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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옥돌의 지혜 Jan 06. 2024

매운맛 정시 상담을 준비하며

(23년 12월에 쓴 글)


  반 아이들 수시 합격의 기쁨을 한바탕 누리고 나니 수시 6개를 모두 광탈한 열 명 남짓한 반 아이들이 눈에 들어온다. 이 남은 아이들 또 열심히 대학에 보내봐야지. 월요일부터 쏟아지는 정시 자료들을 공부하며 다음 주에 시작하는 정시 상담을 준비하고 있다. 수시는 대체로 대학을 상향 지원하기에 꿈과 희망이 있다면, 정시는 자신의 수능 점수에 맞는 대학을 지원하기에 매운 현실을 확인하게 된다. 

  정시 입시 지도도 작년에 해봐서 훨씬 수월할 거라 생각했는데 아는 만큼 보인다고, 또 새롭다. 잘 본 과목에 따라 더 유리한 대학, 표준점수와 백분위를 다르게 활용하는 대학, 문이과의 교차 지원이 쉬운 대학 등등. 학생 한 명 한 명의 특성을 고려해서 미처 일반적으로 보지 못하는 것까지 생각해 가장 좋은 세 장의 카드를 쓰게끔 돕는 게 고3 담임의 역량인 것 같다. 내가 고3 담임을 하기 전에는 어느 대학의 무슨 전공이 미달될지 족집게처럼 알려주는 선생님, 학생의 점수로는 갈 수 없는 수준의 상위 대학을 운 좋게 들어가게 해주는 선생님이 실력 있는 담임 선생님이라고 생각했다. 물론 어느 정도 그해 입시의 트렌드와 심리를 읽고 대학이나 전공 선택에 조언을 주는 것도 고3 담임의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제는 구멍 날 곳을 알려주는 것보다는 학생의 점수 조합에 가장 유리한 대학과 전공을 잘 찾아봐서 학생이 자신의 점수로 갈 수 있는 가장 좋은 학교를 보내주는 게 담임의 정성과 실력이라는 생각이 든다.

  입시전문가 선생님의 정시 진학 지도 연수를 듣고 올해 입시의 큰 틀을 정리한다. 그리고 쏟아지는 자료들을 하나씩 정독하고 중요한 자료는 프린트해서 형광펜 쳐놓고 자리에 붙여둔다. 그리고 학생들의 수능성적표를 노트에 한 명씩 붙인 뒤 학생 성적의 특징을 메모한다. 영어만 잘 본 아이, 표점보다 백분위가 좋은 아이, 한국사를 잘 본 아이 등등. 이후 학생들이 제출한 정시 지원 계획서를 하나씩 확인하며 현재까지 나온 배치표와 모의지원 프로그램을 돌리며 소신, 적정, 안정 지원 여부를 체크해 둔다. 고민될 때는 동료 고3 선생님들과 사례를 의논한다. 이 과정이 조금 재미있지만 스트레스와 어려움이 더 크다고 느낀다. 여기서 스트레스보다 재미가 더 커야 3학년 담임이 적성에 맞는 건데, 학생에게 과몰입하는 나는 3학년 담임이 적성에 안 맞는 것 같다. 

  이렇게 부지런히 알아봐도 실제로 정시 지원하는 학생들 중 인서울 대학에 지원 가능한 점수는 세 명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결국 상담을 오면 서울 밖에 대학은 쓰지 않겠다며 재수하겠다고 할 것이다. 

  이번 정시 상담은 더욱 부담스러운 게 반 1등이 수능 성적 1% 이내로 잘 봤는데 의대 상향 지원을 하기 때문이다. 이미 수시 6개를 다 떨어져서 정시로는 꼭 보내고 싶은데 잘 나온 수능 성적에 또 본인 성적보다 눈을 높이는 것 같아 어떻게 해야 할지 어렵다. 서울대를 넣으면 무조건 합격인데 의대가 만만치 않아 보인다. 입시를 알면 알수록 명문대, 의약대 입학한 사람들이 참 대단해 보인다. 1%대의 성적으로도 쉽지 않은 게 의대라니... 새삼 매주 내 아이들을 데리고 가는 약국의 약사님과 병원의 의사 선생님들에게 후광이 느껴지는 요즘이다. 

  퇴직을 앞두신 선생님과 점심을 먹었다. 선생님의 30년 넘는 교직생활에서 만난 학생들 이야기를 들으며 다시금 느꼈다. 아이들은 졸업하면 씩씩하게 잘 살아간다. 당장은 본인이 원하는 좋은 대학 가야 잘 살 거 같지만 다 잘 살아간다. 

  그러고 보니 오후에는 대학 졸업을 앞둔 졸업생 제자들이 찾아왔다. 담소를 나누는데 애들이 말했다. "선생님이 저희한테 '당장 이 점수 하나로 인생 망하지 않는다. 괜찮다. 최선을 다하는 태도만 남기면 된다.' 이런 말씀 진짜 자주 하셨거든요. 그때는 시험 한 과목 망치면 이미 끝난 거 같아서 선생님 말씀이 전혀 와닿지 않았어요. 그런데 대학 졸업을 앞두고 그 말씀이 자주 떠오르면서 선생님 말씀이 맞구나 싶어요." 평소 학생들에게 내가 자주 하려고 노력하는 말인데 아이들도 느꼈구나 싶었다. 그리고 몇 년 전 내가 담임할 때 많이 불안해하고 걱정했던 내 학생들이 대학 생활을 너무나 밝게 하고 취업 준비도 야무지게 하고 있는 것을 보며 올해 우리반 아이들도 잘 살아가리라는 믿음이 더욱 생겼다. 착하고 성실한 아이들이라 분명 잘 살아갈 거다. 고등학교 교사가 매력적인 점은 내가 뿌린 씨앗의 열매를 빨리 확인할 수 있다는 점이다. 병아리 같았던 고등학생들이 금세 어른이 된다. 그것을 지켜보는 게 참 뿌듯하고 행복하다. 

  왜 정시 지원은 1월 초인가. 23년에 다 끝나면 얼마나 좋을까. 12월이 끝나는 날까지 긴장을 늦출 수가 없다. 빨리 방학이 오면 좋겠다. 마지막까지 잘 버텨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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