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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남세스 Apr 18. 2024

99. 소심한 상사 대처법

직장망 상담소(조직 편)

나는 가끔 내가 매우 못된 마음을 먹는다.


올해 1월 인사발령이 있었고 팀장 승진 이후 새로운 보직이었다.

작년에 만들어진 신생부서로, 내 업무가 무엇인지 잘 모르고 왔다.

기관협력을 하라는데 누구와 무엇을 어떻게 협력하라는 것인지 감이 안 왔다.

알고 보니, 기획부의 기획팀 한과를 옮겨놓은 팀이었다.

그러다 보니, 팀장, 과장, 직원의 3명으로 구성된 작은 팀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한과에서 하던 업무를 굳이 하나의 팀으로 키워놨으니 말이다.

그리고 업무도 원래 부서에서 하고 싶지 않은 것들의 총집합체다.


15명씩 일하다가 새로운 곳으로 오니, 참 할 일이 많았다. 

직원 중 누구 하나라도 없으면 내가 그 일을 해야 했다.

기안을 하고 보고서를 만들고,

기존의 의사결정 업무 위주에서 실무중심으로 바뀌니 시간은 잘도 갔다.

임원 1명을 더 만들기 위해서 억지로 만든 부서다 보니, 잡다구리 한 팀들이 모여 있었다.

총 5개의 팀으로 구성되어 있었으며 대부분이 팀장, 과장, 직원 3명으로 구성되었다.

여러 개의 과 업무를 팀으로 올려놓다 보니 당연히 인적 구성원이 소수로 될 수밖에 없다.

때문에 기존 부서에서는 유기적으로 움직였던 부분들이 막히기 시작했고

타 부서의 업무 협조 또한 쉬이 이루어지지 않았다.


소위, Beg모드였다.

그도 그럴 것이, 힘이 없는 신생부서에 갓 승진한 부장이라니.

부서를 키워줄 생각이 없음은 확실했다.


해주세요. 부탁드립니다. 도와주세요.

철저한 을의 삶이란 생각보다 마음이 어려웠다.

하지만, 뭐 을이면 어떠하냐 내가 하면 다 갑같은 일이지.

자기 합리화의 일인자인 나는 상관없이 내 할 일을 했다.


하지만 부서에 온 지 3개월이 지날 무렵,

부장이 갑자기 부른다.

우리 부서 5개 팀 중 1개는 폐지되고,

2개 팀은 원래의 부서로 이동할 것이라는 말 같지도 않은 말을 듣고 있었다.

듣는 순간, 화가 머리끝까지 나버렸다.

나는 버럭버럭했다.

말도 안 된다.

인사시즌도 아니고 갑자기 4월에 무슨 직제개편에 인사발령이냐? 우리는 그럼 어떻게 되는 거냐?

누가 봐도 낙동 갈 오리알 신세가 되어버렸다.

부장은 어떤 팀을 가져올지 고민해 보라 한다.

아 고민하면 들어줄 사람이 있는 건가?

순진한 척인지 뭔지 나는 또 무슨 부서를 갖고 올지 엄청 고민을 해본다.

열심히 고민해서 다음날 부장과 함께 부대표 보고를 가니,

그냥 기획팀에서 하자는 대로 해주란다.


어떤 부서가 자기 업무 중 핵심 업무를 타 부서에게 넘길쏘냐. 

우리가 원하는 팀을 기획부에 얘기했으나 모두 까였다.

제대로 까였다.


그리고 지금 나는! 그냥 체념 상태다.

내 업무나 열심히 하면 그만이지.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없구나.


곧 인사발령이 날 2팀도 자기들은 뭐냐?

또 옮기냐? 불만이 가득하지만. 그들도 어쩔 수 없이 체념 상태다.

어디 따질 곳도 없고, 조직의 결정에 따라야 하는 게 회사원이라는 딱지!


우리는 7명의 매우 작은 팀보다도 더 작은 부서로 7월까지 지내야 한다.

7월에는 새로운 팀을 준다는데

코웃음이 난다. 

개뿔!


부장도 올해 첫 부장을 달아, 힘이 없다.

그냥 그런가 보다 할 뿐.

하지만 난 이 대목에서 또 한 번 더 화가 난다.

비록, 힘이 없다지만 직원들 다독이고 미안하게 됐다. 못 지켜줘서 미안하게 됐다.

이 말 한마디를 기대했다.

