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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희수 Feb 09. 2022

초연

너와 나의 상처를 만들지 않기 위해


2시 30분 학교를 마치고, 아들이 곧 귀가할 시간이 되어간다. 남편이 없는 빈 사무실을 두고 집에 가서 아들과 있으려니 빈 사무실이 나를 붙잡는다. 아들과 통화하고, 오늘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물었다. 역시 아들은 금요일이라는 것을 잊지 않고 있다.     


금요일에는 미술, 피아노 수업이 끝나면 오르다 수업이 5시 10분에 있다. 혹시 선생님께서 이르게 올 때가 있으니 늦어도 제시간에는 귀가해야 한다. 하지 않던 걱정을 하게 된 이유는 요즘 시현이가 계속해서 귀가 시간이 1, 2분씩 늦게 온다. 집에서 게임을 하고 늦게 피아노 학원에 가는 것이다. 피아노를 마치고 오면 선생님께서 늘 기다리게 되니 죄송한 마음에 불편했었다. 아무래도 오늘은 아들과 통화도 했고, 무엇보다 아들이 스스로 기억을 하고 있는 것을 보니 안심된다. '알아서 잘하겠지.' 


매일 같이 이렇게 마음을 조아린다. 스마트폰 때문이다. 아침에 학교 갈 때부터, 운동하고 마지막 귀가하는 밤 8시까지 스마트폰을 아들 손에 쥐어주었다. 스마트폰을 쥐어준지 2개월가량 되어가는데, 그동안 꾸준히 내 마음을 옥죄고 있다. 스마트폰이 아들을 덮쳐버릴까 봐서 걱정하면서도, 아들 스스로 이겨내기를 바라기에 이러고 있다.


'지금쯤 학원에 도착했겠지!' 

학원에 도착했을 거라 믿으면서 아들에게 전화를 하게 되었다. 신뢰한다고 하면서도 내 안에 있는 막연한 불안이 있었나 보다. 3시 30분이 되도록 아들이 집에 있다. 어쩌면 좋은가? 정상적인 수업이 가능하게 하려면, 3시 20분에는 피아노 학원에 도착해야 하는 것을 알고 있다. 미술, 피아노를 줄이고 오던지, 오르다 선생님을 기다리게 해야 하는 상황이다. 답답하다. 이런 상황에서 아들은,     


“엄마, 학원에 태워 줘!”     


"엄마, 지금 사무실이야"라고 말하니,     


“그래도, 걸어가는 것보다 엄마가 와서 태워주는 게 빠르잖아.”라고 한다.     


순간 "야! 지금 시간이 몇 시니? 1시간 전에 전화 통화했잖아. 그때 출발했어야지. 인제 와서 그걸 말이라고 하는 거야!" 입속에서 맴돈다. 크게 심호흡해야 한다. 미리 통화해서 시간 점검한 것 다 빼고 보더라도, 놀다가 놓친 시간을 엄마에게 태워 달라고 한다. 제 잘못은 떠오르지 않는 아들에게 친절하기 위해 내게 필요한 미덕이 '초연'이다.   

  

초연은 감정의 소용돌이 속에서 통제력을 잃지 않고 자신의 느낌을 관조하는 것입니다.

초연함을 유지하면 당신은 감정이 시키는 대로 행동하는 대신 자신이 어떻게 행동할지 선택할 수 있습니다.

You use thinking and feeling together, so you can make smart choices.

버츄카드 [초연] 앞면

     

오늘의 미덕으로 초연이 나온 이유가 있었구나! 새벽녘에 버츄카드를 뽑았을 때 ‘초연’을 뽑았다. 오랜만에 만난 '초연'을 만나면서 의아했었다. 오래간만이구나 싶었다. 어제저녁, 브런치에서 온 연락과 버츄프로젝트에서 보낸 회신을 받았던 기뻤던 순간들이 떠올랐었다.     


'아, 기쁨이 과하여 실수하지 말라는 메시지구나. 누군가의 감정을 헤아리지 못해 상처를 주거나, 이미 내려놓은 상처를 건드리지 않도록 조심하자.'라고 새벽녘에 생각했었다. 그리고, 신중하게 행동하려고 플라워 만다라를 옮겨 그리며 평온을 찾았다.     


그랬는데 초연이 필요한 이유는 따로 있었다. 아들과 2번의 통화를 통해 기쁨과 화가 왔다 갔다 하고 있다. 기쁨에 겨운 행복의 순간은 짧기에 감정을 다스리지 못해 실수할 염려는 슬픔이나 화보다 상대적으로 작다. 그러나, 슬픔과 화가 부르는 잘못된 행동은 잦고, 그로 인해 파생되는 결과도 크다.

그래서     

“비참한 사건과 행복한 사건은 자연스럽게 그 후손을 낳는다.

'슬픔'의 조상과 후손은 '기쁨'의 조상과 후손보다 훨씬 더 번성한다.” by. 모비 딕

라고 말했나 보다.          


엄마가 말할 때 들어주지 않는 아들에게 슬픔의 화살을 쏘아 주어야 하나? 그렇게 해서 슬픔의 후손을 낳아야 하나?  그 결과는 이미 지나간 경험들로 쌓여 있다. 분명 나는 물론 아들도 상처만 남을 것이다. 이때 멈출 방법을 초연 속의 실천 문장을 읽고, 또 적어 본다.    

 

충동적인 감정에 휩쓸리지 마세요.

후회할 일을 하기 전에 시간을 가지세요.

뒤로 물러나 자신의 감정을 보세요.

반응하는 대신 행동하세요.

통제하지 말고 내버려 두세요.

옳은 일을 선택하세요.

버츄카드 [초연] 뒷면        

       

아, 초연의 미덕을 빛낼 것을 다짐하기 위해


나는 내 감정의 실체를 알고 초연함 속에서 내 행동을 선택합니다.

나는 어떤 상황에서도 최선의 나를 선택합니다.

버츄카드 [초연] 다짐     


이렇게라도 나 자신을 다스려야 한다. 이 순간은 짧고 일어난 상처는 없어지지 않으며, 영원하므로.     

학원 다녀오면, '시현아, 학원에서 늦고, 오르다 수업에도 늦게 참여했잖아. 너 기분은 어때?'라고 묻고 아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야겠다. 통제하지 않고 내버려 두기를 선택한다. 수동적으로 반응하지 않고 내 행동을 선택한다. 나의 주인은 나 자신이 될 수 있어서 기쁘다.


6시에 귀가했다. 평소 같으면 어림도 없을 날림 숙제를 한 아들에게 다시 할 것을 권해 본다. 

“시현아, 오늘 숙제 너무 대충 했던 데, 다시 할 수 있겠어?” 

“응, 다시 할게.” 

아들은, 묵묵히 다시 하고 있다.  


아들의 마음속에 있는 것은 엄마가 야단칠까 하는 걱정이 아니라, 자신의 잘못에 대한 반성과 뉘우침이 아닐까? 아들과 스마트폰에서 초연 해지는 것이, 참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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