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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지선 Sep 17. 2020

친한 친구랑 유럽여행갔다가 영원히 손절할 뻔 한 썰

<웰컴 투 삽질여행> 친구와 일주일 이상 여행하면 일어나는 일 

<웰컴 투 삽질여행>

친구와 일주일 이상 여행하면 일어나는 일


일러스트 안소정

“그래서요, 쌤? 어떻게 됐어요?”

“뭐, 맥도날드 가서 서로 소리 지르면서 햄버거나 던졌지.”

고등학생 때였다. 당시 20대 중반이었던 영어 선생님이 자신의 유럽여행 ‘썰’을 풀어주던 시간이었다. 아무리 친한 친구여도 여행을 가면 100% 싸우게 된다는 교훈을 던져주며. 선생님‘씩이나’ 되는 분께서도 친구랑 햄버거를 던지며 싸웠다는 일화는 나에게 꽤 충격으로 다가왔다.

‘유럽여행은 꼭 혼자 가야겠다.’

그날 얻은 교훈을 오래도록 마음에 품고 있었다. 하지만 인간은 망각의 동물. 그리고 몇 년 후, 내가 딱 그 나이 즈음이 되었고, 이곳은 유럽이었다.

“내가 계속 배고프다고 했잖아!”

“혼자 먹으라고. 난 안 먹는다고!”

교훈을 깨뜨린 자에게 우려하던 일이 발생했다. 평소 여행할 때 잘 맞는다고 생각했던 친구와 균열이 일어났다. 그것도 정말 어이없는 이유로.     


머나먼 일처럼 여겨지던 유럽 배낭여행의 기회가 드디어 나에게도 찾아왔다. 영어를 배우겠다는 핑계로 몰타에 3개월 정도 머물고, 2개월 정도는 유럽 곳곳을 여행할 요량이었다. 영국에서 시작해 동유럽까지 훑는 루트였다. 중간에 비자 문제가 꼬여 몰타에 다시 왔다 갔다 해야 했지만, 일단은 내가 원하는 최적의 루트를 짜놓았다.

“그럼 나도 겸사겸사 유럽 갈래. 스케줄 같이 맞춰 보자.”

평소에 쿵짝이 잘 맞는 친구로부터 연락이 왔다. 나도 매번 혼자 다니기엔 심심할 것이라 판단해 여행 중간에 합류하겠단 친구의 말을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평소에 말도 잘 통하고, 일본에서도 몇 번 함께 여행한 적이 있어 일정 일부를 함께하기로 했다.

“내가 프랑크푸르트까지 여행하고 다시 몰타에 들어갔다가 나와야 하거든? 일주일 뒤에 뮌헨 쪽으로 갈 테니까 뮌헨에서 합류할래?”

“그래. 그럼 나는 프랑크푸르트로 입국해서 혼자서 여행하다가 뮌헨으로 갈게.”

쿨한 결정이었다. 그는 혼자 여행하는 것보다 친구와 여행하는 편이 좋다고 했고, 흔쾌히 나의 발자취에 맞춰 여행하기로 했다. 몰타에서 뮌헨으로 가는 비행기는 조금 비싸서, 정확히 말하면 인근 소도시인 뉘른베르크에서 시작해 독일 남부와 오스트리아, 체코, 폴란드를 거쳐 헝가리의 부다페스트까지 2주 하고도 절반을 함께 여행하는 일정이었다. 

처음에는 다 좋았다.

“지금껏 혼자 여행했는데, 같이 다니니까 이야기도 할 수 있고 너무 좋다, 야! 사진이나 좀 찍어 줘. 혼자 여행하니까 사진 찍어줄 사람이 없더라고.”

잘 맞는 사람이랑 둘이서 여행을 다니는 것엔 큰 장점이 있다. 사진 찍어줄 사람이 있는 건 물론, 식사할 때도 메뉴를 여러 개를 맛볼 수 있다. 숙소 또한 저가 호스텔만 전전하지 않아도 되며, 가끔은 호스텔 가격으로 멀쩡한 숙소를 잡는 호사도 누릴 수 있다. 이동길이 심심하지 않은 것은 물론, 삽질해도 머리 두 개를 맞대면 해결도 한결 수월하다. 좋은 경치를 만났을 때 함께 호들갑 떨 수 있다는 것도 장점이다. 하지만 그렇지, 여행이 이렇게 쉬울 리가 없다. 24시간을 함께 한다는 것은 가족이어도 힘든데, 하물며 친구와 무난할 리가 없었다. 즐겁던 2인 여행은 어느새 서서히 균열이 가기 시작했다.



