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지영 Jun 24. 2020

내성적인 아이들과 수다 떨기

내성적인 사람들과 대화 나눌 때는 상대방의 진심을 알기 위해 특별히 더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습니다. 만약 대화 상대가 내성적인 아이들이라면 더욱 세심하게 배려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은 사람들과 비교해서 내성적인 성향의 사람은 “꼭 필요한 경우가 아니라면” 자신의 의견을 잘 표현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필요한 경우도 다른 사람의 기준으로 보면 너무 인색한 경우가 많습니다. 물어보거나 특별히 말을 걸지 않아도 먼저 다가와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건네는 둘째와 다르게 큰애는 어지간한 일이 아니면 먼저 말을 시작하지 않습니다. 일단 말부터 꺼내고 나서 상황을 살피는 동생과 다르게 큰애는 ‘내가 이렇게 말하면 엄마가 저렇게 말할 텐데 그럼 그땐 어떻게 답하지?’라는 생각을 하느라 쉽게 입을 떼지 않는 경우도 많습니다. 성격이 ‘소극적’이라서 그렇다고 말할 수도 있을 겁니다. 하지만 저는 그 단어를 쓰지 않으려고 의식적으로 노력합니다. 평가가 담긴 말이기 때문입니다. 적극적이어야 하는데, 그에 못 미친다는 식의 평가가 기저에 깔린 표현입니다. “내향적인” 성향이라는 말을 선호합니다. 

가장 적극적인 사회라고 하는 미국 사회도 외향적인 75%의 사람들과 내향적인 25%의 사람들이 함께 산다고 합니다. 미국에 비하면 우리 사회는 내향적인 사람 비중이 더 클 겁니다. 내향적이냐, 외향적이냐는 성향의 문제일 뿐입니다. 성향은 나를 둘러싼 주변의 정보를 받아들이고 해석하는 데 예민한 정도의 차이이며 반응 시간의 차이입니다. 내향적인 또는 내성적인 사람들이 표현하지 않는다고, 표현할 내용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쉽사리 표현하지 않을 뿐입니다. 내향적인 사람들은 물어보지 않으면 좀처럼 먼저 표현하지 않습니다. 내성적인 아이들에게 더욱 질문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외향적인 사람들은 질문받았을 때 답하고 나서 다시 화제를 덧붙여 대화를 능숙하게 이어가기도 합니다. 하지만 자극에 예민하고 내성적인 아이들은 주변의 정보를 받아들이고 해석하는데 시간이 좀 더 필요합니다. 바로 표현하는 대신 정보를 처리하는데 시간을 조금 더 사용한다고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일단 시간이 충분히 확보되고 관계가 잘 성립되고 나면 내성적인 아이들은 다른 면을 보여줍니다. 조잘조잘 이야기도 잘하고 자기표현도 거침이 없습니다. 사실, 큰아이와 단둘이 있을 때는 아이가 내성적이라는 걸 거의 느끼지 못합니다. 엄마인 제게는 말도 걸고, 재미있으니 잘 보라며 친구들에게 배워온 우스꽝스러운 동작을 위해서 온몸을 불태우기도 한답니다. 하지만 상대가 엄마만큼 잘 아는 사람이 아닐 때는 이야기가 완전히 달라집니다. 낯선 사람을 만나서는 두 눈을 단추처럼 동그랗게 뜨고 약간 겁먹은 듯 목도 움츠리면서 멀뚱멀뚱 바라만 보고 있거든요. 내향적인 성향의 아이들이 갈등상황이 생기거나 오해가 있을 때, 순발력 있게 바로 표현하지 못하는 건, 할 말이 없어서가 아니라 어떻게 전달해야 할지 고민하는 중이기거나 혹은 이후의 결과에 대해 염려하기 때문이라는 걸 큰애를 통해 알았습니다.      

내성적인 아이들은, 질문을 받았을 때 답을 알고 있어도 굳이 표현하는 데 에너지를 쓸 필요가 없다고 여기기도 합니다. 꼭 답을 해야 할 이유가 절실히 필요한 경우에만 반응하는 식입니다. 이래저래 내성적이거나 또는 조심성이 많은 아이들과 대화할 때는 더 인내하며 “친절하게” 질문해야 한다는 결론이 나옵니다. 여기서 친절한 질문이란, 질문자가 원하는 답을 얻으려는 방법이 아니라 아이들이 답하기 편한 방식으로 묻는 겁니다. 

“~라는 말인 거니?”

“~라고 이해하면 될까?

