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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옥돌의 지혜 Jan 06. 2024

고3 담임 2년 차에 달라진 점들

  올해로 고등학교 교사 9년 차에 고3 담임 2년 차가 되었다. 작년에 처음 고3 담임을 하며 엄청 긴장되고 힘든 일 년을 보냈다. 올해는 작년보다 딱 절반 힘이 들어가는 기분이다. 스스로도 많이 성장했다고 느낀다. 앞으로도 교직 경력이 쌓이면 훨씬 더 노련해질 것이라 생각하니 다행스럽다. 올해 고3 담임으로서 작년과 달라진 점들을 생각해 보았다.

1. 학부모 상담을 먼저 요청하게 되었다.

: 작년에는 처음 고3 담임을 하며 아직 제대로 입시를 치러본 적이 없으니 학부모님들이 상담을 요청하면 무척 부담스러웠다. 그래서 미리 상담 때 궁금하신 점들을 메일이나 문자로 받아서 무슨 보고서처럼 예상 답변을 다 정리해 두고, 선배 선생님들께 내 답변이 적절한지 검토한 뒤, 온몸에 힘이 바짝 들어간 채로 상담에 임했다. 그리고 부모님 앞에서도 혹시 고3 담임 초보 티가 날까봐 굉장히 방어적으로 상담했던 것 같다. 물론 그만큼 최선을 다해 더 공부하고 준비했다는 점에서 작년 나의 상담이 문제가 있었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상담에 훨씬 진이 빠졌던 것은 사실이다. 

  올해는 상담이 필요해 보이는 학부모님께 먼저 상담하러 오시라고 연락드릴 여유가 생겼다. 학생과 학부모님의 입시에 대한 생각이 많이 다르거나 학생과 학부모님 간의 소통이 잘 안 되는 경우에는 차라리 삼자대면으로 상담하는 것이 더 확실하고 시간을 아끼는 일이라고 생각되었다. 작년 일 년간 입시 일 년간의 과정을 다 거치고 나니 학부모님의 질문에 별로 대답하지 못할 것도 없었고, 잘 모르는 것은 그 자리에서 같이 정보를 찾아보면 되었다. 학부모님이 사설 컨설팅을 받아온 결과와 내 상담 결과가 달라도 당황하지 않고 내 나름의 논리로 설명할 수 있었다. 그리고 학부모님도 나를 판단하거나 공격하려는 의도가 있기보다는 불안하고 절박한 마음으로 상담한다고 생각하니 더 너그럽게 받아들이고 대응할 수 있었다. 


2.  입시 자료를 더 섬세하게 활용하게 되었다.

: 작년에는 각 대학의 순위조차 어떻게 되는지 잘 가늠하지 못해 굵은 입시 윤곽을 파악하는데 급급했다. 

  이제는 점수대별 대학이나 인기 있는 전공이 어떤 건지 대충 가늠할 수 있다. 그렇다 보니 대학을 지원할 때 인원수만 보는 것이 아니라 작년 학생의 점수, 경쟁률, 논술이나 면접 문제 유형과 범위까지 확인해보고 학생에게 최적의 선택이 무엇인지 고민하게 되었다. 또한 자료에 있는 점수를 그대로 믿는 것이 아니라 자사고나 특목고 학생들을 고려해 어느 정도 실제적인 수준을 파악하게 되었다.  

3. 체력을 관리하게 되었다.

: 작년에는 일 년간 입시 지도의 흐름을 모르니 체력적으로 계속 무리하게 돼서 거의 매달 수액을 맞고 온갖 영양제를 먹으며 간신히 버텼다. 체력적으로 괴로우니 정신적으로 두 배는 더 괴로운 기분이었다. 매일 출근하는 게 고통스럽고 퇴근 후에는 시체처럼 침대에 누워있어 내 자식들을 돌볼 여력이 없었다.

  올해는 너무 멀리서 하거나 밤늦게 끝나는 대학입시설명회는 참석하지 않고 모집요강을 꼼꼼하게 읽고 정보를 파악하는 것으로 대신했다. 수시상담이나 생기부 작성으로 바쁠 때는 미리 가족들에게 도움을 요청해 놓거나 유료로 가사 도움 서비스를 받으며 그때그때 에너지를 아끼려고 노력했다. 미리 '타우린'을 한 박스씩 사두고 야근이 많은 기간에 집중적으로 영양제를 챙겨 먹었다. 날씨가 좋으면 점심 먹고 무조건 학교 건물 한 바퀴를 걸으며 움직이고 스트레스를 조금이라도 풀려고 했다. 그 결과 올해는 수액 한 번 맞고 꽤 잘 버텼다. 갑상선 호르몬 수치도 작년보다 훨씬 좋아졌다. 

