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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페이퍼 Jul 09. 2023

시혼(時婚)

숨이 탁 막힌다는 표현이 이런 걸까?

한참을 그저 멍하니 바라보다 

중력에 이끌려 바닥에 주저앉아  

개미가 숨을 쉰다면 이런 걸까 싶을 정도로 소리 없는 한숨을 쉬었다. 


모든 일의 시작은 사소한 것에서부터 시작된다. 

참는 것이 미덕이라는 말은 누구를 위한 말인 걸까?

설탕 같은 달콤한 말들이 

소금보다 더 짠 눈물이 될 것이란 걸 누구도 알려주지 않았을까?


요리가 다 끝나도 식사가 다 끝나도 망부석처럼 있는 너

쌓여가는 빨래더미를 보고 그저 한숨만 보는 나 

술 마시면 새벽 내내 화장실에서 자고 있는 너 

불편하게 잠을 자고 다음날 출근해야 하는 나 


어느새 침대에 돌아와 자고 있는 너를 보고 용서하는 나를 용서할 수가 없다. 

멍청한 건지, 미련한 건지 아님 미쳐버린 건지 

출근길 버스 안에서 노래를 들으며 오늘 하루는 제발 아무도 나를 건들지 말길 

이제 화낼 힘도 없어 조그마한 스침에 바스러질 것 같다. 


부모님을 보면 참 대단한 것 같다. 

어떻게 한 사람만 바라보고 몇십 년을 함께 살아가는지 새삼 존경스럽게 느껴진다. 

오늘은 어떻게든 쌓여있는 걸 풀어보기 위해 대화하려는데 

어디서부터 이야기해야 할지 막막하다. 


문 앞에서 크게 한숨 쉬고 

최대한 기분 상하지 않게 대화를 시도하지만 

한숨 쉬며 피곤하다는 답을 듣고 들어가는 너를 보면

사람들이 왜 이혼을 결심하는지 알 것 같다. 


모든 것이 뒷전인 것 같은 나

세상의 모든 짐은 메고 살아가는 너 

평생을 함께 할 것이라 약속했던 우리

이제는 끝맺음을 지어야 할 때가 올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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