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고3 담임의 첫 3월

그래도 괜찮은 3월이었다

by 옥돌의 지혜

고3 담임을 하기 전에 막연히 풍문으로만 들은 고3 담임은 과로사하는 선생님들이 종종 있어 웬만한 학교는 3년 이상 고3 담임을 연임하지 못한다는 이야기가 있을 정도였다. 체력이 약한 게 가장 큰 약점인 내게 그런 고3 담임은 막연한 두려움으로 늘 마음에 자리 잡고 있었다. 그러나 인생의 많은 일들이 그러했듯, 고3 담임 역시 막상 닥치면 다 해내게 되어있는 것이었다. 바짝 긴장하고 들어선 3월 초입에서 어느덧 시간이 흘러 3월 말을 앞두고 있다.


이번 주 목요일에는 3월 모의고사가 있었다. 내 예상보다 훨씬 더 아이들이 긴장을 많이 했다. 모의고사 전 날 스트레스성 위염으로 조퇴하는 학생이 여럿이더니, 시험 보는 당일에는 토를 하거나 어지러움을 호소하는 아이들이 연달아 나왔다. 전날에도 당일에도 학생들에게 일부러 담담한 표정을 해 보이며 "애들아, 평생 살면서 너네 3월 모의고사 성적 물어보는 사람 없는 거 알고 있지? 시작점일 뿐이니 마음 편하게 보면 돼~"라고 큰소리쳤는데 효과가 전혀 없었던 모양이다. 3월 성적이 곧 수능 성적이라는 마음의 부담감이 점점 아이들을 잡아먹고 있었다. 아이들의 잔뜩 긴장된 마음을 지켜보며 하루 종일 시험 감독을 하고 나니 나도 마음이 지쳤다. 집에 가는 길에 아이들 표정이 마음에 걸려 학부모님들께 문자 한 통을 보냈다. "고3 첫 모의고사를 8시간에 거쳐 보았습니다. 이제 시작이니 아이들 많이 격려 부탁드려요."


모의고사 다음날 괜히 내 몸이 쑤시고 출근하기가 싫었다. 그러니 아이들은 오죽했을까. 새 학기 들어 처음으로 화장도 안 하고 그냥 대충 후드티를 거쳐 입고 출근을 했다. 아침에 아이들 얼굴을 보니 양쪽 다 상태가 좋지 않았다. 금요일이니 어떻게든 하루만 견디자 아이들을 다독였다. 3월 모의고사를 치르고 나니 작년에 재수한다고 찾아왔던 예전 담임반 아이들이 떠올랐다. 그중에서도 유독 마음 쓰이는 학생이 있는데 여태 연락이 없었다. 그래서 옆자리 선배 선생님께 여쭤봤다.


"선생님, 저 예전 담임반 학생 중 자주 연락 오던 애가 작년 재수 수능을 치른 이후 연락이 없어요. 잘 지내는지 걱정되는데 제가 먼저 연락해봐도 될까요?

그러자 선생님이 대답하셨다.


"기다려줘~"


그런데 점심시간에 갑자기 그 학생이 찾아왔다. 대학을 합격하긴 했는데 결과가 만족스럽지 않아서 먼저 연락을 못하다가 그냥 용기가 난 김에 학교로 찾아왔다고 한다. 너무 반갑고 기뻤다. 나도 오늘 마침 네 생각이 많이 났다고, 오길 잘했다고, 선생님이 점심시간이니 커피를 사주겠다고 나섰다. 그런데 학생이 마침 자기가 커피 사 왔으니 이야기나 나누자고 한다. 긴 수험생활을 하며 얼굴을 볼 때마다 점점 낯빛이 어두워져 가던 아이가 대학생활에 아주 신이 나있었다. 처음 하는 동아리 활동, 과 활동, 아르바이트 모두 즐겁다고 했다. 행복해하는 모습을 보고 나니 내 마음도 한결 가볍고 행복해졌다. "너는 성품이 재능이라고 했잖아. 그 밝고 씩씩한 성격으로 잘 살아갈거야. 지금 당장 대학교가 마음에 안들어도 거기서 열심히 공부하면 또 졸업하고 더 넓은 곳에서 다시 사람들 만나게 되니까 대학생활 즐기면서도 성실히 보내야해."라는 직업병인 잔소리를 또 덧붙였다. 예전에 내 고3 담임 선생님께서 우리 반 아이들한테 재수하게 되면 수험생활 마치고 꼭 연락 한 번 달라고, 늘 마음의 기도제목으로 남아있다고 하신 말씀이 떠올랐다. 꼭 내 마음 같았다. 찾아온 학생을 통해 다른 재수한 제자들도 다 대학에 합격한 것을 듣고 나니 마음이 편안해졌다. 이번에 맡은 우리 반 고3 아이들도 결국은 이렇게 다들 자기 자리를 찾아가리라 생각하니 더욱 위로와 힘이 되었다.


제자를 보내고 두 시간을 연달아 수업을 했다. 수업이 많은 날이라 네 시간째 수업을 하니 어제의 여파인지 목소리가 쉬고 너무 지쳤다. 어제 모의고사를 보느라 이미 힘 빠져있는 아이들에게 오늘은 좀 수업을 일찍 마쳐도 되지 않을까 하는 개인적인 사심을 담아 질문했다.


"애들아, 우리 오늘 힘든데 수업 좀 일찍 마칠까?"


엄청 좋아하며 고개를 끄덕일 거란 내 예상과 달리 아무도 대답하지 않는다.


"오잉? 오늘 수업 여기까지만 해요 손들어봐. 그러면 남은 시간 꽉 채워서 수업 듣고 싶어요 손들어봐."


대부분의 아이들이 끝까지 수업을 하는 쪽으로 손을 든다. 당황한 나는


"어... 그래.... 우리 반 수능 국어 다 1등급 맞겠다! 그러면 우리 진도 더 나가볼까?"


하고 진도를 끝까지 뺐다. 이미 목도 아프고 힘도 없는 상태에서 평소보다 맥없이 수업을 마무리했다. 그런데 쉬는 시간에 두 아이가 교탁으로 나온다.


"선생님, 얘가 할 말이 있대요."

"응, 뭔데?"

"아, 쑥스러운데.... 선생님. 저 작년까지 국어가 진짜 싫었거든요. 너무 재미없고요. 그런데 올해 선생님 수업 들으면서 국어 수업이 너무 재밌어요. 선생님 수업 계속 듣고 싶고 국어가 이렇게 재미있었나 싶어요. 선생님이 여러 경험이랑 문학을 엮어서 설명해주시니까 나중에 복습할 때도 더 잘 생각나고 도움이 많이 돼요."


이런 갑작스럽고도 사랑스러운 고백(?)이 이런 무성의한 수업 뒤에 이어지다니. 기쁘면서도 민망하고 부끄러웠다.


"아고, 선생님한테 이렇게 와서 말해줘서 정말 고마워. 선생님이 앞으로 더 힘내서 좋은 수업 준비할게."


3월을 잘 보내고 있나 이런저런 고민이 많았는데, 한 달을 거치며 담임반 아이들과 수업 가르치는 아이들과 괜찮은 관계를 시작한 것 같아서 마음이 놓인다. 그저 하루하루 내가 할 수 있는 성실함과 진심으로 보내다 보면 또 그렇게 성실하게 진심을 다한 일 년이 되겠지? 오늘 같은 날이 한 달에 한 번씩만 있으면 좋겠다. 그러면 그 맛에 교사 오래오래 하고 싶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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