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아침에 눈뜨기가 무섭게 아내 손에 이끌려 여의도 국회도서관을 찾았다. 우리 집에서 차로 15분 정도 거리에 있는 도서관인데 그 크기가 웅장하고 시설도 훌륭하여 평소 공부하는 것을 좋아하는 아내가 시간이 날 때마다 즐겨 찾는 곳이다.
내 아내는 전생에 못 배우고 죽은 귀신이 달라붙었는지 평소 배움에 대한 갈증이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5년 전 아내가 조직문화 강사로 전업을 한 뒤부터는 그 갈증의 정도가 점점 더 심해져 이제는 심각한 수준이 된지 오래다.
물론 강의를 하려면 그 분야에 대한 지식을 쌓고 끊임없이 연구를 해야 하는 것이 당연한 것이겠지만 평소 완벽주의와 넘치는 열정의 소유자인 내 아내가 그러한 노력을 해야 한다는 것은 나에게 불안을 넘어 공포로 인식됐다.
아내는 본인에게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교육은 무조건 들어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이다. 아는 사람들은 알겠지만 강의를 하는 사람들은 책을 거의 달고 산다. 책이야 요즘 밀리의 서재 같은 구독 서비스도 있는데 아내는 무슨 이유에서인지 굳이 실물의 책을 구입하여 책갈피마다 포스트잇을 덕지덕지 붙여 가며 읽는다. 그러다 보니 매달 열권 이상의 책들이 꾸준히 집에 쌓여 이제는 집이 아니라 도서관을 방불케 할 정도다. 책이야 가격이 그렇게 비싸지 않으니그나마 이해를 한다고 치더라도 교육은 얘기가 좀 다르다. 적게는 몇 십만 원부터 많게는 몇 백만 원, 천만 원이 넘는 교육 과정도 수두룩하다.
소설을 쓰면서부터 수입이 작아진 나는 자기 계발에 너무 열성적인 아내가 조금씩 걱정되기 시작했다. 뭐라고 말을 하고 싶어도 직장까지 그만두고 소설을 쓰며 별다른 수입이 없는 내가 오히려 역풍을 맞게 될까봐 함부로 말을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그뿐만 아니라 아내는 강사나 코치들로 구성된 온, 오프라인 스터디 모임도 상당수 가입을 해 활동 중이다. 내가 알고 있는 아내의 스터디 모임만 다섯 군데가 넘는다. 그녀의 타고난 열정은 또 얼마나 대단한지 자신이 속해 있는 스터디 모임에서 생전 보지도 못한 회원의 모친상, 부친상까지도 거의 빼먹지 않고 다닐 정도다.
그런 아내를 보고 있노라면 요즘 핫하다는 웹 드라마 '카지노'의 차무식이 떠오른다. 최민식 배우가 열연 중인 극 중 차무식이라는 인물은 깡패가 아닌데도 전국에 있는 깡패들의 경조사까지 일일이 다 챙기며 깡패들에게 전국구 형님 대접을 받는 오지랖 대마왕에 스케일도 굉장한 인물이다.
아내는 인정하고 싶지 않겠지만 내가 보는 아내는 영락없는 카지노의 차무식이다. 어찌나 오지랖이 넓고 스케일도 크신지. 보통 이런 얘기는 남편보다 아내들이 하는 경우가 많을 텐데 우리 집은 남편과 아내가 거꾸로 바뀐 것 같다.
오늘도 혼자 도서관에 가기 싫다는 이유로 멀쩡히 집에서 글 잘 쓰는 사람을 꼬셔서 도서관까지 끌고 오더니 정작 자기는 스마트 폰에서 울리는 단톡방 메시지를 체크하며 나에게는 관심조차 주지 않는다.
이런 상황을 알리 없는 내 지인들은 하나같이 나에게 아내한테 잘하라는 말들을 한다. 멀쩡히 다니던 직장을 때려치우고 웹 소설가가 되겠다는 남편을 데리고 살아주는 아내가 몇이나 되겠냐며. 그래. 맞다. 정확하게 말하면 반은 맞다.
그런데 이쯤 되니 나도 지인들한테 꼭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
제수씨한테 잘해라. 매달 월급 타다 준다고 손 하나 까닥 안 하고 어른 행세하는 남편을 계속 떠받히고 사는 아내가 요즘 몇이나 되겠냐? 나중에 후회하기 싫으면 일찍 감치 눈치 좀 챙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