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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촌개구리 Apr 05. 2024

촌개구리의 삶 (9)

내가 자전거를 안 타는 이유

나이 들수록 하체를 단련해야 한다며 친구들이 권하는 자전거를 나는 타지 않는다.

십여 년 전 11월 어느 휴일... 저녁을 준비하던 아내가 "마트에 가서 두부와 콩나물을 사 오라"는 명령이 떨어졌다.


​마트와 우리 동과는 제법 거리가 있어 빨리 다녀오기 위해 자전거를 타고 집을 나섰는데 ​촉촉이 내리는 가을비에 맞바람까지 불어와 추위가 느껴졌다.


가슴골로 찬 바람이 들어오는 것을 막기 위해 나도 모르게 왼손으로 옷깃을 여미고 오른손만 핸들을 잡고 달렸다.


​날씨는 어둑어둑 내리막길에 탄력 받아 내려가는데 좌측에서 갑자기 자동차 불빛이 나타나 순간 핸들 잡은 오른손이 자동으로 브레이크를 꽉 잡았다.


​그 순간 앞바퀴만 제동이 걸리며 내 몸이 자전거와 분리되어 공중으로 붕 뜨더니 약 4~5미터 전방에 개구리처럼 날아가 떨어졌다.


​빗길에 납작 엎드린 채 속으로 죽었나 살았나 생각하며 살며시 고개를 드려는 순간 '철커덕'하며 뭔가 등에 업히는데 내가 탔던 자전거가 주인을 알아보았다.


천천히 일어나 보니 양 무릎이 다 까지고 손바닥에서도 피가 흘렀다. 다행히 얼굴은 멀쩡했다.


​초등학교 시절 합기도 다니며 배웠던 '전방낙법'을 몸이 기억한 건지 하여튼  살았다는 사실에 위안을 삼았다.


그러나 원인 제공한 자동차는 괘씸하게 위급환자를 구조하지도 않고 저 멀리 사라져 버렸다.


그래도 임무를 완수하려고 다리를 쩔뚝거리며 자전거를 끌고 마트에 갔더니 주인아주머니가 옷은 다 젖고 피가 절절 흐르는 나의 몰골을 보고 좀비를 만난 것처럼 뒷걸음치며 엄청 놀랐다.


마침내 두부와 콩나물 봉지를 들고 현관문에 들어서자 아내도 화들짝 놀라며 자초지종을 들은 아내 왈 "심부름 두 번 시켰다가는 과부 되겠네..." 하며 혀를 찼다.


그 후 내 등에 업혔던 자전거는 바로 처분했고 현재까지 자전거를 탄 적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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