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아이가 고3이라면
오랜만에 하는 담임에다 첫 고3 담임이라 긴장하고 3월을 보내고 있다. 매년 3월에 신경 쓰는 행사 중 하나가 학부모 총회인데, 올해는 코로나로 인해 별도의 학급 모임 없이 줌으로 학교 입시설명회만 진행되었다. 코로나 이전에 2학년 담임을 할 때는 선생님들도 교실로 찾아오시는 학부모님들과 보낼 시간을 여러 모양으로 준비하셨는데 공식적인 시간이 없어지니 유야무야 넘어가는 분위기였다. 나도 첫 고3 담임이니 이 분위기에 묻어갈까도 했다.
그런데 작년 딸아이의 5세 반 담임선생님과 일 년을 보내며 느낀 바가 있었다. 선생님의 작은 친절과 배려가 학부모에게 굉장히 큰 만족과 고마움으로 느껴진다는 것이었다. 나도 교사이지만 '이렇게까지 하신다고?'라고 여러 번 느꼈을 정도로 딸 봄이의 담임선생님께서는 매번 정성스럽게 연락을 주셨다. 작은 걱정할만한 일에도 매번 전화를 주셔서 안심시켜주셨고, 학부모 상담으로 목이 쉬면서도 상담을 빨리 끝내지 않고 충분히 대화하려고 노력하셨다. 처음 셔틀버스를 태워 기관에 보내는 학부모로서의 불안감이 선생님에 대한 신뢰가 쌓일수록 눈 녹듯 사라졌다. 오히려 유치원에서 작은 갈등이나 다치는 일이 생겨도 선생님을 믿고 크게 걱정하지 않게 되었다. 나 또한 이런 프로페셔널한 교사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하는 자극이 되는 선생님이셨다.
내 담임반의 학부모님의 입장이 되어 생각해보았다. 나의 하나뿐인, 혹은 첫째 딸이 고3이 되었다. 어떤 담임선생님을 만나 일 년간 어떻게 지내게 되는지 궁금하고 불안한 마음이 가득이지만 아이에게 이것저것 물어보면 가뜩이나 예민한데 퉁명스럽게 대답하고 만다. 그렇다고 담임선생님 번호로 전화를 걸어 궁금한 것들을 일일이 물어보자니 진상 학부모처럼 보일까봐 망설여진다. 왠지 이런 감정이지 않을까? 내 딸 봄이가 고3이 되면 나는 그럴 것 같다.
그래서 다소 오버스럽게 다시 고2 담임 때처럼 학부모님에게 보내는 편지를 썼다. 담임 소개와 상담 가능한 나의 시간표, 학생의 가정교육 차원에서 부탁드리는 말씀(주로 출결 관련), 그리고 우리 반이 일 년 동안 신경 쓰는 특색활동과 일 년간 진행할 입시상담 일정을 적었다. 그 뒷장에는 매월 진행되는 모의고사 일정과 학교 정기 고사 일정을 담은 표를 만들었다. 그리고 세 번째 장에 학부모님께서 내게 궁금한 것이 있으면 적으실 수 있는 편지지 양식을 만들었다. 아이에 대해 자랑하고 싶은 점, 걱정되는 점, 신경 썼으면 하는 점을 적는 칸을 만들었다. 학부모님들이 쑥스러워하거나 고민하지 않고 하고 싶은 말들을 적으실 수 있도록. 그리고 부담 갖지 않고 쓰시되 안 적으셔도 된다는 말을 덧붙였다.
나와 같은 선생님이 또 계실까 해서 쑥스럽지만 내가 만든 편지 양식을 3학년 담임선생님들에게 공유했다. 이미 고3 담임으로는 프로인 선배 선생님들께서는 새내기가 열심히 한다며 귀여워해 주셨다. 그리고 오늘 몇몇 아이들이 학부모님이 적어주신 편지를 받아 가지고 왔다.
아이들을 집에 보내고 교무실 자리에 앉아 학부모님들의 편지를 읽는데 웃음이 났다. 같은 항목들인데도 거기에 적은 답변들에 따라 학부모님들의 성향이 각각 다르게 드러났기 때문이었다. 그저 아이가 행복하고 단단한 어른으로 자라기를 바라는 부모님부터 당장 국어 5점 향상에 수학 안정적인 1등급 등등 과목별로 올려야 할 점수를 적어두신 철두철미한 학부모님까지 가지각색이었다. 짧은 단어만 써놓은 학부모님부터 예쁜 그림까지 글 옆에 그려두신 학부모님까지 아이들만큼이나 학부모님들도 다 다른 결이었다. 그러나 모두가 다른 가운데서도 다 같은 것은 다들 본인의 소중한 자녀가 잘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라는 것이었다. 행복하고 유능한 사람으로 이 사회에 나오기를 바라고 있었다.
아직 3월 한 달도 안 지났는데 벌써 퇴근 후에 자주 연락하는 학부모님부터 매일 결석 지각을 반복하는 아이들까지 나타나고 있다. 또다시 마음고생을 하게 될 확률이 매우 높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반 아이들이 예뻐 보이기 시작했다. 이름을 다 외우고 나니 더 눈에 잘 들어온다. 3월에 아침 일찍 나와 자습하며 으샤으샤하는 그 마음과 태도들이 기특하고 사랑스럽다. 비록 첫 고3 담임이라 다른 담임선생님들보다 여러모로 어수룩할지 모르지만 아이들의 마음과 함께하며 나의 최선을 다해주고 싶다. 서로에게 마음 따듯한 기억으로 남는 고3 일 년이 되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