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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남세스 Dec 31. 2023

97. 전교학생회장 당선 중2, 아들이 달라졌어요.

직장맘 상당소(가족 편)

초등학교 1학년, 학교 가는 것을 매우 싫어했다.

친구가 없었다.

조용하고 붙임성 없는 첫째는 친구 사귀는 것에 어려움을 겪었던 것으로 보인다.

4월 선생님과 첫 상담 후

"제 아이가 학교 가기 매우 싫어합니다."

"혹시 친한 친구가 있을까요?"

선생님께서는 "첫째에게 물어볼게요." 해주신다.

그리고 피드백이 왔다.

"어머니, 첫째가 친한 친구가 없다고 합니다."

"그래서 친해지고 싶은 친구가 누군지 물어봤더니 혁(가명)이랍니다."

제가 혁이에게 첫째랑 친해져 보라고 말해보겠습니다.


다행히도,

혁이는 다정다감한 아이였고, 정이 많은 아이였다.

혼자 있는 친구가 안쓰러웠는지. 신경을 써주기 시작했다.

혁이의 얘기를 빌자면,

오늘도 어제도 첫째와 친하게 지내라는 선생님의 말이 신경 쓰여 첫째에게 호기심이 생기기 시작했다. 고 한다.

'선생님은 왜 자꾸 나랑 저 친구랑 친하게 지내라는 거지?'

의문으로 시작된 둘은 정말 친한 친구가 되었다.

둘은 따로 있을 때보다 함께 있을 때 많이 즐거워했다.

그리고 그런 아들을 챙겨주는 혁이 엄마 덕분에 둘은 사이좋게 지냈다.

참으로 다행스러운 일이다.


직장맘으로 첫째의 초등학교 1학년 입학은 매우 불안한 일 중에 하나이다.

내가 직장에 다니는데 학부모 모임은 어떻게 참여하지?

학교에서 행사가 있으면 휴가를 내고 가면 되는데, 아는 엄마들이 없는데, 어떡하지?

아이가 학교에 잘 적응할 수 있을까?

너무나도 많은 질문들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그에 대한 해답을 찾으려 도서관, 서점 등에서 많은 책들을 읽어보았지만 역시나 케이스바이케이스 인지라 나의 아들은 또 다른 해답을 나 스스로 찾아줘야 했다.


물론, 나이 차이가 나는 둘째가 태어나 첫째의 1학년 11월까지 나는 나의 아들 둘과 함께 할 수 있었다.

육아휴직이라는 도 덕분에.

1학년은 어떻게든 같이 있어주고 싶었기 때문에

첫째 때 육아휴직은 1년을 채 쓰지 않고 복직했었다.

돌이켜 보자면, 너무나도 힘든 시기였다.

수유 중이었고, 첫 아이였기에 나도 너무나 힘겨운 시기를 보낸듯하다.

하지만 최선을 다하고 싶었다.

 

학기 초가 되면 반에서는 무조건 엄마 반대표를 뽑는다.(요즘엔 초등학교에 반장 제도가 없다.)

엄마들은 자기 일도 바쁘고 굳이 반대표를 할 필요성을 못 느껴서인지 이유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자진해서 엄마 반대표를 하는 사람은 본 적이 없다.

6년 내내 그랬다.  

첫째는 코로나 터지기 전이라 의외로 반대표 엄마가 할 일이 많았다.

나는 마다하지 않았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자진해서 반대표를 해왔다.

첫째의 6학년 학교생활 내내 나는 그 반대표라는 것을 했다.

엄마들 전화번호를 학교에서 받아서(지금은 개인정보 동의를 받아야 하므로 전화번호를 입수할 수 없다.)

단톡방을 만들고 주기적으로 아이들 생일파티를 하고 엄마들 모임을 만들어서 자주 만남을 가졌으며, 학교에서 생기는 에 전달자 역할을 했다.

하지만 이도 코로나가 터지기 시작한 해부터는 역할이 축소되어 반대표라는 취지가 무색해졌다.

오히려 직장 다니면서 할 일이 줄어 좋기도 했다.


내가 반대표를 한 이유 중 하나는 직장맘이라는 단절을 극복하고 싶었다.

직장맘에겐 정보가 차단될 수밖에 없는 구조였기에 정보를 먼저 얻으면 된다고 생각했다.

귀찮고 불편한 일이 있지만 나는 그것을 정보와 맞바꾸겠다고 생각했다.

하나 더는 I(내향적) 성향의 첫째를 지켜보고 싶었다.

왠지 나의 학창 시절과 비슷한 양상을 보이는 첫째에게 나는 용기를 주고 싶었다.

엄마가 들여다보고 있어. 니 옆에 항상 있어. 라는 메시지를 보내고 싶었다.


첫째 1학년에 복직을 하고 중2가 되기까지

학교 공개수업, 학부모 상담, 총회, 교장선생님과의 대화, 시험감독 등 모든 행사에는 무조건 참여했다. 생각보다 귀찮지만 즐거운 일이었다.

바뀐 수업 방식, 아이들의 태도, 선생님의 수업 등 모두 내게는 신선하고 재미있는 일이었다.

오히려 내가 수업을 받고 오는 기분이랄까.

함께 할 수 있어 좋았다.

아이들 사진도 찍어주고, 말도 섞고, 별일 없는지 안부도 묻고 선생님도 만나고 진심으로 즐겁다.

엄마들의 학교행사 참여 시 초등 1~4학년은 대부분의 학부모가 오고, 초등 5, 6학년까지 10~15명가량 참석한다. 하지만 중1이 되니 10명 남짓, 중2가 되니 4~5명만이 참여한다.

