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스승의 날은 처음이야
고3 담임의 스승의 날은 이런 느낌인가
올해도 어김없이 5월 스승의 날이 돌아왔다. 매년 3,4월 새 학기를 보내며 지친 마음이 5월 스승의 날이면 에너지 드링크를 마신 것처럼 순식간에 회복되었기 때문에 올해에도 솔직히 내심 기대하고 있었다. 형식적이긴 해도 아이들의 편지와 애정 공세를 받고 나면 그동안 학교에서 힘들었던 마음이 사르르 풀리고 나도 앞으로 아이들에게 더 잘해주고 싶은 마음이 새록새록 생기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번 스승의 날, 우리 반 아이들은 아무것도 없었다. 정말 아. 무. 것. 도. 나름 열아홉에 학생 n년차인 고3 학생들인데 칠판에 하트 하나 그리지 않고, 포스트잇 하나 써서 내밀지 않고, 지나가는 말로도 '선생님, 감사합니다' 말하지 않았다. 처음에는 당황스럽고 서운했다. 시간이 지나니 담임을 너무 무시하는 거 아닌가 괘씸한 마음까지 들었다. 나중에는 내가 뭘 잘못하거나 아이들 마음 상하게 한 게 있는 건 아닌가 위축되었다. 스승의 날이 일요일이었던 터라 눈치 보다 미처 준비하지 못한 옆반마저도 월요일에는 담임선생님께 노래라도 불러주었다. 하필 그 시간이 내 시간이라 우리 반 아이들은 옆반의 쩌렁쩌렁 울리는 스승의 은혜 노랫소리를 들으면서도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다. 그 민망하고 무안한 분위기에 "지금이라도 선생님한테 노래 한 번 불러주는 거 어때"하고 웃으며 말했는데, 아이들은 우물쭈물하며 내 눈을 피했다. 그제야 아이들이 의도를 갖고 일부러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기보다는 무언가를 표현할 용기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고, 이 숙맥 같은 녀석들.' 원래는 매년 아이들이 스승의 날 이벤트를 준비해주면 답가처럼 내가 읽어주는 시이지만 그래도 아이들에게 준비해온 시를 읽어주었다.
노래를 부르는
랑아
너와 나는 여섯 종류로
인간들을 분류했지
선한 사람, 악한 사람
대단한 발견을 한 것 같아
막 박수치면서,
네가 나를
선한 사람에
끼워 주기를 바랐지만
막상 네가 나더러 선한 사람이라고 했을 때. 나는 다른 게 되고 싶었어. 이를테면
너를 자랑으로 생각하는 사람
나로 인해서,
너는 누군가의 자랑이 되고
어느 날 네가 또 슬피 울 때, 네가 기억하기를
네가 나의 자랑이란 걸
기억력이 좋은 네가 기억하기를
바라면서 나는 얼쩡거렸지
김승일, <나의 자랑 이랑>
학기초부터 나까지 고3에 동화되어 담임반 학생들을 위해 온갖 스터디 모임을 만들고 매달 쉬지 않고 입시상담을 돌리며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아이들이 나의 그런 열심을 몰라주는 것 같아 힘이 쭉 빠졌다. 그래도 그즈음에 졸업생들과 작년에 가르친 재학생들이 찾아와 마음을 표현해줘서 속상한 마음을 다독일 수 있었다. 몇 년째 나를 찾아주는 학생들은 내가 당시에 특별하게 예뻐하거나 더 잘해준 기억이 없는 아이들이다. 물론 마음으로 예뻐했던 성품 고운 아이들이지만 내가 특별대우를 했다고 생각하진 않았다. 그런데 똑같이 잘해줘도 어떤 아이들은 그게 당연하거나 그 가운데서도 나에게 불만스러운 점을 찾고, 어떤 아이들은 내가 잘해준 것만 생각하며 감사하다고 매년 인사한다. 내가 잘해서가 아니라 그 아이들 마음밭이 사랑이 많아서 그렇다.
그리고 의외로 학부모님들께서 학교 메신저를 통해 긴 편지를 보내주셨다. 의례적인 인사말이 아니라 담임인 내가 그 학생을 위해 마음 쓴 부분들을 잘 알고 계셨고 그 부분에 대해 진심으로 고마운 마음을 표현해주셨다. 그 편지에는 학생들이 내게 겉으로는 표현하지 않지만 집에 가서 부모님께 '담임선생님이 아침에 힘이 되는 시를 읽어주고, 몸이나 마음 상한 날에는 따로 불러다 위로해주고, 조금 더 공부할 수 있도록 여러 가지로 노력해주신다'는 말을 한다는 내용이 담겨있었다. 표현하지 않는 학생들을 대신해서 마음을 전해주신 학부모님들의 마음이 참 따듯하고 감사하게 느껴졌다.
이번 스승의 날에 내가 느끼는 감정들을 돌아보며 나도 무척이나 학생들에게 사랑과 존경받기를 갈망하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교육학 수업에서 인간은 사랑과 존경을 받는 욕구가 가장 최상위 욕망이라고 배웠다. 그러나 사랑과 존경을 받기 위해 교사를 하는 것은 아니다. 마땅히 내가 가르쳐야 할 것을 가르치기 위해 교사를 한다. 그러니 비록 아이들의 애정 표현은 받지 못했을지라도 묵묵히 내가 해야 할 일들을 해야지. 서운한 마음은 묻어두고 이것 또한 교직 경험으로 여기고 몇 년째 내게 마음을 표현해주는 제자들에게 더욱 특별한 고마움을 가져야겠다. 그리고 앞으로 스승의 날에는 학생들에게 받을 사랑에 대해 기대하기보다는 내가 어떤 스승으로 더욱 성장해나갈 것인지 생각하는 계기로 삼아야겠다는 다짐을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