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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옥돌의 지혜 Oct 24. 2022

성적 2등급에서 1등급으로 올리려면

  고1 학생 한 명이 내게 따로 상담을 할 수 있느냐고 물었다. 담임이 아닌 국어교사인 내게 상담을 요청하는 것을 보니 국어공부법에 대한 상담일 거라 지레짐작했다. 당연히 가능하다고 말한 뒤 약속 시간을 정했다.

  수행평가를 하느라 점심도 못 먹고 교무실로 왔다는 학생에게 내가 집에서 챙겨 온 간식을 손에 쥐어줬다. 학생은 평소 내가 수업에 들어가는 반 아이들 중에서도 눈에 띄는 반장이었다. 선생님이 한마디 하면 알아서 열을 해내는 반장이 있는데 딱 그런 아이였다. 이런 반장을 만나면 담임교사나 교과교사나 모두 그 해의 복이었다. 열 마디를 해야 하나를 하는 학생들도 적지 않기 때문이었다. 아무튼 평소에도 수업 태도도 바르고 리더십도 뛰어나 기특한 학생으로 여겨왔던 아이였다. 수행평가를 하느라 점심도 못 먹었으면서 선생님과의 약속 시간을 칼같이 지키려고 왔다는 데서부터 학생이 평소에 얼마나 성실한지 엿볼 수 있었다.

"a(학생)야, 무슨 일로 상담을 하고 싶었어?"

학생이 앉자 내가 말했다.

"선생님, 제가 요즘 수업 시간에 자꾸 졸잖아요..."

그러자 민망하고 죄송항 표정으로 a가 대답했다.

"앗, 알고 있었어? 맞아. 우리 a가 원래 누구보다 수업 열심히인데 요즘 종종 졸더라고. 근데 평소 a를 봤을 때 일부러 그러는 거 같지 않고 요즘 수행평가가 몰려서 새벽까지 하다 잠이 부족한가 보다 했어. 샘이 깨울까도 고민해봤는데 깨우려고 하면 a가 스스로 잠에서 깨려고 애쓰는 게 보여서 그냥 뒀어. 그게 속상했어?"

내가 말했다.

그러자 a가 울컥했는지 눈시울이 붉어져 말했다.

"선생님, 저는 고1 1학기까지 한 번도 학원에 가지 않고 공부해왔어요. 지금도 내신이나 수능 전체 평균 2등급 정도 유지하고요. 그런데 중학교 때는 혼자 공부해도 원하는 성적을 얻을 수 있었는데 고등학생 때는 그만큼 공부해도 원하는 성적이 안 나와요. 저는 의대 가서 의사 되고 싶고 그렇게 될 수 있을 거라 믿었거든요. 불안하고 속상해서 2학기에 급하게 국영수 각각 학원을 등록했어요. 그랬더니 학원 숙제가 너무 많아서 학교 수행평가를 제대로 못하겠어요. 뭔가 다 엉켜버린 거 같은데 어찌할 바를 모르겠어요. 선생님이 학생 때 성적을 많이 올려보셨다고 하셔서 조언을 얻으려고 왔어요."


적은 경력이지만 상담은 되도록 내 말을 많이 하기보다는 학생 말을 들어주려고 하는 편이다. 그런데 이번 상담은 주어진 시간도 짧고 학생이 위로보다 어떤 해결책을 바란다는 생각이 들었다.

"a야, 너 정말 대단하다. 학원을 안 다니고 우리 학교처럼 잘하는 애들이 많은 학교에서 2등급에 들었다는 건 네가 이미 공부하는 방법도 어느 정도 알고, 공부에 의지도 있고, 공부하는 능력도 있다는 뜻이야. 지금 a는 상위권에서 최상위권으로 가고 싶은데 그게 뜻대로 안 돼서 답답한 거지? 선생님이 모든 공부 고민을 척척 해결하는 절대적 능력이 있는 건 아니지만 내 경험 안에서 한 번 말해볼게.

