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를 회고하며 새해를 다짐하는 자리를 가졌을 때 차마 말을 꺼내지 못했지만, 실은 요즘 재미있는 것도, 하고 싶은 것도 잘 떠오르지 않는다. 무얼 해야 할지도 막연하고, 하고 싶은 것도 마땅히 떠오르지 않아 조바심은 나고 답답했다.
순수하게 내가 좋아하는 걸 해보자 이야기하고선 뚜렷한 성과가 나지 않아 걱정이 됐다. 내년에 석사 논문을 써야 하는데, 논문을 어떻게 시작할지 감이 잘 오지 않는다. 실은 논문자격시험부터 봐야 하는데, 어떻게 출제되는지, 공부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브런치 작가가 되었는데 어떤 글을 써야 할지 영감도, 계획도 잘 떠오르지 않는다. 허리디스크 때문에 등록한 필라테스 개인수업 30회 차가 어느덧 끝나가는데, 한 번 더 연장하려니 말라버린 통장 잔고가 보인다. 앞으로 오래 건강하려면 운동을 해야 할 텐데, 홈트를 꾸준히 할 자신은 쉬이 나지 않아 비용 대비 효과가 만족스러운 다른 운동을 찾아보는데 확 끌리는 게 없다.
마침 연말인 데다 신년 운수에 의지하고 싶은 마음으로 사주 상담을 신청했다.
‘사주 볼 시간에 책 한 권 더 읽고, 차라리 그 돈으로 기부를 하렴.’ 분명 엄마가 들으셨다면 이렇게 말씀하셨겠지. 내 안에 답이 이미 있으니, 사주 상담에 의존할 필요가 없다는 말씀에 백 번 천 번 동의한다. 하지만, 궁금한 걸... 그래, 나는 몇 번은 흔들리는 사람이라 그냥 봐야지! 엄마의 말씀이 아른거리는 것 같아 며칠을 망설였지만, 결국 결제해 버렸다.
사주 상담, 어땠을까? 곱씹어 보면 그리 특별하지 않은 이야기였다. 당분간 뚜렷한 성과가 보이지 않아 답답할 수는 있겠지만, 한참 달려온 끝에 맞이한 재충전의 시간이니 열심히 듣고, 보고, 배우라는 게 골자였다. 이 이야기를 꺼내면 엄마는 분명 “나한테 이야기하면 더 잘 이야기해줄 수 있겠다!”라고 하셨겠지. 지금 생각해 보니 ‘누구에게나 할 법한 말이 아닌가?’ 싶긴 하지만, ‘지금은 내실을 채울 시기’라던 말이 위안이 되었다. 당분간 원하는 대로 출력이 잘 되지 않을 수 있다는 말에 슬퍼지기보다는 더 많이 채울 수 있다는 말에 희망을 얻은 것이다. 지금껏 쌓아온 것들을 발산할 시기가 곧 다가올 테니 인내심을 가지고 계속 배우라는 조언에 ‘내년’에서 ‘내년, 내후년, 그리고 그다음’까지 생각이 넓어졌다.
‘이게 무슨 의미가 있겠어. 얼마나 잘할 수 있겠어.’라며 비관하는 마음이 도전을 자꾸 가로막는다. 거창한 목표를 이뤄내지 않아도, 어디에 쓸모가 있을지 잘 감이 오지 않아도 일단 해보자. 그렇게 일단 하나씩 채워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