이처럼 아이가 말한 표현을 이용해 되묻는 방식으로 의견을 확인하면 내성적인 아이들과 의사소통하기가 훨씬 수월해집니다. 그렇지 않아도 예민하게 정보를 받아들이고 해석하는 데 시간이 필요한 아이들에게 분석할 새로운 자극을 주는 대신 아이들이 이미 표현한 내용을 이용하면 아이들은 훨씬 편해할 겁니다.    

 

아이가 적극적으로 표현하지 않을 때, 엄마로서는 아이의 의견을 알고 싶으니 표현해보라고 채근하는 일이 많았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말하는 게 부담인 아이에게 자꾸 표현해보라고 강요하는 건 스트레스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어떻게 하면 아이에게 표현하고자 하는 동기를 부여할 수 있을까 고민하다 떠올린 표현이 있습니다. 

“평아, 사람의 마음은 보이지 않으니까, 말하지 않으면 알 수 없잖아. 평이가 마음을 말로 표현해야 엄마가 알 수 있거든. 조금 더 구체적으로 말해줄래?”

물론 이 말을 듣고 아이가 단번에 변하지는 않았지요. 어색해서, 쑥스러워서, 낯설어서 엄마 뒤로 숨어드는 경우는 여전히 있었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그때마다 보이지 않는 마음을 표현해야 하는 이유를 설명하면 아이는 이해했습니다. 자신이 표현해야 할 필요가 있다는 것을요. 구체적인 이유가 생기자 용기를 내는 빈도가 더 커졌습니다. 때로 엄마에게 도움을 청하기도 하지만 아이는 보이지 않는 자신의 마음을 다른 사람들에게 알리기 위해 자신의 목소리를 이용해 표현해야 한다는 건 이제 확실히 압니다.     


유치원이라면 상상도 못 할 일이지만 아이들이 어린이집을 다녔던지라 스승의날이면 아이들 손에 감사의 선물을 선생님께 전달해드렸습니다. 저희집 스승의날 선물은 정해져 있습니다. 마스크팩. 몇 번의 스승의날을 겪으면서 아이들도 으레 마스크팩을 사고 포장해서 드리는 일에 함께하며 익숙해했습니다. 큰애가 초등학교에 입학하던 해, 코로나 19 사태로 8살이 되고도 한참이나 학교에 가지 못한 큰아이는 다니던 어린이집에서 운영하는 방과후 학원에서 봄을 맞았습니다. 5월이 왔고 엄마는 스승의날 선생님 선물 챙기기도 바빴는데 아이는 어린이집 차량을 운행해 주시는 실장님에게 스승의날 축하한다며 색종이로 접은 하트에 고맙다는 인사말을 적었습니다. 물론 엄마는 나중에서야 알았습니다. 스승의날이 2주 정도 지났을 때였습니다. 아이가 들고 다니던 가방에 물병을 넣어주다 바닥에 깔린 종이를 보고 쓰레기인가 싶어 꺼내 들었다가 아이가 미처 전해주지 못한 하트 쪽지를 본 것이지요. 짐작해보니 상황이 이랬습니다. 학원 선생님 선물은 아침에 교실에서 전해 드릴 수 있는 시간이 있어서 문제가 없었을 겁니다. 그런데 차량 실장님께는 전해드리겠다고 나설 수가 없었던 거지요. 실장님은 계속 운전석에 계셨을 거고 아이는 자리에 앉으라고 차량 선생님께서 지도해주셨을 테니까요. 전체적인 흐름을 끊고 앞에 나서기가 부끄럽고 어색해서 차마 전달해 드리지 못한 것이지요.      


아이의 쪽지를 보면서 아이의 세심한 마음 씀씀이에 엄마인 저는 부끄러웠습니다. 스승의날에 아이들 교육을 위해서 선생님들께 작은 선물을 전해드린다 했지만, 차량 운행해 주시는 실장님께 감사드린다고, 스승의날 축하드린다는 마음 까지 품은 아이 마음은 형식적인 감사 표현에 그친 제 마음보다 더 크다는 걸 알았으니까요. 그런데 때를 놓쳐버린 쪽지를 어떻게 해야 할지 문제가 남았습니다. 아이에게 물어보니 역시나 아이는 어떻게 전달해 드리냐고 되묻습니다. 실장님께 전달하기 위한 여러 불편한 상황이 예측된거죠. 탑승지도 해주시는 선생님의 인도와는 다르게 차량 앞부분으로 나가야 하니 그걸 설명해야 하는 상황이 생긴 겁니다. 아이에게 물었습니다. 

