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년 12월에 쓴 글)
오늘 대학들의 수시 최종 발표가 줄이어 났다. 우리 반 24명 중 11명이 수시에 합격했다. 대애박...!!!!!!
일 년간 착하고 성실한데 열심히 노력까지 하는 우리반 아이들은 9월 모의고사와 10월 모의고사까지 꾸준히 성적도 올려가고 있었다. 그런데 물수능일 줄 알았던 올해 수능이 역대급 불수능으로 출제되면서 아이들의 수능 점수가 처참하게 나왔다.
애들 가지고 장난하는 것도 아니고 9월, 10월 모의고사는 쉽게 내고, 수능에 킬러 문항은 없을 거라고 뉴스에 내보내서 그렇게 쉬운 수능에 맞게 준비시켜 놓고는 이런 불수능을 내다니. 교사인 내가 화가 난다. 최근 모의고사 등급 컷에 맞춰 수시지원 다 해놨는데 수능 난이도를 확 올려서 수시 지원 대학과 정시 지원 가능 대학의 간극이 너무 커져버렸다. 무엇보다 처음 보는 수능 점수에 깊이 좌절할 반 아이들을 생각하면 너무 속이 상했다.
그러나 입시는 진정 뿌린 대로 거두는 것이던가. 종합전형은 물론이고 그 힘들다는 논술전형에 척척 붙더니 합격자들이 속출했다. 수시는 대체로 상향 지원이기에 11명 모두 본인이 바라던 대학에 합격한 것이다. 오늘 마지막 합격자인 학생은 9모 때 국영수 1등급이 나왔는데 수능은 서울에 있는 대학 지원이 아슬아슬할 정도로 나왔다. 일 년간 내가 해보자고 하는 모든 노력들은 다 했던 우리반 대표 성실이었다. 아침마다 일찍 나와 자습하고, 스터디 플래너에 매주 공부 계획 세우고 공부한 것 나한테 확인받고, 비문학 노트에 한 달간 매일 비문학을 정리하고, 모든 면에서 모범을 보인 아이였다. 이 아이 얼굴을 보고 정시 상담할 자신이 없었다. 둘이 눈 마주치면 같이 울 거 같았다. 그런데 마지막 발표한 두 대학을 동시에 합격했다. 그것도 학생이 가장 가고 싶어 하던 대학의 가장 원하던 전공으로!!! 전화를 걸었는데 학생의 "선생님!!!" 소리를 듣자마자 눈물이 왈칵 났다. 2년간 학생 합격 소식에 눈물이 나긴 처음이다. 같이 엉엉 울었다. 진짜 아름다운 밤이다. 올해의 모든 고생이 다 달게 느껴진다.
치킨을 시켰다. 이번 주말 발 뻗고 푹 자고 월요일부터 정시 입시 연수를 시작으로 2주간 정시 입시 공부와 상담을 달려야 한다. 열심히 해야지! 이 아이들이 내 수고와 진심 몰라주고 앞으로 살면서 나를 까맣게 잊는다 해도 다 괜찮다. 이미 내게 충분한 기쁨을 안겨주었으니.
이 와중에 수능도 평소 모의고사보다 못 봤는데 수시 6개를 다 떨어져서 정시 준비를 해야 하는 다른 학생이 오늘 내 자리에 직접 뜨개질한 작은 키링과 크리스마스 카드를 두고 갔다. 카드에는 이렇게 적혀있었다.
입시 결과와 상관없이 선생님께서 저에게 보여주신 진심은 제 삶에서 오래오래 기억될 거예요. 저뿐만 아니라 그동안 선생님을 만나온 학생들과 앞으로 선생님을 만나게 될 학생들도 그럴 거예요. 선생님, 감사해요.
고3 담임하며 매일 입시 공부하고 엑셀 파일 들여다보면서 많이 지치고 메말라가는 기분이 들었다. 그런데 보물 같은 우리반 아이들 덕분에 앞으로도 우리나라는 망하지 않고 오랫동안 좋은 나라일 거라는 희망이 생겼다. 이 아이들 덕분에 나는 또 내년 아이들을 만날 용기를 얻는다. 이 맛에 고3 담임하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