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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슈맘 May 22. 2021

석가탄신일, 절에서 내가 빌었던 소원은?

워킹맘 일상



5.18 석가탄신일 용화사에 다녀 왔다.

우리집은 절세권이다. 걸어서 절까지 10분도 안걸린다. 

홈세권(홈플러스), 스세권(스타벅스), 절세권(절이코앞) 이렇게 훌륭한데 왜 집값은 많이 안오르냐...ㅎㅎ


나는 불교 신자는 아니지만, 석가탄신일은 이런 날이야~ 


아이들의 교육 차원에서, 절 구경이라고 시켜줄 요량으로 다녀 왔다. 제작년 코로나가 터지기 전까지만 해도, 용화가 앞에는 장사꾼들이 많아서, 돈쓰고 구경하는 재미도 쏠쏠했는데. 코로나 여파 때문인지, 아주 한적하고 조용한 모습이었다.

사실, 어딜가나 돈쓰는 재미 (소소한)가 있는건데, 그 흔한 솜사탕도 사먹을 수 없었으니 아쉬움이 더 했다

가끔 얻어 먹는 절 밥도 참 맛있었는데, 그 재미도 없다.




강아지들과 어린시절을 함께한 우리 두딸들. 길거리에서 강아지를 만나면 너무 이뻐한다. 사진을 찍고 싶다고 조르길래. 사진좀 찍어도 되냐고 부탁을 드렸다


"응 얼마든지 찍어요~ 내가 귀때기 잡아줄께. 귀때기~~"


76세가 되셨다는 나이지긋하신 할머니, 그치만 76세로 보이지 않았다. 화려한 화장과 긴 파마 머리, 순금반지, 멋진 옷차림. 범상치 않아보였다. 귀때기를 잡아줄테니 사진을 찍으라는 말이, 왜이렇게 웃긴지.. 피식 피식 웃음이 나왔다


"우리 아들은 50살인데 여직 장가를 안갔고, 우리 딸은 36세인데 결혼에 관심이 없어. 내가 뭐~ 백날 절하고 돌탑을 돌아봤자 이모냥인데.. 이런 손주 하나 있으면 원이 없겠네유~"

우리 둘째를 사랑스러운 눈빛으로 바라보시며, 손주를 염원하셨다. 아드님은 50세. 아직 노총각이시고, 따님은 36세 나와 동갑인데 아직 시집갈 생각이 없다고 하시며 하소연을 하셨다. 본인은 30년 이상 절에 다니셨고, 얼마전 용화사 근처로 이사를 오셨다고 하셨다. 


"내가 절 때문에, 이애 (강아지) 하나 데리고 이사를 왔어요. 백날 절하고 시주하고 그러면 뭐하냐고요. 자식들이 이모냥인데"


이런거 하나 낳아주면 소원이 없겠어요. 죽어도 여한이 없겠네"

한참 얘기를 들어 드리고 있는데, 또 다른 노부부 두분이 다가오셨다. 강아지를 한번 쓰윽 보시고, 우리 둘째 딸을 쳐다보시더니 머리를 쓰윽 쓰다듬어 주셨다.


요즘같은 코로나 시대에, 아이 머리 만지는거... 싫어하는 엄마들도 있겠지만, 되려 우리 아이를 이뻐해 주시는것 같아서, 감사했다. 


" 우리 아들은 결혼한지 5년이 넘었는데, 아이가 없어요. 우리 며느리가 안낳아줘. 어쩔때는 며느리가 그래서 미워요"


으음..... 며느리가 미우시단다. 안낳고 싶어 안낳는것도 아니고 사정이 있을텐데, 옛날 어르신이라서 그런지, 확실히 옛날 마인드셨다. 

한편으로는, 우리 엄마 아빠, 그리고 시부모님이 우리 아이들을 보면 눈에서 꿀이 떨어지는데, 손주가 얼마나 보고 싶으셨으면 그런말을 하셨을까, 애쳐롭기도 했다.



엄마, 우리 두딸들이 불상 앞에서 소원을 빌었다. 1000원씩 세명이니까 총 3000원. 시주하고 소원빌기

" 이 불상이요~ 삼성 홍라희 여사님이 기부한거래요.멋지지 않아요?"

아이들과 소원을 빌고 있는데, 용화사 관계자 분이 다가오셔서, 깨알 홍보를 하셨다.

전혀 몰랐던 사실인데, 홍라희 여사님이 기부하신 불상이란다. 


아. 삼성전자!! 그냥 지나가는 말로

"그럼 삼성전자 주식 많이 오르게 해주세요~" 혼자 쭝얼거리며 소원을 빌었는데.

옆에 계시던 관계자 분이 말씀하셨다.


"그런 소원 안빌어도 삼성전자는 잘 나가잖아요. 이미 잘 오르고 있는걸요. 하하하하"


그래 뭐 맞는말이기도 하다. 우리나라 시총 1위인 삼성전자. k 반도체로 엄청 잘나가지..

내가 지금 절에서 무슨 소원을 빌고 있는거지?

이 경건한 절에서 주식 얘기나 하고 있다니. 부처님께 왠지 혼지 날것 같았다.


"우리 큰딸은 부처님께 무슨 소원 빌었어?"

"응 나는 가리가 사람이 되어서 나랑 같이 살게 해달라고 빌었어"


가리는 친정에서 키우는 닥스훈트 검둥이 이름이다. 정말 물고 빨고, 발냄새를 맡으면서 고소한 과자냄새가 난다고 하며, 우리 큰딸이 분신처럼 사랑하는 반려견.


우리 큰딸이 올해 7세, 다 컸다고 생각했는데, 소원이 고작. 강아지가 사람이 되게 해달라니.. 웃음이 나기도 하고 난감하기도 했다.


"그런건 소원이 아니야. 강아지는 사람이 될 수가 없어"

"예를 들어~ 집값이 많이 오르게 해주세요" 뭐 이런게 소원이지.


나도 모르게 애한테 무슨 소리를 한걸까?..

그 말을 옆에서 유심히 듣고 있던, 아주머니가 한참을 웃으셨다. 너무 민망해서, 다른곳으로 자리를 옮겼다.


어느 순간 부터 내 소원은 전부 돈에 관련된 것이었다. 돈돈돈.......그놈의 돈돈돈


"우리 가족이 별탈 없이 건강하게 해주세요" 이런 소원을 빌어야 하는데...

"주식이 오르게 해주시고, 집값도 오르게 해주세요" 이런 소원을 빌고 있는 나를 반성한다. 신성한 절에서, 주식 집값 얘기라니... ㅜㅜ 나만 그런건가. 아니면 다른 사람들도 이런 소원을 빌까?


우리집은 절세권, 절이 코앞이니, 다음에 가서 제대로 된 소원을 빌고 와야 겠다.

"우리 가족이 무탈히, 건강하게, 하는일 모두 잘 되게 해주세요"

"아이들이 올바르고 이쁘게 크도록 해주세요"


이런 소원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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