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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촌개구리 Nov 25. 2024

촌개구리의 삶 (30)

월동준비

어린 시절 모두 힘들게 살던 우리 부모세대는 긴긴 겨울이 고난의 계절이므로 김장과 겨울 내내 쓸 연탄을 들여놓는 월동준비가 지상과제였다.


시절 식구들이 많다 보니 김장하는 날 동네 사람들이 동원되어  250~300 포기 정도 담갔는데 그 많은 양을 땅을 파서 항아리에 저장해 겨우내 먹었던 기억이 있다.

다음은 추운 겨울을 이겨내기 위해 서민들은 대부분 난방을 위해 연탄 들여놓아야 하는데 목돈도 준비해야 하고 비바람을 이겨낼 수 있는 보관장소를 마련해야 했기에 쉽지 않았다.


그리고 연탄은 관리하기 너무 힘들었다. 번개탄도 없던 시절이라 불을  꺼트리면 낭패였고 이웃집에서 불이 붙어있는 연탄을 꿔오기도 하고 꿔주기도 했다. 이처럼 제 때 갈아주는 것이 핵심이다.


미리 갈고 잠자리에 들으려면 위아래  붙어떨어지지 않는 절정기의 두 연탄을 식칼을 동원해 강제로 떼어내는 어려움도 있었지만 연탄 덕분에 그나마 겨울을 따듯하게 보냈다.


그러다 어느 날 구들장 사이로 스며든 연탄가스 때문에 죽을 고비를 여러 번 넘긴 적이 있었다. 학교도 못 갈 정도로 어지럽고 머리가 아팠지만 병원에도 못 가고 동치미 국물을 마시며 이겨냈으니 공부를 잘 못한 것은 연탄가스를 많이 마셔서 그런가 보다.


세월이 흘러 난방이 잘 되는 아파트에 살고 있지만 나이가 들 수록 추위를 많이 타게 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노화현상이라지만 나는 유독 더 많이 타는 체질이다.


그렇다고 난방온도를 마구 높이면 체감온도 10도 차이나는 아내가 땀을 흘리게 되므로 겨울이 오면 나만의 월동준비를 하는데 그것은 보온 물주머니(유단포)를 준비하는 것이다.


6~7년 전 아내가 백화점에서 추위를 많이 타는 나를 위해 PVC 소재의 보온 물주머니를 사 가지고 왔는데 딱 보는 순간  '유단포'라는 이름이 생각날 정도로 엄청 반가웠다.


어린 시절 난방이 안 되는 2층 다락방에서 형들이 번데기 모양의 양철로 된 유단포에 뜨거운 물을 넣어 밤새 끌어안고 추위를 이겨내던 모습이 생각났다.


그때부터 나의 겨울나기 필수품으로 애인처럼 거의 24시간 껴안고 지내는데 이불속에서는 놀라울 정도로 보온이 잘 돼 잠자리에 안고 들어가면 아침까지 온기가 남아있다.


동네에 사는 친구 부부는 우리 때문에 애용하게 되었는데 밤새 이불속에 제 역할을 하고 아침까지 온기가 남은 그 물로 머리를 감는다니 활용도 120%로 추천한 보람이 있다.


가격도 저렴하고 내구성도 뛰어나 수명이 2~3년 정도 되는 거 같아 가성비 최고다.  단 사용할 때 주의사항은 포트에서 끓는 물을 바로 넣지 말고 약간 식혀서 넣거나 또는 찬물과 섞어서 넣어야 한다.


​지난주 스마트폰 몇 번의 클릭으로 보온 물주머니 2개를 구입하여  나만의 월동 준비를 마쳐 올겨울도 따듯하게 보낼 수 있다는 생각에 마음마저 훈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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