우선, 최상위권은 시간 싸움이라고 생각해. 전교권에 드는 친구들은 이미 공부 방법을 잘 알고 의지도 남들보다 강한 아이들이야. 그다음부터는 누가 얼마나 더 온전히 자기 공부에 집중하는 시간을 확보하느냐에 달렸다고 생각해. 그런데 a가 국영수 학원을 다 다니고 그 숙제를 하느라 수행평가조차 할 시간이 부족하다는 건 비효율적으로 보여. 일단 수행평가 점수를 보면 최소 시험문제 여러 개에 해당하는데 절대 여기서 점수 감점되면 안 돼. a도 아마 잘 알 거야. 우선순위를 분명히 해야 해. 내신과 수능 점수를 잘 받으려고 학원을 활용하는 거지, 학원을 다니기 위해 공부하는 게 아니야.

그래서 선생님 생각엔 이번 시험까지 마치고 a가 판단해서 내신에 도움이 되었던 학원 한 두 개만 남기고 나머지는 인강이나 과외로 돌리면 좋겠어. a 성적에는 일주일에 한 시간 a가 공부하고 스스로 해결되지 않는 질문들만 받아주는 과외 선생님 구해도 충분할 거야. 샘도 그랬거든.   그 정도 실력 있는 과외 선생님은 대학생도 충분하고, 고3 가서 a가 도저히 해결되지 않는 지점이 있을 때 고액과외 도움받아도 늦지 않는 거 같아.

그리고 a야. 선생님이 전교 100등 밖에서 1등까지 올려봤다고 했잖아. 매번 성적이 오를 때마다 어떤 생각이 들었냐면 '아, 내가 지난 시험 때 공부한 건 공부한 것도 아니었구나'였어. 매번 나 스스로 이번에는 내가 정말 다르게 공부했다는 확신이 들 때 분명하게 성적이 상승하더라고. 전에는 20분 집중하고 10분 쉬다가 50분 집중하고 10분 쉬기 시작하니 성적이 올라. 전에는 수업 때 졸리면 졸았는데 무조건 수업 때마다 뒤에 나가서 서서 수업 들으니 성적이 또 오르더라. 성적이 오를수록 내가 바라던 꿈에 닿을 수도 있다는 생각에 설레서 공부를 잘하고 싶은 마음이 더 간절해졌어. 점점 통학 버스에서 이비에스 강의를 소리로라도 듣고 다니게 되고, 쉬는 시간에는 방금 전 수업 들은 내용을 정리하게 되고, 잠들면서도 오늘 못 푼 수학 문제를 고민하게 됐어. 한마디로 내가 성적을 올려서 가고 싶은 대학에 가서 배우고 싶은 공부를 하고 싶다는 마음이 간절해질수록 이전과 다른 노력을 더 하게 되고 그게 성적 상승으로 이어지더라고.

a가 지금도 열심히 하고 있는 건 사실이야. 하지만 a보다 성적이 더 잘 나오는 친구들이 더 많은 공부를 더 열심히 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지. a가 지금 이상의 성적 상승을 바란다면 이전과는 다르게 더 절실한 마음으로 공부해야 해. 나는 대입을 마칠 때까지 내 절실한 마음을 최대한으로 끌어올리려고 노력했던 것 같아. 결국 공부는 동기부여거든.

일단 시험이 한 달도 남지 않았으니까 마음이 지칠 때 이 방법을 써봐. 인터넷에 공부 명언을 검색해서 백 개만 긁어 모아 인쇄해. 그리고 방에서 크게 소리 내서 읽어. 백 개 중 하나는 네 마음에 딱 꽂힐 거거든. 그날은 그 말 책상에 써붙이고 공부해.

그리고 기말 마친 이후에 2학년 올라가기 전 고전문학 공부계획 포함해서 겨울방학 공부계획 짠 거 샘한테 가져와봐. 샘이 봐줄게."

점심시간 끝을 알리는 종이 치는 바람에 더 이상의 대화는 이어가지 못했다. 일단 당장 앞둔 시험 최선을 다해 치른 이후 다시 이야기 나누자는 말로 인사를 했다. 항상 학생 상담을 하면 그렇듯이 곧이어 자기반성이 이어진다. '아이는 그저 공부가 힘든 마음을 공감하고 이해해주길 바란 건데 내가 너무 해결책을 제시한 건 아닐까, 가뜩이나 열심히 하는 애한테 더 부담을 준 건 아닐까, 긴 말 하지 않고 학생에게 동기 부여해주는 그런 고수가 될 수는 없을까.' 어렵다. 지혜로운 교사 되기 참 갈 길이 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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