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문하는 습관은 하루아침에 들지 않습니다. “아이들과 질문대화를 해야지!”라고 결심했다고 해서 입에서 질문이 술술 나오는 게 아니라는 뜻입니다. 할 말조차 선생님이나 엄마가 입에 넣어주는 일에 익숙한, 표현이 수동적인 아이들이 갑자기 부모님이 질문한다고 해서 답변을 술술 풀어가기 어렵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오히려 급작스러운 변화에 잔뜩 불편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변화를 지속하기 어렵고, 습관이 되기 전 포기하기 쉽죠.
세상 다른 일이 그렇듯, 질문대화를 하기 위해서도 인내심이 필요합니다. 질문대화의 풍성한 열매를 맛볼 기회는 인내심이라는 기차를 타야 잡을 수 있습니다. 칙칙폭폭 기차가 경적소리를 높입니다.
“시끄럽지? 불편하지? 당황스럽지?”라고 우리를 시험합니다.
“꼭 이렇게 어려운 길을 가야겠어? 다른 방법도 있잖아. 좀 더 편안한, 아니 너한테 맞는 방법을 찾아봐.”라고 그럴싸하게 유혹할 수도 있습니다.
“삑- 삐삑--”
기차에 오르시겠습니까? 아니면 다른 기차를 기다리시렵니까?
잠깐 다른 이야기 하나 할까요. 좋은 습관 들이기가 얼마나 어려운지는 많은 사람이 인정합니다. 그런데 처지를 바꿔 생각하는 것도 그에 못지않게 어려운 일인 듯싶습니다. 초등생 아이가 공부하는 습관이 잘 안 든다며 고민하는 엄마랑 이야기 나눈 적이 있었습니다. 아이가 정해진 양의 학습지를 매일 안 한다며 한숨 쉬었죠. 자녀가 성실하게 공부하는 모습 보고 싶은 바람이야 말해 무엇할까요.
목표치를 낮춰서 천천히 습관을 들리기 위해 노력해보자고 제안했습니다. 일주일에 단 하루라도 아이가 스스로 해볼 수 있도록 기회를 주자는 취지였습니다. 엄마가 버럭 합니다. 일주일에 하루는 너무 적답니다. 사실 아이 입장에서는 그것도 쉽지 않다고 하자 높은 톤의 외마디 답변이 돌아옵니다.
“하루 30분인데요!”
맞습니다. 하루 딱 30분입니다. 그런데 그게 말같이 쉽지 않다는 걸, 어른들이 벌써 잃어버렸습니다. 제가 아이들 상황을 이해하는 이유는 간단합니다. 저도 30분 공부하기 습관 들이기에 계속 실패하고 있거든요.
중국어를 틈틈이 공부합니다. 사실 ‘틈틈히’라고 말하는 데는 은근슬쩍 핑계의 여지를 주는 다분히 계산적인 의도가 숨어있습니다. 학습 의지를 불태우며 하루 딱 30분만 하자며 다짐했습니다. 엄마들 말처럼, 딱 30분 말입니다. 그런데 전혀 쉽지 않더군요. 머릿속 생각처럼 매일 30분씩만 투자하면 중국어 회화가 확~ 늘고도 남을 텐데 그게 ‘말처럼’ 쉽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전 이번 주에도 매일 중국어 공부를 하지는 못했습니다. 물론 여기서 매일은 주 5일 평일을 뜻합니다.
정작 내가 그 쉬운 30분 투자를 못 하니 아이들이 하루 30분 공부하는 습관 들이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잘 이해가 되는 겁니다. 내가 그 처지에 놓여 봤기 때문이죠. 이런 걸 두고 역지사지라고 하죠. 혹시 지금 아이들 공부 습관을 놓고 실랑이 중인 부모님이 계신다면 부모님이 먼저 보름만 도전해 보세요. 아이들의 이런저런 핑계가 너무 잘 이해될 겁니다.
좋은 습관 만들기는 쉬운 일이 아닙니다. 빌게이츠는 탁월한 성공을 거둔 사람입니다. 비결이 어디에 있을까요? 특별한 점 하나 없는 그의 말입니다.
“사실 전 다른 사람의 좋은 습관을 제 습관으로 만듭니다.”
전 세계 사람들의 삶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성공도, 좋은 습관이 있어 가능했습니다. 자녀들과 함께 질문대화 나누는 건, 좋은 습관을 넘어 훌륭한 습관입니다. 아니 위대한 습관입니다. 필요한 변화가 습관으로 정착될 때까지 겪어야 할 불편함만 인내로 참아내면 됩니다.
요즘 노력하는 습관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한숨 쉬기”입니다. 제게 분노라는 문제는 오랫동안 저를 힘들게 하는 감정적 약점입니다. 사실 제 피에 흐르고 있는 기질이기도 합니다. 돌아가신 친정아버지가 다혈질이셨으니까요. 쉽사리 분노하지는 않지만, 특정 문제에 화가 나면 아빠가 그랬듯이 저도 그 순간에는 헐크가 되고 만답니다. 결혼하기 전에는 초록 괴물로 변할 기회가 많지 않았습니다. 또 다른 제 성향상 갈등의 기미가 보이면 맞부딪히기보다 피하곤 했기 때문이죠. 하지만 피할 수 없는 상대인 가족은 초록괴물로 변하는 저를 볼 수 있었습니다. 화를 폭발하면 아주 짧은 순간 일종의 카타르시스를 느끼지만, 곧 자괴감이 듭니다. 가까운 사람에게 상처 주었다는 미안함, 자신과의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는 실망감, 정말이지 이 습관은 고칠 수 없는 것인가라는 무력감 등등. 그래도 그 횟수가 많지 않아 다행이었지요.
