서정적인 발라드이다. 하지만, 내 취향은 시끄러운 힙합이다. 여자친구는 가사는 뭐라고 하는 지도 모르겠고 시끄럽기만 한 노래가 듣기 싫다고 저항 의사를 밝히기도 했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체념한 듯 아무 이야기도 하지 않았다.

  어느 날은 차에 타기 전에 여자친구가 좋아하는 노래들을 플레이리스트에 담아 놓았다. 여자친구가 차에 타자 아무 말도 하지 않고 평소와 같은 것처럼 그대로 출발했다. 처음에 노래가 흘러나올 때는 별 반응이 없었다. 그러다가 노래를 흥얼거리며 따라 부르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웬일로 내가 좋아하는 노래가 나오지?’ 하고 물었다. 미리 준비해두었다고 말해주니, 입꼬리가 슥 올라가며 ‘그래 이런 게 노래지’하며 노래를 계속 흥얼거렸다.      


  엄마를 모시고 병원에 들렀다가 오는 길이었다. 엄마는 무심하게 창밖만 바라보고 있었다. 문득 그 모습이 너무 쓸쓸하게 보였다. 조금이나마 기분을 풀어주고 싶어 듣고 싶은 노래가 있냐고 물었다.     


“엄마가 듣고 싶은 노래 있어?”

“딱히, 없어.”

“그래도 한 번 생각해봐. 노래방에서 많이 부르는 노래도 있잖아.”

“음,,,000”     


  전혀 모르는 가수의 전혀 모르는 노래였다. 전주가 흘러나오고, 구슬픈 가사를 따라 엄마가 콧노래를 흥얼거렸다. 리듬에 맞춰 고개를 까딱거리면서 노래를 불렀다. 엄마의 기분이 한결 나아진 것처럼 보였다. 좋아하는 노래를 즐겁게 부르는 사람의 모습을 보는 일은 기분 좋은 일이었다. 옆 사람이 노래를 흥얼거릴 때의 기쁨을 깨달았다. 일상에서 줄 수 있는 작은 선물 꾸러미를 찾은 기분이었다. 좋아하는 노래를 한 곡 틀어주는 게 뭐 어려운 일도 아니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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