친구는 모든 스케줄을 대부분 나에게 맞춰주었다. 덕분에 내 취향을 한껏 살린 여행이 가능했다. 여행의 주도권이 나에게 있는 대신, 나는 모든 동선과 예약을 담당했다. 특별히 여유로운 여행 콘셉트를 잡지 않은 이상 촘촘히 짜인 스케줄을 선호하는 편이라, 내가 모든 스케줄을 담당하는 게 내게도 편했다. 대신 나는 식사 선택의 자유를 대부분 양보했다. 그럭저럭 합리적인 배려였다.

24시간을 누군가와 함께 보낸다는 것은 힘든 일이다. 더군다나 하드 스케줄의 여행이라면 체력이 비축될 마음의 여유가 없어진다고 해야 하나. 그러니까 누구든 쉽게 예민해질 수 있다는 얘기다. 여행을 시작하고 10일쯤이 지나 사건이 터졌다. 버스로 프라하에 막 도착한 차였다. 

“저기 버거킹에서 햄버거 하나 사 먹고 출발하자. 나 진짜 배고파.”

점심에 포식한 뒤 버스에 탔지만, 왠지 모르게 이날따라 배가 빨리 꺼졌다. 버스에서도 군것질거리를 판매하자 간식을 먹으려 했지만, 타이밍이 애매해 계속 참고 있었다. 버스에서 내리니 일단 배부터 채우고 싶다는 욕구가 간절했다.  

“일단 환전부터 하고.”

“내가 사줄 테니까 먼저 먹으면 안 돼? S한테 받은 돈이 있으니 사 줄게.”

S는 친구의 애인이었고, 나의 친구기도 했다. 이왕 간 여행에서 맛있는 거나 사 먹고 오라며 따지자면 내게 지원금이 들어온 것이다. 그냥 내가 사준다고 하면 친구가 미안해할 것 같아서 나의 배고픔을 어필할 겸 써먹은 멘트다. 그런데 갑자기 친구의 얼굴이 확 구겨졌다.

“그게 따지자면 네 돈도 아닌데 왜 네가 사주는 것처럼 말해?”

“뭐?”

여기서 핀트가 완전히 엇나갔다. 평소엔 잘 사주지도 않던 애(나)가 자기 애인한테 받은 돈으로 생색을 내니 갑자기 화가 치밀었나 보다. 그리고 내 입장에선 배고파 죽겠는데, 별 걸로 트집을 잡으니까 화가 난 것이다.

“아니, 내가 그 돈을 받고 싶어서 받았니? 갑자기 내 계좌에 꽂아준 걸 왜 나한테 그래?”

이렇게 언성을 높여 소리를 지른 적이 없었는데, 이날따라 예민해져 소리를 꽥 질러버렸다. 가뜩이나 커플 사이에 껴서 부탁받은 사람 입장도 난감한데, 밥까지 못 먹게 하니 퍽 서러워졌다. 사람이 본디 배가 고픈데 못 먹게 하면 성질이 더러워지는 법이다. 그냥 던진 말에 날카로운 대답이 날아 왔고, 거기다 한참 전부터 배가 고프다고 노래를 불렀는데 왜 나의 배고픔은 이렇게 무시된단 말인가.

“아, 일단 가자. 나 진짜 배고프단 말이야.”

친구는 어이없는 표정으로 말문을 잃은 채 나를 따라왔다.

“S랑 상관없이 내 돈으로 사줄게. 내가 배고파서 먹자고 하는 거니까. 뭐 먹을래?”

“난 안 먹을래. 너 혼자서 먹어.”

뭐지, 이건…. 함께 여행을 다니는 입장에서 그다지 배가 안 고프더라도 작은 구색이라도 맞춰줘야 하는 것이 아닌가. 이렇게 오기 싫은데 억지로 왔다는 티를 꼭 내야만 하는 것인가. 내 기분도 더욱 다운되었다.

햄버거를 먹는 동안 친구와 나는 단 한마디도 나누지 않았고, 환전하고 트램을 타고 숙소로 이동하는 긴 시간 동안 냉전이 이어졌다.