4. 정신적으로 여유가 생겼다. 

: 작년에는 무엇을 위해 이토록 고생을 해야 하는지 납득이 되지 않고 힘들다는 생각만 들었다. 학생들의 태도도 이기적이고 건방져서 더 힘이 빠졌다. 학생이 대학을 가는데 학생보다 교사가 더 공부하고 고생하고 매달리는 것 같아 이게 맞나 하는 회의감도 들었다. 

  올해는 작년의 합격의 기쁨을 아니까 힘들어도 조금 더 견디게 된다. 또한 올해 학생들은 2학기에도 대부분 수업을 열심히 들을 만큼 열의가 있고 예의 바르고 예쁘다. 하나라도 더 알려주고 싶고 도와주고 싶다. 내가 열심히 노력하는 것을 고맙게 생각하고 더 힘을 내는 학생들도 있어서 더 보람이 있다.   

5. 그럼에도 불구하고 2년 차로는 해결되지 않는 것들

: 여전히 체력적으로 힘들다. 1, 2학년 담임은 1년 내내 강도가 80이라면 3학년 담임은 3~9월 사이 강도가 90~120이다가 10월부터 강도가 50으로 내려가는 것 같다. 때문에 체력이 좋은 미혼 선생님들은 고3 담임을 더 선호하기도 한다. 앞서 바짝 고생하고 뒤에 푹 쉬는 것이 더 좋다는 것이다. 그러나 체력도 약하고 매일 집에 가서 돌봐야 하는 자녀가 있는 나의 경우에는 일의 강도가 너무 세다고 느껴진다. 가정과 병행하기 버겁다. 

  그리고 정신적으로 화가 자주 난다. 몇 시간씩 수시 상담을 하고 상담 내용과 완전 다르게 수시를 지원한 학생, 부모님은 학생 걱정에 교무실 와서 울고 가는데 본인은 수업시간마다 화장실에 가서 30분씩 있다 오는 학생, 상담을 하고 또 하고 계속해서 교사를 달달 볶는 학부모... 자꾸만 욱하게 된다. 항상 지치고 예민한 상태인 고3 아이들을 웃으며 대하는 것도 기 빨린다. 그리고 학생들의 수능 국어 점수를 올려주는 데 한계를 느낀다. 차라리 개인 과외를 하면 어떻게든 한 등급이라도 올려주겠는데 열심히 수업에 참여하는 학생들도 국어 점수가 너무 안 오른다. 답답하다. 

6. 앞으로 더 노력하고 싶은 부분들

: 고3 학생들 중 심한 우울감을 느끼는 학생들을 상담할 때 한계를 느낀다. 당연히 위클래스 상담 전문 선생님이나 심리상담전문가만큼 담임인 내가 아이의 마음을 치유하기는 어렵겠지만 수험생 우울을 상담하는 기법을 조금 더 배우면 도움이 될 것 같다. 

  그리고 1학년과 달리 3학년은 짧은 시간 내에 수능 국어 성적을 올려야 하는데 조금 더 도움이 될만한 기법들이 있는지 알아봐야겠다. 차근차근 기본을 다지며 성적을 올리는 방법으로는 시간이 부족하다는 것을 느낀다.

  끝으로 앞으로도 고등학교에서 근무하다 보면 계속 고3 담임 차례가 돌아올 텐데, 나이가 들어서도 고3 담임을 해내려면 일상에서 체력을 단련하는 습관을 만들어가야겠다.   

  

총평: 책임감에 하는 거지 나는 고3 담임이 적성에 맞지 않는다. 빨리 병아리 같은 1, 2학년들이랑 문학 수업하며 꺄르르 웃고 싶다. 그러나 3학년의 좋은 점은 자퇴, 자해, 자살, 학폭이 거의 없다는 것이다. 학생들 입장에서는 조금만 더 버티면 곧 끝나기 때문에. 그렇게 생각하면 그냥 학교에서 순번대로 돌아가며 1,2,3학년을 맡는 게 교사의 오랜 정신건강에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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