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 일상 이야기
여행은 항상 수많은 이야기를 가져왔다. 아침에 일어나는 순간부터 돌아올 때까지 수많은 감정을 묻힌 채 집으로 향한다. 여행이 다 끝나고 난 후 피곤한 몸을 이끌고 침대 속에서 다 하지 못한 마지막 여행을 떠났다. 그리고 일상으로 돌아오면 아껴두었던 초콜릿을 꺼내 먹듯 조금씩 조금씩 이야기를 꺼내어 위로를 한다.
여행을 떠나기 전 해야 할 일들이 은근히 많다. 유통기한이 짧은 유제품이나 이미 개봉한 식품들을 미리 처리해야 하고 돌아올 때 갈아입을 옷을 위해 빨래도 미리 해두어야 한다. 그 뒤 묵은 체증을 씻어내듯 쌓여있는 방안 먼지들을 제거하고 이부자리까지 정리하면 기본적인 여행의 끝이다.
그 뒤로 의식을 치르듯 가스 불을 껐는지, 보일러는 외출로 맞춰 두었는지, 창문은 닫았는지, 문을 잠고 왔는지 확인하고 나서야 비로소 마음의 안정까지 얻는 편안한 여행을 할 수 있다.
이번에 말썽을 부린 건 작년 크리스마스 선물로 받은 네스프레소 커피 머신이었다. 아침마다 사약을 제조해주어 요기 나게 썼는데 물통을 비워두고 가는 걸 깜빡했다. 여행 다음날 아침 커피를 마시지 않으면 도저히 일어날 수 없을 것 같아 피곤한 몸을 이끌고 커피를 내리는데 물통 속에 무언가 있었다.
아무 생각 없이 쳐다보다 마시던 커피를 바리고 헛구역질을 했다. 물통 속에 녹조가 있었다. 이게 무슨 일인지.. 물도 자주 갈아주었는데 여행 한번 다녀왔다고 녹조가 생겨버리니 충격이 가시질 않았다. 언제인지 기억나지 않지만 커피 기계를 창가 쪽으로 이동해두었는데 그게 문제가 된 것 같다.
커피 통을 세척하고 커피 기계 내부를 청소하려는데 이차로 충격을 받았다. 예전에 렌털 업체를 통해 커피 기계를 사용했는데 몇 번 커피를 내리면 스스로 내부 청소까지 했다. 당연히 네스프레스 커피 기계도 자동으로 될 줄 알았는데 선물 받고 나서 한 번도 청소되지 않았다.
유튜브에 내부 청소하는 법을 검색 후 커피 기계 버튼을 눌렀는데 경악을 금치 못했다. 흰 그릇에 커피 찌꺼기와 보리차 같은 색상의 물이 계속해서 나왔다. 당연히 주기적으로 청소해주어야 하는 게 맞는 건데 렌털 서비스에 찌들어 무감각해졌다.
아침부터 이게 무슨 일인지 다른 쪽으로 잠이 싹 달아났다. 덕분에 거실을 시작으로 주방, 화장실 청소까지 마쳤다. 오랜만에 빛이 나는 식탁을 보니 뿌듯함과 동시에 피로가 몰려와 다시 잠을 청했다. 커피 기계 아직도 창가 쪽에 있는데 일어나면 꼭 그늘진 곳으로 옮겨놔야겠다.
https://journeyandwander.tistory.com/43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