“다음 역에서 내려야 해.”

혹시나 친구가 잊어버리고 있을까 봐 말을 꺼냈다. 하지만 돌아온 반응은 냉담했다.

“아, 안다고.”

그는 매우 짜증 나고 귀찮다는 듯이 대답했다. 최소한의 호의를 박살 내버리는 반응에 나까지 화가 머리끝까지 치솟았다.

‘아니, 적어도 숙소 도착하기 전까지는 협조를 해줘야 하는 거 아니야? 한번 해보자 이거지? 이 여행에서 싸우면 누가 손해인지 모르는 거야? 난 애초에 혼자 여행을 다녀도 상관없는 사람이었다고!’

이렇게 나오면 나 또한 냉전에 동참할 수밖에 없었다. 나도 성질이 끝까지 뻗쳐 ‘에라, 모르겠다’ 식이 되었다. 대화를 거부하는데 뭘 어쩌겠는가. 예약해둔 에어비앤비에 도착하자마자 말없이 안방 침대부터 선점했다. 흥, 너는 소파에서 자든가 말든가.     


이날 저녁 이어진 냉전은 다음날 아침까지 이어졌다. 아침에 일어나서 아무렇지도 않게 재빨리 준비한 뒤 프라하 여행길에 나섰다. 물론 혼자 나섰다. 불편했던 장소에서 벗어나자 숨통이 훅 트였다. 가벼운 발걸음으로 프라하 산책을 시작했다. 여름의 열기가 후끈 달아올랐지만, 오랜만에 혼자 걷는 발걸음이 경쾌하기 그지없었다. 알게 모르게 나도 친구와 함께 다니며 신경을 많이 썼던 것이다. 혼자 걷는 발걸음은 내가 기본적으로 ‘혼행’을 즐기는 ‘아싸형 인간’임을 깨닫게 했다. 이왕 이렇게 된 거 내 방식대로 프라하를 즐기기로 했다. 이왕이면 친구와는 함께 하지 못할 나만의 여행 방식으로 실컷 걷고 늘어질 테다.



오랜만에 혼자 하는 여행은 (친구에게는 미안하지만) 경쾌했다. 숙소와 가까운 곳에 있는 비스트로에 들렀다. 딱 내가 좋아하는 ‘한낮의 오후’스러운 분위기였다. 채소가 잔뜩 들어간 수프를 하나 시키고, 역시나 채소를 곁들인 햄버그스테이크를 하나 시켰다. 그렇다. 친구는 기본적으로 채식과 거리가 먼 사람이었고, 어쩌다 보니 비교적 식성에 고집이 없는 내가 일주일 넘게 육류만 섭취하고 있었던 것이다. 아무리 먹을 것을 가리지 않는 나라도 채소가 그리울 수밖에 없었다. 좋아하는 카페라떼도 하나 시켰다. 되짚어보니 커피를 좋아하는 내가 함께 여행하는 동안 커피를 마실 일이 잘 없었다. 친구가 좋아하는 맥주는 거의 매일 밤 함께 마셨는데, 왜 내가 좋아하는 커피는 자제했던 거지? 기억을 가만히 곱씹어보니, 솔직히 괘씸했다. 함께 여행하는 동안 나한테도 대충 맞춰줄 수 있는 건데 왜 이렇게 심통이 난 거야?

식사를 마치고 한 시간여 동안 프라하를 산책했다. 8월의 햇살은 무척이나 뜨거웠지만, 내 몸뚱이 하나만의 체력을 배려해 걷는 것은 그다지 부담스러운 일이 아니었다. 올드타운 중심에 조금씩 가까워지자 스타벅스가 눈에 밟혔다. 에어컨 밑에서 커피나 오래도록 마시고 싶다! 스마트폰도 실컷 하면서, 밀린 사진도 인스타그램에 업데이트하고 싶어! 오직 나 혼자만의 의지로 행동한다는 것이 이렇게 짜릿한 일이었나. 스타벅스 한구석에 자리를 틀고 앉아 서너 시간은 틀어박혀 있었다. (한번 앉으면 엉덩이가 꽤 무거운 편이다.) ‘혼행’의 기쁨은 자유에 있다. 그래, 바로 이 맛이지. 아무 눈치 보지 않고 실컷 늘어질 수 있는 맛.     