그런데 두 살 터울의 아들 둘이 커가면서 제 안에 있는 헐크가 모습을 드러내는 횟수가 늘었습니다. 뒤돌아서면 난장판이 되는 집안이며, 엄마 심심할까 가끔 기절하게 놀랄만한 사건 사고도 왕왕 발생합니다. 아이들이 일으킨 사건에 대해 엄마의 감정적 반응이 격앙될 때 훈육을 할라치면 사뭇 고공 줄타기하는 느낌이 듭니다. 한치라도 발을 잘못 디디면 그대로 헐크 변신입니다. 초록괴물이 다시 살색 인간으로 돌아와 축 처지고 웅크린 어깨로 찢어진 옷을 만지작거리듯,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고 쏟아낸 엄마는 아이들에게 미안한 마음에, 또 자신에게 실망스러워 괴롭습니다.
타고난 성향이라지만 길들여야 할 이 문제를 가지고 씨름해온 제가 요즈음 연습하고 있는 방법이 바로 위에서 말한 “한숨 쉬기”입니다. 극도의 화가 표출되기 전 탈출구를 열어주기로 했습니다. 너무 화가 나서 큰 소리가 터져 나올라치면 그 순간, 의식적으로 한숨을 쉬기로 한 겁니다. 제 안에 응축된 화가 폭발해 터져 나오도록 하는 대신 ‘피식’하고 김빠지듯 한숨을 내쉽니다. “휴우~” 눈앞에 벌어진 상황에 대한 깊은 탄식입니다. 사실 전 의식적으로 한숨을 쉬지 않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한숨 쉬면 좋아 보이지 않았거든요. 뭐랄까 포기한 듯 보이기도 하고 무기력하게 상황을 버려두는 것만 같아 보였습니다. 그런 저였기에 한숨을 내쉬기로 한 건, 개인적으로 큰 결심이었습니다. 마치 압력밥솥 내부에 가득한 뜨거운 공기가 폭발하기 전에 김이 조금씩 빠져나갈 여지를 주듯, 감정이 폭발하기 전 한숨을 내쉬며 내면의 압력을 빼보기로 했습니다. 설사 한숨 쉬는 모습이 자포자기처럼 보인다 해도 분노를 폭발하는 것보다는 낫다는 판단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이게 효과가 있습니다. 피식하고 김빠지는 한숨 소리에 제 안에 있는 분노의 에너지가 맥이 풀리는 것 같다고나 할까요. 그런데 문제는 화가 치미는 매 순간 한숨을 내쉬지는 못합니다. 아직은요. 화를 폭발하는 대신 한숨을 내쉬는 행동은 아직 습관으로 자리 잡지 못한 거죠. 시간이 좀 더 필요합니다. 여기서 시간이란 좌절하고 낙담이 되는 실패경험을 반복하는 길고 긴 시간을 뜻합니다. 변화란 그런 것이니까요. 시간이 필요하니까요. 그래서 전 오늘도 한숨 내쉬는 연습을 10번 넘게 합니다. 의식적으로 가슴 한가득 공기를 담고 코보다는 입으로, 약간의 탄식을 담아 내뱉는 “흐~으” 하는 한숨. 제 안의 헐크를 길들이는 한숨 뱉어내는 습관.
하루아침에 일어나는 변화는 없습니다. 이 점만 기억하면 인내라는 기차가 내는 소음에 익숙해질 수 있습니다. 질문하는 공부도 해야 하고 책도 읽고 연습질문도 적어보고, 실제로 연극대사 외우듯 암기도 해야 할 겁니다. 당연히 쉽지 않겠지요. 실제 아이들과 대화하는 중에 판단하는 말 대신 사고의 전환을 불러오도록 질문하는 일은 훨씬 더 어려울 수 있습니다. 하지만 변화에 필연적으로 따르는 어색함과 불편함을 견뎌내고 아이들에게 계속 질문한다면, 질문하는 습관은 어느덧 우리 생활 일부로 자리를 잡아갈 겁니다. 변화란 그렇게 오는 거니까요.
질문대화라는 터전에서 우리와 아이들의 관계는 어떻게 변화될까요? 나중에 다 알게 될 거라는 식으로 은근하게 무시하는 대신, 아이들의 눈높이로 세상을 이해해 갈 수 있도록 질문으로 사고를 열어준다면 우리 아이들은 어떤 목소리를 낼까요? 쓸데없는 질문 하느라 시간 낭비하지 말고 책이나 한 번 더 보라며 질문을 회피하고 상황을 무마하는 대신 아이들의 진지한 고민의 흔적을 포용해준다면 우리 아이들은 더 열심히 고민하고 적극적으로 자신의 인생을 대하지 않을까요? 이렇게 하면 되는데 왜 그걸 안 하냐며 닦달하지 말고 목표를 실천할 수 있는 본인의 방법을 찾아갈 수 있도록 이렇게 저렇게 질문하며 함께 고민하면 우리는 어떤 변화를 보게 될까요? 아이들의 진짜 생각과 목소리를 듣게 된다면 그 변화가 우리 아이들과의 관계에 어떤 차이를 불러일으킬까요?
질문대화로 고삐 풀린 우리 아이들의 진짜 목소리가 듣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