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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라다 Jun 09. 2021

나를 잃어 간다는 착각

그 어느 때보다 온전히 나로 살았었던 시간.


출산을 하고 육아를 하다 보면 많은 엄마들이 공통적으로 겪는 마음이 있다.

"나"는 어디에 있고 엄마만 남았지?

"나"를 잃어가는 것 같다.

나도 이 생각에 몹시 힘들었던 적이 있었다.

나의 엄마 나이 아홉 살,

첫아이가 아홉 살이니 내가 엄마로 산 나이도 딱 아홉 살이다.

아기가 세상에 태어나 엄마 뱃속이 아닌 세상을 온몸으로 배우고 익히며 적응해 갈 때

나도 엄마로서 지금까지와는 완전히 다른 삶을 경험했다.

그 안에서 나의 욕구는 잠시 뒤로 미뤄둔 채, 작고 조그마한 아이를 잘 키워내기 위해 고군분투만 했다.

처음에는 강한 의지로 몸을 불살라 아이를 돌보았지만 그것도 하루 이틀이지,

결승점이 보이지 않는 마라톤 같은 육아에 전력 질주로 달려도 결코 빨리 도착하는 게 아니었다.

결혼도 출산도 나의 선택이었기에, 육아는 나에게 책임감이었다.

그 안에 분명 넘치는 사랑이 있었지만 사랑만으로는 포장할 수 없는 마음도 있었음을 고백한다.

그때는 몰랐다.

그때 내가 얼마나 충실히 "나"로 살았는지 말이다.

그 어느 때보다 현재에 집중해서 온전히 살아내고 있는지, 그걸 느낄 겨를이 없었다. 몰랐다고 하는 게 더 맞을까?

엄마로서 살아본 경험이 없는 나의 몸과 마음과 머리는 언제나 나를 과거의 "나"로만 생각했던 것이다.

"나"라는 사람을 일컫는 수많은 이름들 (딸, 친구, 아내, 며느리, 동생, 직책...) 중 새롭게 얻게 된 타이틀인 "엄마"의 경험이 없었기에 그 역할의 옷을 입는 것이 불편하고 내가 아닌 것 같고 나의 색을 잃어가는 것이라고 여겼다.

그도 그럴 것이, 지금까지 내가 해온 그 어떤 역할도 잠자고 먹고 싸는 것까지 내 마음대로 할 수 없는 상황은 경험해보지 못했으니까. 인간의 기본권을 위협하는 이 "엄마"라는 역할이 나의 색을 잃어가게 한다고 여기고도 남을 일이었다. 그런데 역설적이게도 나는 그 어떤 모습으로 살 때 보다 엄마로 살 때, 가장 온전히 그 행위에 집중하고 살았었다.

그때의 시간이 내가 맡은 역할을 해내며 선명한 나의 색을 하나 더 가지기 위한 시간이었던걸 몰랐다.

현재의 나를 보지 못하고 과거의 나만 생각하면서 현재를 잃고 있었던 것이지, 나를 잃었던 것이 아니었다.

그게 가장 아쉽다.

엄마로 사는 삶은, 나를 표현해 주는 새로운 옷 하나를 더 장만하는 일이다.

처음부터 딱 맞춰서 나온 맞춤옷이라면 좋겠지만 애석하게도 그 옷은 나에게 맞게끔 내가 고쳐가며 만들어가야 한다.

운 좋게 한 번에 딱 맞췄다고 해도 유지하기란 쉽지 않다. 꾸준히 몸매를 관리해야 하는 것처럼 관리가 필요한데 엄마라는 옷은 늘 조금씩 달라진다. 아이가 커갈수록 엄마의 옷도 그에 맞춰줘야 하는 것이다.

옷을 나에게 맞출 수도 있고 내가 옷에 맞춰갈 수도 있다.

언제까지 반복될지는 모르지만, 늘 새 옷처럼 낯설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괜찮다.

부모 경력 10년 차든 20년 차든 아이의 나이로 맞이하는 오늘은 부모도 처음 사는 오늘이다. 부모의 역할이 조금 서툴러도 괜찮다는 말이다. (둘째면 잘해야 하냐고? 그 경험을 잘 살려 둘째에게 좀 더 유연히 대처할 수 있으면 좋겠지만 둘째는 둘째대로 또 전혀 다른 인격이기에 그것도 괜찮다.)

관계 속에서 나를 옷으로 표현한 것이 적절한 비유가 되는지 모르겠다.

나라는 존재를 부르는 수많은 수식어들, 그 안에서 내가 온전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자.

내가 입는 그 옷은 때때로 바꿔 입어야 하고 여러 벌 겹쳐 입어야 할 때도 있지만, 혼란스러워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는 것만 기억하자. 나를 부르는 이름이 아무리 많아도, 그들이 나에게 원하는 역할과 기대가 아무리 많아도, 설령 그것이 내가 살고자 하는 방향과 다르다고 해도, 괜찮다.

그렇다고 내가 변하는 것은 아니다. 내가 그것들을 다 품고 있는 것일 뿐, 그 어느 것 하나가 나일 수는 없다.

아이를 돌보는 일이, 집에만 갇혀서 지내는 지금 내 삶이, 암흑의 시절처럼 느껴지고 감옥처럼 느껴질 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아이가 나의 손을 필요로 하는 시간은 그리 길지 않다.

꼰대 같은 말이지만, 정말이다.

언제 끝날지, 도대체 끝나기나 할지, 정말 막막할 것이다. 나도 그랬으니까. 지금이 제일 좋을 때이고 크고 나면 지금이 그리울 것이라는 걸 잘 알지만 그렇다고 미래에 느낄 그리움을 앞당겨와서 지금 행복으로 느끼기도 어렵다는 걸 너무나도 잘 안다.

하지만 지금도 시간은 흐르고 있다. 그것이 희망이 되어줄 수 있다면 참 좋겠다.

힘든 시절 나에게 친구가 해 줬던 그 말이 지금 힘들게 육아를 하는 분들에게도 희망이 되길 바란다.


그 어느 때보다 치열하게, 열심히 아이를 위해, 나를 위해, 오늘을 사는 엄마들, 부모님들을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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