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3 아이들이 가장 좋아한 시

by 옥돌의 지혜


고3 문학 수업의 수행평가로 수능특강 문학 교재에 실린 작품 중 인상 깊은 작품에 대한 감상문 쓰게 했다. 나는 학생들이 주로 사랑을 주제로 한 시를 좋아하며 고를 것이라 예상했는데, 의외의 작품이 가장 많은 선택을 받았다. 시의 내용은 아래와 같다.



곡구롱 우는 소리에 낮잠 깨어 일어나 보니

작은 아들 글 읽고 며늘아기 베짜는데 어린 손자는 꽃놀이한다

마초아 지어미 술 거르며 맛보라고 하더라


곡구롱 우는 소리에 / 오경화


위의 시조에는 노년의 화자가 낮잠을 자다 깨어 바라본 한가롭고 평화로운 가족의 일상이 펼쳐져있다. 나도 수업을 준비하려고 처음 읽었을 때 순간 '후우-'하고 괜히 숨을 내쉬게 되고 몸의 긴장이 이완되며 편안한 마음이 들었던 시조였다. 이 한가로운 시조 속에는 왠지 살랑이는 바람이 불 것 같고, 따스한 햇살이 비출 것 같고, 여기저기서 매미 소리와 손자의 까르르 웃음소리가 들릴 것만 같다. 짧은 3장 6구의 언어를 통해 모든 게 다 괜찮을 것만 같은 그 순간으로 독자를 초대한다. 그런데 고3으로 지내며 마음이 팍팍하고 지쳐있는 아이들한테 한가로운 가족들과의 시간을 떠올리는 게 하는 이 시조가 많이 위로가 되었다고 한다. 이 시조를 고른 아이들의 감상문에는 저마다의 따듯하고 평안했던 일상에서의 추억들이 자세히 적혀있었다. 저마다의 추억이 다 한 편의 시 같았다. 아이들의 글을 읽으며 살아가면서 힘든 순간에 가족과 함께한 좋은 기억이 큰 힘이 된다는 것 다시 한번 확신하게 되었다. 그리고 내 아이들과도 소소한 일상에서 이렇게 같이 웃고 편안한 순간들을 자주 만들도록 노력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이밖에도 인상적이었던 것은 여러 시를 감상하면서 관련된 경험으로 '할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를 쓴 친구들이 꽤 많았다는 점이었다. 요즘 아이들이 조부모님과 친밀하게 지내다 보니 조부모님에 대해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내 세대보다 훨씬 더 많은 영향을 받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두 아이만 해도 거의 매주 양가 할아버지 할머니를 만나며 무조건적인 사랑을 그때마다 듬뿍 받고 있는데 조부모님이 가까이 계시다는 게 아이들에게 참 큰 행운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고3이기도 하고 정시를 대비하는 학생들은 수행평가에 임할 때 양식에 맞춰 대충 답만 적을 거라는 내 예상과 다르게 대부분의 아이들이 꽤 진지하게 자신이 읽은 문학 작품에 대한 감상문을 적어주었다. 아이들이 문학 작품을 읽으며 떠올렸다고 적어둔 여러 경험들은 마냥 어리기만 하지 않고 나름 진지한 연애부터 가까운 사람의 죽음까지 아주 다채롭고 깊이 있는 경험이 많았다. 어떤 아이들은 나보다 더 어른 같았고 아이들의 생각과 태도에서 배울 점도 많았다. 그리고 아이들의 글을 통해 지난 한 학기 동안 문학 수업 시간에 작품을 통해 위로받고 마음을 다잡는 경우가 꽤 많았다는 것을 느끼면서 다시 한번 문학 수업의 힘을 체감할 수 있었고 수업을 준비하는 내 마음도 새삼 동여매게 되었다. 매일 자신과의 싸움을 벌이며 삶에 대한 고민이 가장 깊은 고3 아이들에게 문학 수업 시간에 배운 작품을 토대로 감상문을 써보게 한 건 꽤 괜찮은 과제였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들의 좋은 글을 읽으니 나 또한 글을 쓰고 싶어 져서 한 토막 적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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