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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튜라 Oct 11. 2020

그래, 이게 학교였지.

  8월 27일에 2학기가 개학했지만, 우리 반 학생들은 한 달 반 가까이 등교를 하지 못했다. 1학기 때에도 몇 번 만나지 못해서 겨우 이름을 외웠는데, 이름을 까먹어 버릴까 걱정이었다. 10월 7일로 등교 일이 결정되고 아이들이 온다는 사실에 두근두근했다. 설렘도 있었고, 두려움도 있었다. 한참 뒤늦은 새 학기 준비를 했다. 오랫동안 비워둔 공간에는 그림자가 진다. 교실에 드리운 그림자를 걷어내려고 교실을 쓸고 닦았다. 책상 줄을 맞췄고 시간표를 뽑아 붙였다. 벌써 10월이 되었다는 생각과 빈 교실에서 그 자리에서 일어나야 했던 일들에 대해서 떠올려보기도 했다. 

  아이들이 없는 학교는 편안함과 불편함이 공존하는 미묘한 공간이었다. 올해 초에 개학이 자꾸 연기되면서 모두가 처음 겪는 상황에 어려움이 무척 많았다. 구글 클래스룸, ebs 온라인 클래스 등등 어떤 플랫폼을 사용해야 하는지, 출석은 어떻게 인정해야 하는지, 수업 도중 문제가 생기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등등 많은 의문은 있었지만 명쾌한 해결책을 찾을 수는 없었다. 불편함이 가득했고, 늘 긴장해있었다. 매일 가까이 회의를 했고 퇴근 시간 후에도 새로운 플랫폼과 수업 방식에 대해 공부를 했다. 모두의 그런 노력 덕분에 나름의 합의점을 찾아가고 학교는 무사히 굴러갈 수 있었다. 코로나가 종식되어 2학기에는 정상적인 학교생활을 기대했지만 그렇지 않았다. 오히려 더 상황이 악화되어 등교가 중지되고 원격으로만 수업이 진행되는 지경에 이르기도 했다. 

  코로나 상황이 끝나기를 바라고만 있을 순 없었고 계속 지속되는 상황에 적응해버렸다. 코로나가 헤집어 놓은 일상의 모습이 익숙해지고 나름의 패턴을 만들어 낸 것처럼, 학교에서도 새로운 패턴을 만들어 갔고 학교의 사람들은 그것에 적응해왔다. 낯선 적응은 새로운 편안함을 주었다. 대처 방식의 윤곽이 보이기 시작하면서부터 어려움의 난이도가 조정되었다. 그렇지만, 해결하기 힘든 점들은 계속 있었다.

  무엇보다도 어려운 점은 아이들이 학교에 없어 가장 큰 어려움은 답답함이었다. 원격 수업 날, 교무실에서는 아침에 선생님들이 일제히 전화를 한다. 아직까지 일어나지 않은 학생들을 깨우기 위해서이다. 전화를 받아 일어나는 학생들에게는 참 고마운 심정이다. 그러나 감감무소식으로 아침부터 수업이 시작하여도 전화를 받지 않고 문자도 받지 않아 전혀 소통이 되지 않는 학생들이 있었다. 받지 않을 것을 알고 있는 전화를 걸고 통화음만 듣다가 끊는 일을 반복하는 아침의 연속이었다. 전화를 씹히는 일은 매우 기분 나쁜 일이었다. 하루를 실패와 좌절로 시작할 수밖에 없었다. 

  전화를 해서 나누는 대화도 단순했다. 아침에는 ‘일어났니? 자가진단 제출하렴?’, 수업 중에는 ‘수업 듣고 있니? 얼른 과제 제출하렴’ 이 이상의 대화를 나누기는 어려웠다. 필요한 말만 하고 끊었다. 자동 응답기를 만들어서 대신해도 문제없을 것 같았다. 그때 교무실 풍경은 분명한 흑백 화면이었다. 익숙해진 새로움 속에서 하루하루 시들어가고 있는 느낌이었다.


  10월 7일 날 학생들이 오자 학교가 북적북적해졌다. ‘안녕하세요’라는 학생들의 인사 소리,‘어서 오렴’하고 맞이하는 선생님들의 목소리가 학교에 생기를 불어넣었다. 오랜만의 보이는 아이들의 얼굴이 보여 인사를 건넸다. ‘그동안 잘 지냈니? 학교에 나오니깐 기분이 어떠니?’ 등등 자질구레한 이야기로 반가운 마음을 표현했다. 오랜만에 학교에 나와 어색해 보이는 아이들도 있었고, 그동안 들뜬 마음을 숨기지 못하는 아이들도 있었다. 전화를 무시당하는 일이 없으니 내 마음이 편안하게 하루를 시작했다.

  오랜만에 교탁에 서서 아침 조회를 하고 교무실로 돌아왔다. 오랜만에 느껴보는 기분이었다. 별다른 내용은 없었다. 오랜만에 만나서 반갑다는 인사말, 오늘 수업 진행, 앞으로의 일정에 대한 간단한 안내, 학교에서 지켜야 할 기본적인 교칙들, 자질구레한 이야기들을 했을 뿐이었다. 오랫동안 멈춰있던 무언가가 작동하기 시작하는 기분이 들었다. 수업 시간도 별다른 것은 없었다. 원격 수업과 똑같은 내용을 수업을 했다. 다만, 학생들의 눈을 바라보면서 수업을 했고, 아이들의 목소리를 직접 들으면서 수업을 했다. 

  수업 시간 도중 내 질문에 어떤 학생이 말도 안 되는 농담을 던졌다. 어이가 없어서 웃음이 살짝 새어 나왔고 문득 ‘그래, 이게 학교였지’하는 생각이 들었다. 수화기 너머로 들리는 목소리, 컴퓨터 모니터 속에서 마주치는 눈빛으로는 뭔가 부족하다. 직접 눈을 마주치고 시답지 않은 농담을 주고받을 때만 살아나는 감각이 있다. 새로운 시대에는 맞지 않는 감각일 수도 있겠다. 어쩔 수 없는 세상 속에서 살고 있지만, 사람과 사람은 결국 만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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