한낮의 열기가 조금 가라앉을 즈음, 슬슬 다시 밖으로 나섰다. 프라하 올드타운 광장을 중심으로 한 바퀴 돌았다. 골목골목 구경해도 전혀 심심하지 않고 신이 났다. 내가 이렇게 혼자서 잘 노는 사람이라고! 그러고는 해가 슬슬 가라앉기 시작하자, 다시 궁둥이를 붙일 공간 탐색에 나섰다. ‘혼맥’이나 할까? 여긴 무려 프라하잖아.

시끌벅적한 중앙 광장을 벗어나 우연히 들어간 골목에서 한적한 펍 하나를 만났다. 이번에도 내가 좋아하는 분위기다. 적당히 조용하고, 적당히 신나는 음악을 틀어주며, 적당히 분위기 있는, 그 모든 ‘적당히’라는 애매한 부사를 수용하는 펍이었다. 체코의 대표 맥주인 필스너우르켈 생맥주를 주문했고, 저렴한 가격과 훌륭한 맛에 감탄하며 홀짝였다. 감히 이곳을 인생 술집 1위에 올렸다. ‘혼맥’이 이렇게 즐겁고 신나는 것이었나.     



점점 해가 지더니 밖이 어두워졌다.

‘아, 숙소에 돌아가기 싫다.’

다시 냉전 상태의 그곳으로 돌아간다고 생각하니 온몸이 불편해졌다.

‘어떡하지.’

고민하던 찰나 친구에게서 카톡이 도착했다.

“할 말 있는데 숙소에 언제쯤 도착해? 기다리고 있을게.”

음, 드디어 얘가 말할 기운이 났나 보다. 뭐가 되든 일단 대화는 해봐야겠지.

“나, 조금 있다 출발할 건데 걸어서 가면 숙소까지 한 시간 넘게 걸릴 거야.”

“알았어. 기다릴게.”

연락을 마치고 조금 더 여유를 부리다 밖으로 나섰다. 그 와중에 알차게 하루를 끝내고 싶다는 의지가 솟아 야경이 예쁜 카를교를 지나 숙소까지 걸어가기로 했다. 그리고 이내 후회했다. 야경은 정말 예뻤지만…. 숙소까지의 거리가 내가 예상한 거리보다 상당히 멀었다. 그리고 다리를 한번 건너니 분위기가 올드타운 중심부와 너무 달랐다. 무슨 뜻이냐면, 암흑의 세상이었다는 뜻이다.

‘하하하하하, 귀신이 나오는 거랑 사람이 나오는 거랑 뭐가 더 무서울까?’

아무리 생각해도 야밤에 동양인 여자 혼자 한 시간씩이나 걸을 거리가 아니었는데, 간이 배 밖으로 튀어나왔나 보다. 대로변 왼쪽엔 썰렁한 폐가가 종종 튀어나왔고, 오른편은 광활한 공원이 늘어져 있었다. 광활한 공원의 야밤이란, 그냥 보이는 모든 게 시커멓다는 뜻이다. 조금 울고 싶어졌다. 도중에 트램이라도 탈까 고민했었지만, 지하철역에서 미리 티켓을 사지 않는 바람에 내가 타면 완전히 무임승차였다. 도덕적 신념을 안고 포기했다.

‘전화라도 할까? 진짜 무서운데.’

몇몇 친구에게 전화했더니 아무도 받지 않았다. 싸웠던 친구의 얼굴이 아른거렸다. 아…. 하지만 아직 냉전이 끝나지 않았는데 어떻게 전화를 한단 말인가. 그저 공포 속의 발걸음을 재촉하며 걸어가는 수밖에 없었다.     



“늦게 왔네?”

“응. 이렇게 숙소까지 거리가 먼 줄 몰랐어.”

친구는 식탁 앞에 경건하게 앉아 있었고, 식탁에는 각종 음식과 와인이 차려져 있었다.

“일단, 미안하고. 순식간에 화가 났나 봐. 오전에 잠시 나갔는데 네가 없으니까 여행이 너무 재미가 없더라. 그래서 슈퍼마켓 가서 장 좀 봐와서 만들었어.”

“아… 그랬구나….”

