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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지영 Jun 26. 2020

질문독서

:변죽 대신 채궁자리

물론 독서는 좋은 습관입니다. 이 땅의 많은 부모님들은 생각합니다. 아이들이 독서습관을 장착하면, 거의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거라고 말입니다. 독서야말로 아이의 성적, 논술, 문제해결력, 창의력까지 한 방에 해결해줄 만능의 솔루션이라고 단정하는 부모님이 많습니다. 사실 부모님들이 기대하는 능력 대부분은 독서를 통해 어느 정도는 얻을 수 있습니다. 독서 방법이 어찌 되었든 간에 책을 읽지 않는 것과 비교하면 훨씬 나은 결과를 얻게 됩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질문하지 않고 막연한 다독을 목표로 하는 독서는 변죽을 울리는 행동과 같습니다. 변죽은 북의 가장자리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물론, 변죽을 쳐도 소리는 납니다. 북의 어느 부분을 치느냐에 따라 다른 소리가 나니까요. 하지만 북소리를 제대로 웅장하게 울리려면 변죽이 아니라 팽팽하게 소가죽을 잡아당긴 한 가운데, 채궁자리를 때려야 합니다. 독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질문하지 않고 읽어도 유익함은 있습니다. 그러나 질문하며 읽는 독서는 제대로 친 북소리가 크고 멀리까지 울리듯이 근본적이고 되돌릴 수 없을 정도의 변화를 불러옵니다. 마트에서 1+1 행사상품을 보면 장 보러 올 때까지 생각지도 못했던 필요가 솟아나고, 하다못해 고스톱을 쳐도 쌍피가 나오면 기분이 더 좋은 게 인지상정 아니던가요. 이왕 유익한 독서를 한다면, 제대로 읽어서 더 많은 유익함을 챙겨야 하지 않을까요?      


이왕 읽는 책, 그 유익함을 야무지게 챙기려면 한 가지 변화가 필요합니다. 바로 질문하며 읽기입니다. 읽으려는 책을 앞에 두고 이렇게 질문하고 읽기 시작해보세요. “자, 책을 읽자. 읽고 나면 뭔가 남겠지.”라는 생각 대신 이렇게 물어보고 시작해보세요. 

“이 책에서 무얼 배울까? 어떤 지식 또는 생각을 얻게 될까?”

무엇을 배우고 얻을지 기대하며 책을 읽을 때 우리 머리는, 막연히 책을 읽어 나갈 때와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움직입니다. 우리 뇌가 질문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질문받은 뇌는 답을 찾아야 하니 능동적 독서 활동이 일어납니다. 흰 것은 종이요, 검은 것은 글씨라는 식으로 눈으로 책장을 훑고 지나가지 않습니다. 작가가 차례에 이런 항목을 포함한 것은 왜일지, 항목 간 배열은 어떤 목적에서 정해진 것인지, 왜 이런 표현을 사용했는지, 1장과 2장 사이의 관계는 무엇인지 꼼꼼히 “따지며” 확인하면서 읽게 됩니다. 막연히 책을 읽겠다는 행동과 무엇을 배울지 기대하며 읽기 시작하는 행동은 책을 읽는 우리 두뇌활동에 있어 전혀 다릅니다.      

다독 욕심이 앞서던 시절, ‘다 읽고 나면 뭔가 남을 거야’라는 막연한 생각으로 책을 읽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책을 읽는 중에도 수동적인 문자 읽기에 머무르는 경우가 많았지요. 그러다 보니 조금 난해하거나 분량이 긴 책을 읽다 보면 책 속에서 길을 잃어 헤맨 적도 부지기수였습니다. 그런데 제 독서를 가만히 살펴보니 머리로 하는 독서가 아니라 눈으로 하는 독서였습니다. 인쇄된 글자를 눈으로 훑는 행동이 대부분이었지요. ‘이건 아닌데….’라는 마음이 들더군요. 독서는 소위 두뇌활동인데 뇌가 별로 사용되지 않으니 문제였지요. 두꺼운 분량의 책을 읽어내는 데 집중하지 말고, 다 읽고 나서 뭔가 정리하려고 하지 말고 읽어 나가면서 계속 생각하고 정리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고민하다 찾은 방법이 바로 구체적인 기대와 목표 세우기였습니다. 

처음엔 책 앞 여백에 질문을 적어두었습니다. 

“이 책을 읽는 이유는?”

“저자는 이 책을 왜 썼지?”

“이 책을 읽고 나면 구체적으로 어떤 유익함이 있을까?”     

신기하게도 질문만 했을 뿐인데 독서시간이 달라졌습니다. 막연히 책장을 넘기는 시간이 아니었습니다. 저는 부지런히 질문의 답을 찾고 있었습니다. 저자가 책을 통해서 하고자 하는 말이 무엇인지 파악하는 일에 집중하니 중간중간 아이디어와 또 다른 질문이 샘솟았습니다. 잘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을 파악하기 위해 책장을 앞뒤로 뒤적였습니다. 여백에 질문을 적고, 그 답을 다시 책에서 찾는 일이 많아지면서 독서시간은 마치 저자와 얼굴을 마주하고 대화 나누는 시간과 같았습니다. 저자의 의견에 공감되어 깊이 탄복하기도 하고, 동의할 수 없는 부분에는 내 생각을 적으며 반박하기도 했습니다. 머리로 책을 읽으며 얻는 지적 쾌감은 정말 짜릿했습니다.      

