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자라다 Sep 15. 2023

갈등 부추기는 사회

이런게 세상의 민낯이라면, 나는 차라리 우물안 개구리로 남겠어요.

  우리는 '우물안 개구리'라는 말을 세상 물정 모르고 자신이 경험한 것이 전부라고 믿는 사람, 조금은 답답한 사람을 일컷는 말로 쓰고 있다. 그런데 나는 요즘 자발적으로 우물안 개구리의 삶을 선택하고 싶다. 내가 경험하는 내 주변의 세상은 너무나 아름답고 따뜻한 사람들로 가득한데 세상에서 들려오는 소식은 살벌하다 못해 잔혹하기까지 하니, 안그래도 걱정을 끌어안고 사는 나를 더욱더 불안에 휩쓸리게 한다. 분명히 어디선가 무언가 잘못되어가고 있고 우리 모두 그것을 알고 있다. 어딘가에서 생긴 염증이 사회문제로 드러나고 있는 것인데 여전히 문제를 일으킨 개인에게 초점을 맞추고 그들을 비난하는데 집중하느라 진짜 보아야 할 것을 보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개인의 행동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지만 극단적인 행동의 원인 일부는 사회문제의 결과라는 생각이 든다. 그렇게 되기까지의 과정에는 사회가 제 역할을 충분히 하지 못했던 부분이 있을텐데 자꾸만 개인의 사정, 개인의 문제, 개인의 선택이었다는 것에 초점을 맞추다 보니 해결책을 제시해봤자 만족은 커녕 불만만 더 키워가고 그 결과 사회 구성원들끼리의 갈등만을 부추기고 있는 것 같다. 병의 원인을 알 수 없기에 딱 맞는 약을 찾을 수 없어서 대증요법을 쓰는 것 처럼, 정말 무엇이 문제인지 몰라서, 또는 막연해서 지금까지의 경험에만 비추어 이런 저런 뗌질식 처방을 할 수 밖에 없는 것일까? 우리 사회에 일어나는 문제들에 대해서 연구하고 있는 전문가들이 분명히 있을텐데, 왜 그들의 목소리는 잘 들리지 않는거지? 진짜 문제의 본질을 들여다 볼 용기가 없는 것인지, 일부러 보려고 하지 않는 것인지 의문스럽다. 

  이런 상황에 언론에서는 처음에 누가 먼저 썼는지도 모르는 단어 하나를 기사화해서 전체를 그런 집단으로 만들어버리는데 동조하고 있다. 심지어 그들이 하는 말들을 퍼나르며 갈등을 부추기고 있는 모양새다. 아주 예전에 만들어진 김여사부터 맘충, 이대남 이대녀, 틀딱 등 각 성별, 세대별로 서로를 적대시하게 만드는 말들을 언론이 더 퍼트리고 있는 것은 아닌지, 내가 별 뜻 없이 남들이 쓰기 때문에 썼던 그 말들이 차별과 불평등의 하나일 수도 있다는 것을 나도 뒤늦게야 알았다.

  우리는 모두 개인이자 곧 사회이다. 사회에서 들려오는 소식이 살벌하면, 마치 내가 사는 세상 전체가 그렇게 되어버린 것 같아서 두려움이 생긴다. 뉴스에서 나오는 것처럼 이 세상에는 잔혹한 범죄, 인성이 덜 된 사람들의 갑질만이 있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여전히 서로를 위하는 따스한 미담이 있고 모르는 이를 구하기 위해 물 속으로 뛰어드는 젊은 청년이 있고 안타까운 사고를 당했음에도 다른 생명을 위해 장기를 기증하고 떠나는 분들이 계시다. 하나의 범죄사건에 관한 기사는 대중들이 관심을 가질수록 끊임 없이 쏟아진다. 범죄자들이 무슨 말을 했고 어떤 음식을 먹는지까지, 굳이 그렇게까지 친절하게 알려준다. 그러나 미담에 대한 기사는 대부분 1회성으로 그치고 만다. 그렇기 때문에 그런 따스한 소식들이 우리 가슴속에 머무는 시간이 짧은것은 아닐까. 설령 세상이 정말 각박하고 잔혹하게 변해버렸다고 할 지언정, 나는 내 주변에 있는 따스한 사람들을 보며 우물안 개구리로 남고 싶다.

  

작가의 이전글 OO이 행복해야 내가 행복하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