뭔가 경건해졌다. 내가 온종일 혼자라서 좋다고 자유를 만끽할 동안, 친구는 내가 없어서 재미가 없었다니…. 뭔가 심히 못 할 짓을 한 것 같고….

“와인이랑 안주는 사과의 의미로 내가 사주는 거야.”

“그렇구나. 나도 미안…. 갑자기 소리 질러서.”

친구 먹은 지 6년 만에 식탁 앞에 앉아 진솔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여행에 있어 누구나 일행에게 조금씩 서운함이 쌓여 간다. ‘서운함’이 포인트다. 누군가가 갑자기 화를 낸다면, 그것이 ‘갑자기’를 의미하지 않을 확률이 높다. 나는 나대로, 친구는 친구대로 서운함이 조금씩 쌓여갔던 거다. 내 입장에선 내가 스케줄도 짜고 고생할 거 다 하고 식사 메뉴도 양보했는데, 왜 나는 밥 하나도 배고플 때 못 먹게 하냐는 불만이 튀어나온 거다. 그런데 친구 입장은 조금 달랐다.

“우선 네가 그렇게 식사를 배려하고 있는 줄은 몰랐네. 듣고 보니 그랬던 것 같아. 미안.”

배려랍시고 무조건 생색내지 않은 것이 좋은 게 아님을 배웠다. 어떤 배려는 이야기해주지 않으면 모른다. 내가 너를 충분히 신경 쓰고 있음을 상대방이 알게끔 해줘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나는 이만큼 해줬는데 너는 왜 그것도 안 해 줘?’ 같은 생각을 해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 내가 딱 그랬나 보다.

“그리고 내가 독일에서 케밥 먹고 싶다고 한 거 기억나? 그때 그건 배가 고프다는 신호였어.”

기억났다. 내 귀에는 그냥 지나가듯 하는 소리로 들렸는데 내가 그걸 무시하고 지나쳤다. 습관적으로 음식만 보면 ‘먹고 싶다’를 남발하는 내 식대로 해석을 했나 보다.

“네가 지난 숙소에서 혼자 수영장에서 놀다 왔잖아. 그때 나는 수영장 싫어한다고 얘기했었고. 그때 나는 할 일 없이 있었는데, 솔직히 버려진 기분이었어.”

“야, 그건 사정이 있었잖아.”

“그래도 그냥 그런 기분이 들었어. 유쾌하진 않더라고. 그래서 기분이 상해 있었나 봐.”

그냥 그랬던 거다. 사람과 사람이 24시간을 함께 있다 보면 별거 아닌 일로도 쉽게 서운해진다. 그리고 서서히 예민해진다.

“나도 버럭 소리부터 질러버려서 미안. 당황스럽긴 했겠다. 배고픔에 눈이 돌아갔나 봐.”

앞으로의 여행을 위해 규칙을 새로 세웠다. 아무리 친한 친구여도 24시간을 함께하는 여행이 만만치 않은 것임을 몸으로 배웠기에. 배가 고플 때는 배가 고픈 사람 의견에 맞추기, 원하는 게 있으면 정확하게 의사 표현하기, 갑자기 버럭 화부터 내지는 말기, 싸우더라도 죽이 되든 밥이 되든 대화 단절하진 않기. 누군가와 동행으로 더 풍요로운 여행을 만들기 위한 법칙이다.     


친구와 나는 서서히 서먹한 감정을 풀어나갔고, 남은 여행까지 무사히 마쳤다. 서로에 대해 더 잘 알게 되었고, 덕분에 더 친해질 수 있었다.

“나, 책에 네 얘기 써도 돼? 우리 그때 싸운 거.”

“응, 해도 되는데 그땐 내가 미안했다, 정말.”

친구는 아직도 그때 얘기가 나오면 반사적으로 사과부터 한다.

“너무 나쁘게 써주진 말고…. 기억하지? 내가 와인도 사주고 요리도 해주고 사과한 거. 흑흑.”

“킥킥, 나쁘게 안 썼어. 걱정하지 마.”

이 글이 친구의 마음에 들지는 모르겠다. 그렇게 썩… 나쁜 애 같아 보이게 쓰진 않은 것 같은데 괜찮겠지? 여러분, 이 친구 좋은 친구예요. 오해 마세요.





* 이 글은 <웰컴 투 삽질여행>에서 발췌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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