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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성헌 Jan 06. 2022

조지아-러시아 국경의 어느 하루

지난 여행기 (1)

때는 2017년 봄. 


조지아(그루지야)를 렌터카로 일주하던 중, 조지아 북쪽, 게르게티 트리니티 수도원 맞은편 호텔(룸스 호텔 카즈베기)에 며칠 묵을 때였다. 조식을 먹고 뭐 할까 고민하다가, 갑자기 체첸을 가고 싶었다. 한때 내 관심의 대상이었던 조하르의 나라. 동행들도 역사와 인문에 관심이 많은 자들 이어서 흔쾌히 동의해줬다(동행 H는 사법연수원 동기이자 오랜 여행 메이트고, 동행 K는 내가 차를 빌린 후 일정을 여행 카페에 올려서 구한 사람). 사실, 도보로 국경을 넘는 것은 여러 한국 사람들의 로망 같은 것이기도 하고. 고고 그로즈니.


동행들과 함께 차를 운전하여 조-러 국경에 갔다. 조지아 국경(Dariali Border)의 공무원들은 차량등록증을 요구했고, 보여주니 렌터카로는 못 지나간단다.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걸어서 이미그레이션을 통과했다. 세관원들은 러시아 국경 검문소까지 어떻게 갈 거냐고 물었고(계곡 따라 약 4킬로미터 거리), 우리는 히치하이킹해서 갈 거라고 대답했다. 러시아 비자는 있냐고 물어보길래, 비자 없이 다닐 만큼 의외로 친하다고 말해줬다(조지아에서는 별로 환영받을 이야기가 아니다). 


고맙게도 우리를 태워준, 우크라이나 일가족이 탄 푸르공에 몸을 싣고, 국경지대를 지나 우리는 러시아 측 국경 검문소에 도착했다. 조지아 보더에서는 사람들의 흔적이 별로 없었는데 여기는 바글바글하다. 느끼지 못했는데, 깨닫고 보니 동양인은커녕 유색인종 자체가 없다. 여행객이 없는 장소에 놓였음을 느끼는 순간도, 여행의 즐거움 중 하나다.




줄을 서서 기다렸고, 마침내 우리 차례가 왔다. 세 명의 여권을 받고서 기계에 하나씩 비춰보는데, 바로 옆에서 볼 수 있었다(특정한 장비를 통해 본 내 여권이 어떤지 처음으로 본 순간으로, 무척 신기했다). 여권을 검사한 러시아 국경 경비대원은 우리를 두고 어딘가에 한참 다녀오더니, 그냥 옆에서 기다리라고만 한다. 


우리 줄은 우리를 남겨둔 채 흘러가기 시작했다. 


터키에서 뭔가 바리바리 사서 싣고 우크라이나(크림)로 가는 푸르공도 우리를 남겨 두고 떠났다. 누가 봐도 집안의 기둥 같은 30대 여성은 우리를 자기 집(케르치)으로 초대했다. 잠깐 사이에 정이 든 그 집안의 막내 아기 얼굴이 지금도 떠오른다. 조금 시간이 흘렀는데, 옆 줄에 밀수꾼들이 적발됐다. 오래된 라다 승용차 오만 곳에 술을 숨기고 있었다. 러시아 관세법 위반자의 현행범 체포현장. 한때 내가 카톡 프사로도 썼다. 

(C) Kang Sunghun, 2017

세관원들이 그들을 조사하는데, 삼십 초반의, 누가 봐도 고위직 포스를 풍기는 자가 근처에 있었고, 그 자가 나이 든 세관원들을 지휘하며 밀수꾼들을 다그쳤다. 그러다 어느 순간, 그 자가 우리를 유심히 지켜보는 느낌을 받았다. 엔카베데의, 출세길 달리는 젊고 당성 좋은 중간간부가 반혁명 분자에게 보냈을 법한 눈빛이 그대로 느껴졌다. 사실, 그자는 밀수꾼에게는 별 관심이 없었고, 우리에게 관심이 있었던 것이다. 당시에는, 쟤 눈빛이 왜 저래, 싶었다. 


두어 시간이 지나고, 우리도 슬슬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보더에 걸린 순간 그로즈니에 가는 것은 포기했으나, 최소한 블라디캅카스 정도에는 가서 밥도 먹고, 당시 막 오픈한 마린스키 극장 블캅 분관에 가서 구경이라도 하고 싶었는데, 시간이 꽤 흘렀던 것이다. 


그런 불안함에 젖어갈 무렵, 그 자가 우리를 불렀다. 정확한 영어로, ‘Follow me’라 말하고, 성큼성큼 앞서 나갔다. 적지 않은 규모의 국경 사무실 복도를 한참 돌고 돌아, 한국 검찰 특수부 조사실과 똑같은 구조의 어떤 방으로 들어갔다. 그는 자리에 앉았고, 우리 셋의 여권을 하나하나, 꼼꼼히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나부터 질문의 대상이 됐다. 그는 영어가 상당히 유창했지만, 'Sir'나 'Please' 같은 단어는 사용하지 않았다. 


“Tell me who you are.”


“나는 한국에서 로펌을 운영하는 변호사이고, 여행을 좋아하는 사람이다.” 그는 내 여권을 한 장도 빠지지 않고 유심히 관찰했고, 특정한 날짜와 공항을 메모했으며, 색 바래가는 희미한 도장에 대해서 캐물었다. 특히 타원형의 작은 도장들에 관심이 많았다. 그는 JFK 또는 광화문 대사관의 담당자 보다, MBS 카지노 보안요원보다 훨씬 꼼꼼하게 관찰했다. 다른 동료의 여권과 신상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였다.


