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을 쥐어짜 내도 금세 증발해버릴 땀처럼 아주 잠깐의 흔적만 보였다.
흔적이 사라지고 난 자리는 기분 나쁜 체취로 가득했다.
아무리 좋게 마무리하려 해도 할 수 없는 우리 사이처럼
서툰 이별이라 하기엔 담담했고
성숙한 이별이라 하기엔 서로를 헐뜯기 바빴다.
우린 사람들과는 다른 이별을 할 줄 알았는데
만나온 시간 때문인지
아니면 억울함 때문인지
아니면 서러움 때문인지
알 수 없는 감정에 뒤섞여 끝내 눈물을 보이고 말았다.
이게 우리의 마지막 이기 때문에 흘리는 눈물이 아니었다.
저 깊숙이 숨겨져 있는 빙하가 햇빛을 보고 사르르 녹아가는 것처럼
드디어 서로 속마음을 이야기하고 왜 그게 지금이어야 했는지
유통기한이 지난 화장품 샘플을 바라보는 것 같다.
버릴 수 있지만 우선 가지고 있는 그런 사랑
언제 받았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 것들이 차곡차곡 쌓이다
드디어 눈에 거슬려 한번에 정리해버리는 연인이었다.
화장품 샘플처럼 사람 마음도 샘플처럼 먼저 사용해볼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적어도 내가 좋아하는 향인지, 나한테 맞는 타입인지 확인이라도 할 수 있을 테니
쌓여있던 샘플들을 다 버리고 나서야 그동안 답답했던 자리가 깔끔해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