갓생의 의미를 되묻다.
대만여행 다녀온 지 2주밖에 되지 않았지만 우리 부부는 번아웃이 왔다며 직장인의 고충을 서로에게 토로했다. 남편은 여행하는 동안 워라밸의 기쁨을 느꼈지만, 다시 지친다고 했다. 나는 여행 다녀온 지 2주 만에 현실로부터 달아나고자 반차를 썼다. 우리는 왜 이렇게 사는 걸까?
일 시작하며 종종 현타(현실자각타임)가 나를 찾아왔다. 미국에서 우리에게 하루의 1/3은 정말 우리의 시간이었다. 대단한 것들을 한 것은 아니었지만, 퇴근 후 함께 저녁을 먹고 소파에 나란히 앉아 이야기를 나누며 시간을 함께 보낸다는 것만으로도 하루는 풍족했다. 정말 하루의 8시간은 잠을 자고, 8시간은 일을 했고, 남은 8시간은 온전히 우리의 시간이었다. 하지만 한국에 온 후, 우리의 삶은 바뀌었다. 남편은 오후에 출근해 밤늦게 퇴근을 했으며, 우리가 함께 저녁을 먹을 일은 없었다. 심지어 내가 남편보다 더 늦게 퇴근하는 날도 부지기수였다.
한국에서 일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새로운 단어를 배웠다. '갓생'. 부지런하고 생산적 이어 타인에게 모범이 되는 훌륭한 삶을 뜻한단다. 동료들은 퇴근 후 각종 학원을 가고 스터디를 하는 서로를 보며 '갓생 사시네요'를 외쳤다. 그들을 보며 나도 황새가 되고 싶었다. 퇴근 후 독서도 하고, 운동도 하고, 외국어도 배우고, 업무에 관한 스터디를 하는 그런 '갓생'을 살아내고 싶었다. 그렇지만, 나에게 주어진 시간과 에너지는 한정되어 있었다. 야근 후 운동과 집안일을 하는 것 만으로, 뱁새인 나는 잠이 늘 부족했다. 나는 커피를 선호하지 않았었지만, 살기 위해 마시기 시작했다. 하루에 커피를 두 잔씩 마시며 늦게까지 일하고 퇴근하는 삶. 그 삶에 이미 나의 시간은 없었지만, 나는 갓생을 살아내지 못하는 내가 부족하게만 느껴졌다.
배우는 것을 멈추지 않는 삶. 그건 아무래도 좋다. 하지만, 서로 갓생을 외쳐 되는 걸 보며 묘한 자괴감이라던가 비교가 느껴지는 것은 기분 탓일까. 갓생이란 타인의 모범이 되는 삶이라는데, 인생에 정답이라는 것이 있을까. 하지만 정답을 맞히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 속에서 내 답이 오답일까 봐 그저 생각 없이 그들의 답을 나는 베껴왔던 것 같다.
10년에 가까운 시간들을 해외에서 보내며 남들의 시선을 신경 쓰지 않아도 되는 게 너무나도 좋았다 (가진 자들의 이야기는 다를 수 있지만). 하지만 한국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회사에서의 시간들과 성공을 자신들의 삶의 전부로 여기는 것처럼 보였고, 나 또한 그러한 삶을 받아들이게 되었다.
이번주에 처음으로 반차를 쓰고 남편과 시간을 보냈다. 그 시간 동안 대단한 걸 한 것은 아니었다. 어떻게 보면 주말에도 할 수 있는 것들이었지만, 밥 한 끼를 같이 먹었다는 것만으로도 손을 잡고 함께 걸었다는 것만으로 우리는 행복했다. 남편은 우스갯소리로 자신의 월급을 다 줄 테니 매일 이렇게 시간을 보내달라고 했고, 나는 오랜만에 살아있다고 느꼈다.
누군가에게는 좋은 성과를 내고 끊임없이 자기개발을 해나가는 삶이 갓생일 수 도 있다. 하지만 우리는 톱니바퀴의 부품처럼 돌아가던 시간 속에서 벗어났을 때, ‘나’가 존재한다는 걸 느꼈다. 그렇게 우리는 서로와 함께 보내는 시간이 우리의 갓생임을 깨달았다.
당신의 갓생은 안녕하신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