신상파악이 끝난 후, 러시아어를 할 줄 아는 H(H는 여러 나라의 언어를 구사한다)을 마주 앉히더니 러시아어로 물었다. 한국의 공무원과, 로펌 대표와, 증권사 이사가 어디로 가는 것이냐. 모두 특정 국가의 비자가 있고, 여러 나라를 오갔는데, 특별히 남러시아에는 무슨 일이냐. 실제 직업은 따로 있는 것 아니냐, 무엇보다, 오세티야에 볼 일 있어 온 것이냐. 




‘오세티야’라는 단어가 나오자 나는 그의 눈빛을, 우리의 처지를 비로소 이해했고, 우리를 대체 무엇으로 의심하는지 알아챘다. 나는 바로 트립어드바이저로 미리 찾아 둔(그로즈니 못 갈 것을 대비해서) 블라디캅카스 샤슬릭 맛집과 마린스키 극장 건물 사진을 보여주며 그에게, 우리는 러시아 문화와 음식을 좋아하는 사람들일 뿐이라고 말했다. 


마린스키 블라디보스톡 분관 1열에서 찍은 아내와 딸의 사진, 붉은 광장 무덤 방문 사진, 러시아 대극장에서 스완레이크 커튼콜 찍은 사진도 보여줬다(그는 내가 갤러리에서 위치 기반으로 사진을 보여주자, 옆으로 오더니 지도를 빙 돌려보기도 했다). 우리 모두는 경쟁적으로, 자신이 얼마나 러시아 문화를 사랑하는지, 무슨 인연이 있는지 떠들어댔다. 우리는 아무도 체첸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내가 왕뚜껑 얘기를 해서, 빈축을 사기는 했다.


"Do you know wangtookung officer?" 

"아 시바 형 도시락이야"


그렇게 긴 똥꼬쇼를 하고 나서야 우리는 그 방에서 나올 수 있었다. 그는 미란다 원칙을 고지한 바 없다. 잠깐씩 쉬는 한숨, 경쾌한 영어 발음으로 일상을 묻고 쇠칼 같은 러시아어로 취조를 하던 그 사람. 40대 비혼 K는 그 자리에서 팬이 됐다. 그는 우리 보고 조지아로 돌아갔으면 좋겠다고 얘기했다 한다. 돌아가라 한 건지, 돌아갔으면 좋겠다고 한 건지 모르나, 아무튼 H는 그리 전달했다. 이미 시간은 오후 세 시를 지나, 날도 저물기 시작하는 터라, 돌아가기로 결정했다. 우리는 세관을 돌아 그 반대편, 조지아행 출구로 옮겼다. 




조지아 방향의 러시아 세관원은 우리에게 물었다. 당신들은 무엇을 타고 여기에 왔느냐고. 걸어서 왔다고 하니, 어떻게 여기까지 걸어서 오느냐며, 본격적으로 우리를 또 의심하는 모양새다. 반대편에서의 일을 이야기했으나, 동행의 러시아어 표현력으로는 그 사정을 제대로 이해시키기 어려운 상황으로 보였다. 간첩 혐의를 받았다가 풀려난 길이다, 그런 얘기는 못하지 않겠는가.


그렇게 우리 줄이 막히기 시작하자, 줄 뒤의 여러 국적의 사람들이 우리 주위로 모여들기 시작했다. 예레반대(YSU) 다닌다는 대학생이 나섰다. 우리는 그에게 영어로 사정을 설명했고, 그는 세관원과 뒤에 줄 선 다국적인들에게 그 내용을 전달하기 시작했다. 그는 무슨 프리마돈나처럼 러시아어로 우리의 이야기를 했는데, 별일도 아닌 우리의 얘기가 어떻게 전달됐는지, 사람들은 우리를 보고 폭소하고, 황당해했다. 


그 와중에 누군가 북한 애들 아닌가 의문을 제기하기도 했다는데, 다른 사람이 내 선글라스와 슬링백을 가리키면서 북한 애들은 돈 없어서 저런 거 못 산다고 했다 한다(나는 이후 여행에서, 습관처럼 Sud/Nord 묻는 외인들에게 그리 대답한다). 그렇게 그들은 서로 웃고 떠들어댔다. 꽤 긴 시간이었지만, 줄이 빠지지 않아서 짜증 내는 사람은 없었다는 점은 좋았다. 이름도 묻지 못하고 사진도 같이 찍지 못한, 멋진 통역 아가씨가 어레인지 해준 아르메니아 할아버지의 승용차에 타고 우리는 조지아로 돌아왔다. 




우리 셋은 지금도 매년 5월이면 모여서 ‘스파이 혐의로 6시간 러시아에 억류되어 피의자 신문을 받은 날’을 기념한다. 다른 것도 아닌 스파이 혐의를, 다른 곳도 아닌 구소련 분쟁지역에서 , 다른 기관도 아닌 KGB의 후신에게 받았다는 게 우리는 정말 신났다. 


“KGB still watching you”


남들과 다른 장소에 가보겠다고 무작정 나선 길. 나는 그 장소에 도달하지는 못했으나 길 위에서 평생 잊지 못할 경험을 했고, 그 경험을 나눈 자들과 무사히 돌아왔다. 그러면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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