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소녀 Jun 12. 2024

괜찮은 줄 알았는데, 괜찮은 게 아니었다.

8년 만의 깨달음

2016년 7월 30일.

내 시간은 그 이후로 멈춰있다.


괜찮은 줄 알았다.

오히려 현실감각이 없어서 나 너무 매정한 거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3년 만에 과로로 인한 뇌출혈로 인한 사망이라는, ‘산재’로 인정받고

한 달 벌어 한 달 생활하는 고된 생활을 벗어나서 저축이라는 것과 엄마에게 양육비를 드릴 수 있는 상황이 되자 내가 이상해졌다. 웃으면서 눈물을 흘리고, 출근길 운전하는 길에 눈물이 흐르고, 아이를 향해 자비 없는 회초리를 휘두르면서 동시에 나 왜 이래, 멈춰야 해.라는 생각이 동시에 들었다.


그 길로 병원을 찾아갔다…

‘중증우울증’ 마침 코로나19가 발생해 아무도 만나지 못했고, 운동도 하지 못했으며 혹여 확진되면 나와 접한 이들이 추적당하는 아주 위험한 시기. 어쩌면 코로나블루였을지도 모른다. 병원에서는 이상하다고 한다. 본래 성격은 우울증이 걸릴 성격이 아닌데 너무 밝게 살려고 하다 보니 더 이상 호르몬이 나오지 않아서 신체적 증상이 나타나는 거라고 했다.

그래… 내 오랜 친구 A가 나한테 한말이 있는데. “저년은 죽었다 깨어나도 우울증 같은 건 안 걸릴 못된 년이라고” 그런데 내가 우울증이란다. 약을 먹기 시작했다. 잠은.. 내가 언제부터 잠을 못 잤더라. 생각도 나지 않지만 아직 2호가 어려 깊게 잠이 들면 안 된다는 생각에 수면을 위한 약은 처방받지 않았다.


어쩌면, 배부른 투정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는 꼬박 매달 충분하진 않지만 그래도 적지 않은 연금이 수령되고, 나도 돈을 버니까.. 이젠 모으기만 하면 돼..라는 생각이 들어서? 딸 셋을 키우고 있는 낙하산 사수가 “그래도 넌 연금 나오니까 돈 안 벌어도 되잖아. 우리 애들은 너무 많이 먹어서 맞벌이 안 하면 안 돼, 부럽다 “라는 말에 욱해서?


그리고 이유 없이 내 눈에서 눈물이 흐르지 않으니.. 병원도 발길을 끊었다.

나 자신을 너무 믿었다. 과신했고 맹신했고 오만했다.


그렇게 1년이 지나고, 아이를 위해 제주로 이사를 결심하고 3년을 정신없이 지내는 동안 괜찮은 줄 알았는데 전혀 괜찮지가 않았더라 내가. ‘중증우울증’의 엄마는 ‘고위험우울증’의 엄마가 되었다. 그냥 마음이 아픈 것뿐일 거라고 믿었던 1호는 심각한 자책을 동반한 ‘아동우울증’을 앓고 있었으며, 2호는 불안이 매우 높아 혼자서는 있을 수 없는 아이가 되었다.


결론은, 갑자기 가족을 보낸 남은 가족들은 마음의 병을 앓는 환자들의 집단체가 되었다는 것.

내가 나 스스로를 속이는 동안, 아이들은 불안한 엄마를 몸과 마음으로 느끼고 있었던 거다.

제주에서 1년 동안 시내병원을 오가며 치료를 하다.. 육지로 돌아왔다. 아이가 돌아가고 싶다고 하니, 가야지.

그리고 다시 새로운 병원을 추천받아서 다시 처음부터 검사를 했다. 역시 도시병원이라 그런가 뭔가 검사도 다르다.

그리고 ‘고위험우울증’은 변하지 않았는데… 그래프다 이상하다고 한다. 분명 수치는 자살충동이 있는 고위험우울인데 성격은 전혀 반대의 성격이라고. 음. 애도의 기간을 충분히 잘 보냈냐고 물어보시는데.. 할 말이 없다.

애도? 내가 오빠를 보내고 어떻게 살았더라, 그냥.. 일상이었던 것 같은데.. 전쟁 같은 일상.

한순간에 가장을 잃은 집이 어떻게 되는 줄 알았겠나 내가.. 하루아침에 기초수급자가 되고, 예쁘고 야무지고 똑 부러진 며느리에서 내자식을 보낸 저년이 되었는데.. 아는지 모르는지 모르겠는 6살 아들과 8개월 된 딸을 데리고 애도할 시간을 갖는 게  오히려 비현실적이지 않을까?


잠을 자지 못해서 한 달에 한두 번씩 어지러움과 위장장애를 동반한 편두통으로 병원에서 긴급수액으로 안정제를 투여받아야 하고, 학교에서 언제 전화 올지.. 어떤 상황에서 또 전화가 올 지.. 항상 대기조에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8년을 보냈는데 괜찮을 리가 없지.. 이제 어린이들과 말이 통하고 이 주제에 대해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시기가 되니, 수면제를 먹어도 한두 시간이면 속에서부터 올라오는 화와 기억에 벌떡벌떡 눈이 떠진다.

내가 왜 이럴까 가만가만 생각을 해봤는데, 같이 잘 살아보자던 법적으로 이어졌던 그 가족에게 단 6개월 만에 받았던 상처들이 8년이자 지났는데도 어제와 같은 기억으로 살아있더라고. 혹시라도 속상해서 입 밖으로 꺼내면 그게 내 엄마아빠의 귀에 들어가 당신들을 속상하게 만들까 봐. 단 한 번도 입밖에 꺼내보지 못했던 상처들도 있고, 사과받지 못했던 그 일련의 사건들이 하나하나 다 생생하게 살아있더라고.


솔직히 내가 지금 뭐라고 끄적이는 건지도 잘 모르겠다.

지금의 나는 몇 년이 지나도 생생한 이 상처를 토해내는 게 우선인지도.

그래서 두서도 없다. 정리도 되지 않는다. 문법도 맞지 않을 것이고, 가독성이 떨어질지도 모른다.

날 것 그대로의 내 상처고 기억이니까. 그냥 털어놓는 게 1번이라서.


이렇게 시작한다. 내 마음 들여다보기.

괜찮은 척했던 나를, 토닥이기로 했다.



작가의 이전글 타의적 싱글맘의 시작.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