“좀 불편할 수는 있는데 평아, 마음은 보이지 않잖아, 그치? 실장님께서 평이가 쓴 이 쪽지를 읽지 않으면 평이 마음을 알 수 없는 거지. 엄마가 이 쪽지를 봤을 때 이렇게 마음이 좋은데, 실장님은 얼마나 기뻐하실까? 평이가 전달해 드리면 실장님이 많이 기뻐하실 것 같은데?”

다음 날 아침, 아이는 차에 타면서 차량 탑승지도 선생님께 “잠깐만요.”를 외치고는 운전석에 계신 실장님께 노란 하트 모양 쪽지를 건네 드렸답니다. 물론 차량 옆에 서 있던 저는 잠시 후에 실장님의 기쁜 외침도 들을 수 있었구요.      


내성적인 큰아이의 깊고 섬세한 감정표현에 혀를 내둘렀던 적은 이 외에도 많았습니다. 날카로운 관찰력과 풍부한 사고력으로 엄마는 생각지도 못했던 답변을 하는 경우 왕왕 있습니다. 그런 큰아이를 보면서 알았습니다. 내향적인 큰애에게 필요한 것은 다만 조금 더 여유 있는 시간이라는 걸요. 내향적인 아이들은 탐색할 시간이 필요합니다. 또한, 표현하는 데 에너지를 써야 하는 보다 분명한 이유가 필요합니다. 물론 시간이 충분하고 에너지를 사용할 이유가 있어도 내향적인 아이들은 상대가 다가오길 기다리기도 하지요. 내성적인 아이들을 키우는 엄마가 아이의 사회성 발달을 위해 징검다리 역할을 하듯이, 질문대화에서도 엄마들이 도와줄 수 있습니다. 좀 더 세밀하게 물어보면 됩니다. 예를 들어, 내성적인 사람이 하는 질문 속에는 모종의 바람 혹은 물음이 담겨 있는 경우가 다반사입니다. 큰아이와 대화하면서 깨달았습니다. 큰아이가 먼저 질문을 해올 때, 질문의 답이 궁금해서라기보다는 자신이 한 질문에 대해 본인이 하고 싶은 말이 있다는 걸 눈치챘습니다. 아이로서는 큰마음 먹고 표현하고 싶은 욕구를 드러낸 셈이었습니다. 내향적인 아이가 질문해 온다면, 그만큼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다는 뜻입니다. 무심코 지나가면 어렵사리 찾아온 표현의 기회를 놓칩니다. 아이들의 질문은 모두가 귀합니다. 어느 것 하나 허투루 넘어갈 것은 없습니다만, 내성적인 아이들의 질문은 특히 소중히 다뤄야 합니다. 시골 5일 장날 약장사 말마따나 날이면 날마다 오는 기회가 아니니까요! 물어보지 않아도 자기감정이나 의견을 먼저 표현하는데 익숙한 외향적인 아이들과 달리, 자기표현에 인색한 내향적인 아이들이 뭔가에 대해 질문했다면 그 질문 뒤에는 이런 질문이 하나 더 붙어있다고 해석해야 할 때가 많습니다:

“내 생각은 어떤지 궁금하지 않으세요?”

다른 말로 하면, “제 생각도 물어봐 주세요.”입니다. 정작 본인이 하고 싶은 말이 있어서 질문하는 경우가 많은 큰아이에게 항상 이렇게 되묻습니다:

“너는 어떻게 생각해?”

재미있는 건, 아이의 생각을 물어보는 “네 생각은 어떠니?”라는 질문은 마치 마법 열쇠라도 되는 양 과묵한 큰아이의 입을 열어주곤 한다는 점입니다.     

 

혹시 자녀가 내성적인 성향인가요? 자녀가 좀 더 적극적인 의사소통을 했으면 하고 바라시나요? 내향적인 아이들과도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대화할 수 있습니다. 먼저, 아이가 정보를 정리해서 대답할 수 있도록 여유 있게 기다려주고, 이왕이면 아이의 표현을 되묻는 방식으로 의견을 확인하면서 대화를 확장해가기. 질문을 받으면 아이의 생각이나 의견은 어떤지 되묻는 질문하기. 이 세 가지를 기억하면 내향적인 아이들과 시끌벅적한 수다도 떨 수 있습니다! 그리고 엄마와 수다 떨며 아이들이 엄마가 아닌 다른 사람과도 적극적으로 의사소통하는 법을 배운다는 건, 두말하면 잔소리지요. 

작가의 이전글 모두가 주인공이 되는 질문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