이 또한 별 필요성을 못 느끼는 듯하다.

아이들이 엄마가 오는 것을 반기는 것도 아니고, 심지어 오지 말라한다.

막상 가면 수업 45분 동안 가만히 서 있어야 해서 딱히 할 일도 없어서가 아닐까?


중2 아들이 내향적인 성향에서 외향적으로 바뀌기 시작한 것은 초등학교 6학년 때부터이다.

인기가 많은(외모적으로는 키가 크고, 운동을 좋아하고, 공부에 관심 없는 친구들) 인싸들과 친해지면서부터인 것 같다.

점점 밖으로 나가는 횟수가 잦아지고, 뭔가 본인이 주도하여 약속을 잡고 친한 친구들이 점점 늘어나기 시작했다.


중1이 되던 날 입학식이다. 친구들이 첫째 근처에 참으로도 많이 모여 있다.

녀석, 친구 많아졌네. 뿌듯하다.

예전과 비교하면 참 많이도 바뀐 아들이다.  


그러던 그가, 중2 2학장선거를 나가겠다고 한다.

오호 웬일이지? 나는 그냥 하는 말이겠거니 넘겼다. 그러면서 이왕이면 나가면 좋을 텐데 싶어,

"첫째야, 한번 해바. 좋은 경험이 될 거야." 이 말을 조심스레 등뒤에 남겼다.

부담은 주기 싫었다.

하지만 첫째는 반장선거에 나가지 않았다.

그럼 그렇지.

성향이 아무리 바뀌었다고 해도 반장선거는 무리였나 보다.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궁금했다. 왜 나가지 않았는지.

나중에 물어봤다.

"왜 반장선거에 안 나갔어?"

"친한 친구가 하고 싶다고 해서 나는 이번엔 안 나갔어. 내가 나가면 친구가 안될 거 같았어. 다음에 나가면 내가 될 거야."

이 대책 없는 자신감을 무엇이지?

중2라서 그런가?

저자식 뭐지?


그러던, 첫째가 12월 말에 증명사진 찍은 걸 보정해서 톡으로 보내왔다.

'엄마 어떤 사진이 제일 좋아?'

'왜?'

'그냥.'

나는 직감했다. 녀석 진짜 전교회장선거에라도 나가려고 하는 건가?

회사에서 온 나에게 그가 말한다.

"엄마 선거 포스터 학교에 붙여졌어."

 근데, 자기 얼굴이 포스터에 붙여져 있으니, 갑자기 인스타 DM으로 선배 후배들이 친구 하자고 연락이 온단다.

"선배님 친해지고 싶어요. "

첫째는 아직 선거전이라 인기관리를 해야 해서 답변을 어떻게 보내야 할지 모르겠단다.

그러면서 상냥하게 거절했다고 한다.

"아니야. 나는 괜찮아."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후배에게 연락이 와, 답변을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하고 있는 녀석의 표정이 기억난다.

더 이상 개입은 하지 않았다.

사실은 나도 모르겠다.

선거전에는 친한 척을 하라고 할 수도 없고, 단호하게 거절하면 본인에게 투표를 안 할까 봐 걱정인가 보다. 아들에게 해 줄 현답이 생각이 나질 않았다.

선거가 끝나고 아들에게 다시 물었다.

"그 후배는 어떻게 하고 있어?"

그냥 DM친구로 받아주고 질문에 대한 대답만 해주고 있다고 한다.


두둥!

선거날, 오전에 아들 선거날이라고 생각하니 나도 조금은 긴장이 됐다.

잘하겠지? 아침에 출근하면서.

공약을 단호하고 분명하게 말해.

요 한마디만 던지고 온 상태였다.


회사에 있으니 잡 생각이 안 나서 좋은 점도 있다. 시간이 흐르고, 잠시 생각에서 멀어져 간 순간!

가족 단톡방에 카톡이 왔다.

아들 : 39.4

신랑 : 뭐야?

나 : 오늘 선거했다고 하는데 투표율인가 보네.

신랑 : 선거에 나갔다고?

나 : 어 기호 O번이라고 했어.


아들도 긴장이 될 거 같아 꼬치꼬치 묻지 않은 상태라 몇 팀이 나간 줄도 모르고, 아! 녀석 과반수가 안되었으니 떨어졌나 보다. 싶어서 위로의 글을 남겼다.

당선됐어라고 하면 될 일을. 39.4를 굳이 써서 우리에게 기대와 아쉬움을 동시에 남긴 그 녀석도 참!


나 : 괜찮아. 첫째야! 고생했어. 다음 기회에 또 해보자.

아들 : 엄마! 무슨 소리야. 우리 투표율이 높은 거야. 나! 당선됐어.

4팀이 나왔고, 비교적 높은 투표율로 당선이 됐단다.

대견한 녀석이다.


스스로 판단하고 스스로 결정해서 어찌 되었던 그는 하고자 하는 일을 이뤄냈다.


아들 축하한다.


엄마도 분발할게. 행복해지려고. ㅎㅎ

너도 너의 행복을 열심히 찾고 있는 것을 보니, 정말 뿌듯하고 멋지구나. 아들아!

하지만 한편으로, 공부 좀 하자. 회장이면 공부도 좀 잘해야 하지 않겠니?라는 또 다른 생각이 든다.

어쩔 수 없나 보다. 욕심은!


그래도, 2024년을 맞이하는 이 시점에 나도 좀 으쌰 으쌰를 해보려 한다.

용기 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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