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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주연 Jul 04. 2022

모두 나의 모습

기쁘고, 힘들고, 행복하고, 슬프지만 보람차고 즐거운 나의 삶

인스타그램을 꽤 열심히 해왔었던 것 같다. 내 생각을 적는 것도 좋았고, 내가 찍은 사진을 공유하는 것도 좋았고, 누군가의 관심을 받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누군가에게 인정을 받기 위해 사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그런 관심들이 인생의 원동력이 되는 건 확실하다.


한 때 친했던 친구들은 SNS와 관련하여 나와 상반된 의견을 갖고 있었다. 현실이 불행하고, 외로운 사람들이 오히려 내세우기 위해서 SNS 하는 거라고 말하곤 했었다. 생각해 보면 혼자 생각하고 망상할 시간이 차고 넘치게 주어질 때 피드를 자주 올렸었던 것 같다. 혼자 했던 생각들을 누군가에게 말할 싶은데 말할 사람이 없으니 혼자 어디엔가 쓰는 그런 식이었던 것 같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잘하지 않게 됐다.

우선은 혼자 생각하고 망상할 시간과 기회가 좀차 생기지 않는다. 아기가 물을 쏟고 우유를 뿜고 계속 사건 사고가 연달아 터지니, 육아에 소모되는 에너지가 커서인지 ‘지금 당장 해야 하는 것’ 아니면 그 보다 더 뒤에 있는 미래에 대해서는 생각할 여유가 없어졌다. INFP에겐 슬픈 일이다.


그리고 별로 하고 싶은 말이 없어졌다. 비생산적으로 치부되는 쓸데없는 것들에 대해 생각하는 것을 멈춰서인가? 어쩌면 내가 순간순간 생각하는 모든 것들을 다 말로 내뱉어서 그런 것 같기도 하다. 몇 년 전과는 다르게, 집엔 항상 내 말을 들어주는 남편이 있고, 그냥 내가 본인에게 말하고 관심 가져주는 것을 최고로 좋아하는 딸이 있다. 그래서 하고 싶은 말들을 그냥 그때그때 하다 보니 세상에 나가지 못하고 머릿속에 부유하는 말들이 예전처럼 많이 남지 않는 것 같다.


문득 예전에 친구들이 했던 말이 생각났다. 현실이 불행하고, 외로운 사람들만 SNS를 한다는..

그렇다면 과연 예전에 나는 불행했었고 지금은 행복한 건가?


그때는 그 나름대로 행복했고, 지금은 지금대로 행복한 게 맞는 것 같다. 

말할 사람이 따로 없다고 해서 불행하다고 할 순 없는 것 같다. 혼자서 보낼 수 있는 시간이 많아서, 자유롭게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었던 시기는 지금 돌이켜 생각해 보면 그 나름대로 정말 매력이 있던 시기였던 것 같다. 지금은 그때 했었던 생각들을 떠올리기도, 기억하기도 힘들어졌다.


SNS에 무엇인가를 쓸 때는 긴 하루 중에 잠깐의 찰나, 그 순간의 감정과 생각을 기록하게 되는데, 그 사진과 글이 나의 생각을 100% 대변하지는 못한다. 말 그대로 그 순간 내가 느낀 것이지만, 몇 시간 지나선 다르게 느낄 수도 있고, 몇 달, 몇 년이 지나선 그런 생각을 했었는지 조차 생각이 나지 않을 수 있다. 


내가 오늘 하루 중에 너무 행복했던 순간을 올리면 그대로 ‘행복한 사람’이 되는 거고, 뭔가 씁쓸했던 순간을 올리면 ‘우울한 사람’이 되는 건데, 하루 중에도 행복한 순간과 씁쓸한 순간은 수도 없이 교차한다. 남들이 나에 대해서 굳이 알 필요 없는 세세한 것까지 피곤할 정도로 오픈된 공간에 올리는 사람은 잘 없을 것 같단 생각이다. 그 순간 중에서도 내가 보이고 싶은 것, 혹은 가장 기억에 날 만한 것만 추려서 올리게 되는데 그게 그 사람을 규정하는 이미지가 되기도 한다. 그 사람의 일거수일투족을 알 수는 없으니, 올린 피드 몇 개를 보고 어떤 사람인지를 가늠하게 될 수밖에 없다.


결국 사람은 다 같지 않을까? 정말 예쁜 사람도 본인의 기준에 한없이 못나 보이고 거울보기 싫은 날이 있을 것이고, 그런 날은 굳이 셀카를 찍어 피드에 올릴 필요를 느끼지 못할 것이다. 본인의 업무로 성공적인 활동을 하는 프리랜서도 어디선가 좋지 않은 피드백을 받거나 일하면서 기분 나쁜 일을 당했을 수 있지만, 올렸다가 굳이 클라이언트에게 소문이 나거나, 사람들이 본인을 실력 없다고 생각할까 봐 그런 일을 절대 외부에 공개하지 않을 수도 있다. 한없이 행복해 보이는 사람도 본인이 비참하게 느껴지는 날이 있을 것이고, 그걸 굳이 SNS에 올리지 않을 뿐일 수 있다. 


한없이 자기 자랑으로만 포장된 피드를 보는 것도 어느 순간 너무 피곤해졌다. 힘들고 화나는 글을 쓰면 ‘부정적인’ 사람으로 규정될까 봐 꺼려지고, 정말 힘든 순간도 있는데, 기쁘고 행복한 순간만 올리는 것도 ‘기만’이라는 생각이 들어 머리가 복잡해지다 보니 자유롭게 무엇을 올리기가 어려워졌다. 그냥 편하게 아무 생각 없이 글을 쓰고 싶은데, 그러려면 역설적으로는 정말 많은 생각을 해야 됐다. 순간의 생각들과 찰나의 감정들이 나라는 사람을 대변하는 것은 정말 억울한 일이니까 말이다. 우리의 삶은 수많은 '순간'들로 점철되기 때문에, 그 '순간'으로 한 사람을 규정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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