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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상 애 May 16. 2023

02 3주. 그 고통의 시작.

#위로가 되지 않은 말들

 병원에서의 3일이 지나고, 산후조리원 입소날이 되었다. 3일만에 다시 아이를 가장 가까운 곳에서 바라볼 수 있었다. 다운증후군이 의심 된다는 소리에 차근차근 살펴보았다. 내 눈에는 아이의 외형만. 그 특징만 계속 살펴볼 뿐이었다. 얼굴의 특징과, 발가락 사이 등등.. 지금에와서 생각해보면 얼마나 참 못난 아빠였는지. 사랑스럽게 아이를 아빠의 시선으로 바라본 것이 아니라, 마치 연구 과제를 살펴보는 걱정 가득한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다운증후군의 외형적 특징이 보이는 것 같다가도, 그렇게 받아드리고 싶지 않아서였는지, 그렇지 않아 보이기도 했다. 그렇게 난 아이를 "관찰"했었다. 산후조리원에 아이와 엄마가 입소 하고 나서, 집으로 돌아와 차를 주차한 뒤, 차 안에서 아버지께 전화를 걸었다. 내가 5세때 부모님은 이혼하셨고, 나는 중1때까지 시골에 내려가 할머니 손에 자랐다. 중2가 되던해에 다시 서울로 올라와, 아버지와 함께 살았지만, 관계는 그리 좋지 않았다. 그나마 군대 있을 때 괜찮다가, 제대 후, 아버지는 연신 한숨 섞인 말 들로, 당신은 이미 내 나이때 독립하며 살았다는 말을 계속 내게 쏟아냈다. 그리고 난 얼마되지 않아 무일푼으로 독립해 나왔다. 여러가지 일들이 있었다. 아버지와의 관계는 그리 좋은 편은 아니었다.


 "어 여보세요. 아이랑 며느리는 잘 있지?"

 "네. 아버지, 아이가.... 다운증후군이래요. 죄송해요."


 뭐가 그리 죄송한거였을까, 나는 왜 그 당시 죄송하다고 했을까, 주변 사람들에게도 죄송하다고 했다. 도대체 뭐가? 왜?

 아버지는 이 사실에 대해 누구한테 얘기했냐면서 더 이상 다른 사람에게 말하지 말라 하셨다. 왜 뱃속에 있을 때 몰랐냐고 물으셨다. 아버지의 말 하나하나가 화살처럼 꽂혔다. 아버지 당신도 속상해서 내게 그리 말했다고 받아드리고 싶지만, 하시는 말씀 하나하나 아픔이 더해졌다.


 어느 한 다운증후군 부모님의 인상깊었던 이야기가 있다.

 [어두운 터널 같은 삶이 시작되었을 때, 사회에 다시 나올 수 있도록 가장 큰 힘이 되었던 건 가장 가까운 주변 사람들의 응원이었다.]


 결과가 나오기 전까지 3주의 시간동안 내게 가장 큰 위로가 되었던 말은 "괜찮을거야" 였다. 

 그리고 나서 그 다음 "설령 결과가 좋지 않더라도 함께 하겠다" 였다.

 거짓말 같은 말이라도, 내게 힘을 주기 위해 그저 했던 말이라도, 바닥을 향해 곤두박질 치던 내게 큰 힘이 되었다.


 그에 반해, 대한민국 사회의 흔한 특성처럼, 원인분석을 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의학적 지식 없이, 같지도 않은 상식으로, 마치 냉철한 판사가 된듯이 말이다. 엄마의 잘못이다. 아빠의 잘못이다. 양가 유전적인 잘못이 있다. 죄 지은게 있는 것 아니냐, 누군가에게 헤코지한거 아니냐, 등등. 원인을 분석하며 말그대로 도마위에 올려놓고 난도질을 하기도 했다. 직접적으로 말하기도, 간접적으로 우회하며 말하기도 했지만, 범인이 되어 재판장에 서 있는 기분이 들었다.


 나 역시, 수도 없이 내 삶을 되돌아보았다. 그리고 여러가지 다운증후군에 관한 정보와 소식을 검색해보고, 읽고, 찾아보았다. 나중에 병원진료와 복지관 상담을 받으며 공통적으로 해주신 말들이 있다. 원인은 알 수 없다. 즉, 부모의 잘못이 아니다. 의학적으로 절대 규명할 수 없다.


 의학적으로 부모의 잘못으로 규명된다면, 이 또한 달라질게 있을까 싶다. 앞서 두명의 자녀를 키우면서 아이들이 열감기라도 걸리면, 밤새 잠을 못자고 열을 짚고, 세심히 살펴보는게 부모의 모습이다. 누구보다 가슴아파하고 힘들어하는게 부모인데, 그런 엄마 아빠에게 가장 위로가 되는 말이 무엇일까 생각해본다면 너무나 간단하게 답이 나온다.


 그런데, 꼭 거기다가 굳이 하지 않아도 될 말들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길래 뭐하러 애를 데리고 여행을 가서...", "애들 재울때 따뜻하게 재웠어야지, 엄마 아빠가 그렇게도 애를 신경안쓰면 되나.."


 물론, 중요한건 그런 사람들의 말을 귀담아 들을 필요는 없지만, 불이 붙고 있는 곳에 부채질을 하는 격이니, 또 어찌 신경이 안쓰일 수 있으랴. 그렇기에 혹시라도 주변에 이와 비슷한 상황을 겪고 있다면, 꼭 부모의 잘못이 아니라는 것을, 괜찮아질 거라는 것을, 그리고 설령 결과가 좋지 않더라도 요청하면 도움주겠다는.. 말이라도 그렇게 해주길 바란다. 그리고 분명한 것은 절대 다운증후군은 부모의 잘못이 아니다.


 불과 막내 아이의 이야기를 듣기 얼마 전까지만 해도, 세상에서 발생되는 문제의 대부분은 돈으로 해결할 수 있다는, 그런 편협한 생각을 하며 살았었다. 그런데, 억만금의 돈으로도 해결할 수 없는 문제 앞에 서게 되었다. 거대한 벽이 내 앞을 가로막고 있었다. 아무리 부딪치고 깨부수고 싶어도 절대 내 힘으로 없앨 수 없는 벽. 심지어는 여기가 어딘지 알 수도 없는 암흑투성이의 터널 안에서 이 벽이 아니, 사방이 막혀 있었다. 


 그 때부터 난 기도할 때 엎드리기 시작했다. 그러다 부르짖었다. 살려달라고 했다. 무슨 기도를 내가 하고 있는지도 모르겠지만 살려달라고만 연신 부르짖었다. 내가 할 수 있는건 그것밖에 없었다. 내가 죽어 저 아이가 정상이 될 수 있다면, 나를 죽여달라고 했다. 두 딸들과 이제 막 태어난 이 아이와 아내에게 아빠가 없는게 낫지, 이건 아니다 싶었다. 눈물로 시작해 눈물로 마무리 했다. 가슴이 답답했고, 숨도 잘 쉬어지지 않았다. 사람들을 제대로 쳐다볼 수 없었고, 어떻게 해야할지도 몰랐다. 그렇게 고통의 터널 한 가운데 들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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