아이들의 독서도 이와 같아야 합니다. 독서는 검지로 책장 넘기는 손가락운동이 아니라 두뇌활동이니까요. 휘리릭 글자 빨리 읽기 경주는 더더욱 아니니까 말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생각하며 독서 할 수 있도록 아이들에게 질문해야 합니다. 책을 읽기 전 또는 후에 꼭 물어보세요. 책 읽기 전 질문과 책 읽은 후 질문으로 적용할 수 있습니다. 책 읽기 전에는 표지를 적극 활용해서 질문대화 나눌 수 있습니다. 

“제목과 표지 그림을 보니 이 책은 어떤 내용인 것 같아?”

“표지를 보니, 어떤 느낌이 들어?”

“이 책을 읽으면 어떤 점을 알게 될까?”

“글쓴이는 왜 이 책을 썼을까?”

“표지를 그린 사람은 이 그림을 통해 어떤 말을 하고 싶은 걸까?”

마지막 책장을 덮을 때는 다음에 있는 질문의 답을 정리하면서 독서를 마무리할 수 있습니다. 

“읽고 나니 어떤 점이 가장 마음에 와닿았어?”

“이 책을 쓴 작가는 그 점에 대해 뭐라고 말하고 있어?”

“이 책을 쓴 작가라면 그 점에 대해 뭐라고 말할 것 같아?”

“책 읽은 내용을 한마디나 한 문장으로 요약한다면 뭐라고 표현하고 싶니?”

“이 책에서 무엇을 배웠어?”

“몰랐던 것을 알게 된 사실이나 새롭게 깨달은 점은 무엇이니?”

“어떤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됐어?”

“저자는 그 사실을 어떤 방법으로 설명했어?”

“책의 내용이 네게 어떤 의미가 있니?”

“그 점이 왜 마음에 와닿았어?”

“마지막 책장을 덮었을 때 무슨 생각이 들었어? 어떤 느낌이 들었어?”     


그리고 가능하면 이 질문을 잊지 않으면 좋겠습니다. 책을 읽고 할 수 있는 질문은 많습니다. 만약 그중에, 단 하나의 질문만 할 수 있다면 전, 주저 없이 이 질문을 고를 겁니다. 

“만일 네가 이 책 주인공이라면 어떻게 했을까?”

적용질문에 해당하는 이 물음은 장점이 많습니다. 오즈의 마법사를 읽는 아이가 이 질문을 받는 순간 회오리바람에 날려 오즈의 나라에서 겪게 되는 그야말로 스펙터클한 모험은 더이상 도로시만의 모험이 아닙니다. 나의 모험이 됩니다. 아이는 도로시, 허수아비, 양철 나무꾼, 그리고 겁쟁이 사자와 함께 절벽 사이에 다리를 놓고, 괴물 칼리다를 물리치며 모험의 한복판에 섭니다. 자연스럽게 감정이입이 되고 공감할 수 있게 됩니다. 그뿐이 아닙니다. 모험을 헤쳐나가며 책이라는 텍스트가 제공하는 특정 상황에서 문제해결 능력을 연습할 수 있습니다. 적용질문을 의식하며 다양한 책을 접할 때, 적극적인 문제해결 경험이 자연스럽게 누적됩니다. 그리고 이와 같은 감정이입과 공감력, 문제해결력을 바탕으로 비판적 읽기와 깊이 읽기가 가능해집니다.     

 

사실 이런 질문은 아이들뿐 아니라 어른인 제게도 좋은 독서질문입니다. 이런 질문을 염두에 두고 책을 읽으면 책의 내용 파악이 훨씬 잘 됩니다. 내용에 대한 이해가 커지고 더 많은 부분이 기억에 남습니다. 시험 삼아 책 읽기 전, 후에 이 질문들을 한 번 적어보시기를 추천합니다. 책을 읽으면서 답해 보세요. 그냥 무턱대고 책을 읽을 때와는 사뭇 다른 걸 금방 느끼실 수 있을 겁니다. 책의 부분 부분을 다시 읽어야 할 수도 있습니다. 읽기를 잠시 멈추고 한참 생각해야 할지도 모릅니다. 수동적으로 읽어 나간 다른 책보다 훨씬 풍부한 지식과 감상을 얻을 겁니다. 그 책의 내용이 다른 책보다 더 탁월해서가 아닙니다. 질문했기 때문입니다. 질문하며 책을 읽는 질문독서는 무심코 지나칠 수 있는 책에서 특별한 의미를 캐낼 수 있도록 도와주는 성능 좋은 연장입니다. 질문은 독서라는 활동이 머리와 가슴에 깊은 울림을 주는 크고 웅장한 북소리를 낼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질문하며 책을 읽을 때, 팽팽하게 당겨진 생각의 채궁자리에서 울리는 깊은 떨림을 들을 수 있습니다. 질문독서라는 멋진 사고의 도구, 한번 장만하면 결코 후회 없으실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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