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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옥돌의 지혜 Jan 06. 2024

수능 성적표 배부하는 날

(23년 12월에 쓴 글)


  오늘은 수능 성적표를 배부하는 날이었다. 하루종일 마음이 싱숭생숭하다. 오늘 학생들을 보면 공식적으로 정시 상담일이나 졸업식이 아닌 이상 우리반 아이들을 만날 수 없다. 수시합격자거나 재수학원에 가서 졸업식에 안 오면 이렇게 갑자기 어색하게 영영 안녕이다. 

  생기부 확인, 결석계 제출 등 필요한 서류부터 확인시킨다. 그리고 성적표를 배부하기 전 짧고도 꼭 해주고 싶었던 말을 한다.

  "일 년간 정말 수고 많았어. 너희가 일 년간 최선을 다해 뿌린 씨앗이 지금 이 성적표에 당장 열매로 돌아오지 않는다 해도 낙심하지 말자. 우리가 뿌린 노력의 씨앗들이 반드시 살아가는 날 어딘가에서 열매 맺을 테니. 정시까지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노력하는 경험을 또 해보는 거야. 졸업식에는 꼭 와서 마지막 인사 나누자."

  기껏 아이들 마음 상하지 않게 에둘러 다독이고 성적표를 나눠줬는데 우리반 성적이 높은 아이들이 성적표를 확인하더니 환호를 하며 신나서 교실 밖으로 달려 나간다. 순간 멍하니 그 아이들을 바라보는 나머지 아이들 표정을 보는데 화가 치밀었다. 아무리 간절히 바라던 좋은 결과였어도 한 달 뒤에 스무 살 성인이 되는데 이 정도로 주변 친구들 마음을 헤아리지 못하다니. 아직도 성장할 부분이 많다. 

  반면 속상하게도 일 년 내내 성실하고 착하게 노력해 왔는데 수능 성적이 그만큼 나오지 않아 걱정하던 몇몇은 성적표를 받아가며 내게 작은 무언가를 건넨다. 


"이게 뭐야?"


"수능 끝나고 심란해서 저희끼리 유튜브 보고 뜨개질했어요. 이거 샘 선물이에요."


아기자기하게 뜨개질로 만든 색색깔의 네 잎 클로버들. 아니 남는 시간도 이렇게 소박하고 착하게 보내기 있니...

  아이들을 보내고 교무실로 돌아와 아이들 수능 성적을 다시 찬찬히 확인한다. 일단 각자 수시 최저 등급을 충족했는지부터 본다. 이후  정시 프로그램으로 한 명씩 성적을 돌려본다. 등급보다 표준점수가 더 중요해서 표준점수를 넣고 대충 적정 지원 선이 어느 라인으로 뜨는지 엑셀 시트와 노트를 만들어 적어둔다. 

  졸업한 작년 3학년 우리반 아이들 중 재수한 아이들의 수능 점수도 확인해 본다. 더 긴장되고 떨린다. 재수한 약 열 명 정도 되는 아이들 중 원래 잘했는데 수능날 점수가 안 나왔던 두 명 정도만 원래 성적대로 잘 나오고 나머지는 다 비슷하거나 더 떨어졌다. 씁쓸하다. 특히 제일 신경 쓰던 학생 수능점수가 없어서 걱정이 된다. 작년에 합격한 대학을 포기하고 재수학원을 다닌다고 했는데 수능점수가 없으니 무슨 일일까. 먼저 연락해 봐도 될까 고민스럽다.

  대학이 뭘까. 수능이 뭘까. 아무튼 지식만 쌓는 시간이 아닌 건 확실하다. 인생 공부를 하게 된다. 그러나 나는 확신한다. 지금 당장 대학 조금 더 잘 간다고 대단히 더 훌륭한 인생 사는 것 아니라고. 대학이 앞으로 많은 기회들을 좌우할 수 있지만 인생의 성공과 행복을 좌우하는 것은 아니라고. 

  고3 내 학생들한테만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라고 말하지 말고, 담임인 나부터 학생들 성적 보고 낙심한 마음을 좀 회복해 보자. 힘을 내자. 정시 입시 준비 또한 아이들과 끝까지 최선을 다해나갈 수 있도록 마음 동여매자. 중요한 건 꺾이지 않는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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