부장 본인도 자신의 무능함에 화가 나겠지만,

솔직히 밑의 직원들은 어떤 설명도 없이 뭔가가 이루어지면 불안하기 마련이다.

그럴 때 설명해 주고, 한마디라도 더해주면 기운이 난다.

서로 위로하고 토닥이며, 그냥 또 받아들이게 된다.

낼이 인사이동이라는데,

마지막 점심 한마디도 하지 않고 본인 핸드폰만 쳐다보는 부장에게 안쓰러움보다

무능함을 느낄 수밖에 없다.

나는 그래서 그가 하는 일에 모두 동의하지 않게 된다.

내 정무적 감각이 더 뛰어나다고 느낄 때가 있다.


결국은 3개의 팀이 아작이 난 날이다.

부장이 나를 부른다.

이만저만해서 2개의 팀만 남고 나머지는 가게 되었다.

가만히 있을 거냐? 따져 묻는다.

나라도 가서 대표님을 만나고 오겠다고 으름장을 놓는다.

(우찌 따진단 말이냐)

그러면서 하는 말!

오늘 저녁에 시간이 되냐고 묻는다. 그때가 퇴근 30분 전!

왜 그러냐고 했더니, 우리끼리 대책 회의를 하잖다.

난 이 대목에서 다시 한번 그에게 환멸을 느꼈다.

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은 왜 이렇게까지 밖에 할 수 없는지 관련 임원과 대화를 하는 게 급선무 아닌가?

어휴~

나는 결국에 회식은 가지 않았다.

우리끼리 대책 회의는 정말 무의미하다.

술 먹으면 해결책이 나오는 것도 아니고.


근데, 어찌 되었던 날 믿고 있는 부장에게 신뢰감을 주지 못하고 같이 나무라고 있는 내 마음도 편치만은 않다.

결국, 내가 헤아려주는 수밖에 없어 보인다.


어렵게 부장이 되어서 대우받고 싶을 텐데.

대우는커녕 무시만 받고 있는 자신도 처량할 테니.

나라도 힘을 실어주자라고 생각해 본다.

하지만 나도 모르게 그에게 지적을 하고 화를 내고 있다.

물론 동기라서 가능한 일이다.

입사 때부터 같은 부서에 발령받고 매우 친하게 지내던 동기라, 나도 편할 수밖에 없다.

누울 자리를 보고 자리를 편다고, 나도 참 못났다.


선배나 성격이 개 같은 사람이 부장이었으면 찍소리도 못했을,

아니다 성격상 찍소리 하고 어디 다른 부서로 보내졌을 것으로 보인다.


타 부서에서도 이런 얘길 한다.

너희 부장이 너무 소심하고 할 얘기도 잘 못하는 스타일이라, 네가 대신할 필요는 없으니 나서지는 말라고. 괜히 다칠 거 같다고.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고,

부장을 이해하고 따라야 하는 상황!


나는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지 고민이다.


적당히 맞추다가 다른 부서로 가느냐.

의리를 지키며 부장의 곁에 머무느냐. 

쓴소리 해가면서 부장과 나와의 사이를 멀어지게 하느냐.


평소의 나라면 의리를 지키며 부장의 곁에 머물겠지만,

존경심이 생기지 않아, 매우 애를 먹고 있다.


존경하고 싶지 않은 사람을 거짓으로 존경하는 듯한 태도를 취하는 것이 가장 어렵기 때문이다.


그냥 하하 호호 웃으며 대충 맞추면 편할 사람인데,

나도 그럼 매우 편하게 대충 시간 때우다 집에 가면 그만일 텐데,

왜 나는 그게 안 되는 인간이냔 말이다.

마음에 안 드는 것은 말해야 하고, 무능한 사람에게는 경멸의 눈빛을 보내는 내가 나는 가끔 버겁다.


이래서 입사 초기에 그렇게도 회사에 적응을 못하는 인간이었나 보다.


새삼 다시 요즘 내가 20년 넘게 회사를 다닌 인간이 맞나 의문이 든다.


지금이 기로다.

20년 회사 짬의 결과로는 나는 부장을 믿고 따른다는 태도를 취할 필요가 있다.

그것이 비록 나에게 거짓된 행동이라도.

하기 싫은 일이라도.


이 글을 쓰며, 다짐해 본다. 굳이 다짐이란 걸 해본다.

맞춰주자~


되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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