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해오름 Jan 01. 2023

아무튼 향

강의실에 미리 도착해 자리를 맡아 둔 친구 옆에 앉았다. 친구는 로션 뚜껑을 코에 대고 킁킁거린다. “뭐 하는 거야?” 그녀는 대답 대신 연습장에 적는다. ‘옆 자리 남자 발 냄새 나.’ 고개를 들었더니 슬리퍼를 신고 엎드려 앉아있는 사람의 맨발이 보인다. 발 고린내도 함께... 그때부터였을까. 고린내를 맡으면 무더웠던 여름, 습기가 밴 신림동의 오후, 로션 뚜껑과 친구의 코, 얼굴 모를 남자의 맨발이 떠오른다.     


대학가에서 들어섰던 어둑어둑한 분위기의 액세서리 숍, 향이 피어오르는 데 마음에 들었다. 몽환적이면서도 달콤한 향, 그 향이 궁금해 인센스 스틱을 사 열심히 피웠다. ‘이 향이 아닌데.’ 그러다 비슷한 향을 피우는 옷가게에서, 결연한 목소리로 사장님께 여쭈었다. ‘이 스틱 어떤 제품일까요?’ 그가 내민 건 나그참파의 오리지널 인센스 스틱. 인센스스틱 입문자라면 흔하게 접했을 상품인데 돌고 돌아 만났다. 드디어 서재에서 원하는 스틱을 태우던 어느 날 밤, 자욱한 향과 함께 액세서리 숍에도 갔다가 옷가게에도 다녀오고 서재에도 있었다.     


이슬아 작가는 <아무튼, 노래>에서 노래만큼 시공간을 자유롭게 유영할 수 있게 하는 것도 없다고 한다. 나는 향도 노래 옆에 살포시 얹고 싶다. 향을 통해 공간을 기억하면 향이 진할수록, 그 순간에 몰입했을수록 우리는 그 기억을 떠올리기 쉬워진다. 향도 노래만큼이나 삶의 라벨링을 도와준다. 내가 다녀간 장소, 지나온 시간에 냄새로 만든 포스트잇을 붙이면 그 순간은 연속적인 흐름에서 잠시 빠져나와 특별한 장면이 된다.     


후각은 나와 세상을 다채롭게 이해하게 돕는 감각이기도 하다. 이제껏 탑 노트와 미들 노트, 베이스 노트의 차이를 인지는 했을 뿐 예민하게 감각하지는 못했다. 그저 가벼웠다가 무거워지는 향의 무게만 느끼던 중, 금목서 향을 만났다. 금목서는 향이 진하고 아름다워 만 리까지도 퍼진다는 의미로 ‘만리향’이라는 별칭을 가지고 있는 꽃이다. 처음엔 금목서 향수의 꼬릿한 냄새에 이런 향을 향수로 만든다는 게 의아해 혀를 찼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포근한 향이 몸에 어우러지면서 행복해졌다. 지금 맡았던 향 중에서 가장 닮고 싶은 향. 탑 노트의 꼬릿함으로 미들 노트와 베이스 노트가 깜짝 선물처럼 다가오는 금목서를 마주하면서, 잔향이 아름다운 사람이 되면 좋겠다는 꿈이 생겼다. 나는 탑노트의 화려함도 좋아하지만, 베이스 노트의 따뜻함을 좀 더 사랑하고, 상대의 첫인상보다 오래 만날수록 느껴지는 정감 어린 면에 더욱 마음을 주는 사람이고 싶다.

작가의 이전글 내가 좋아하는 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