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사로운 햇빛이 내려쬐는 2017년 5월의 어느 날, 드디어 고대하던 첫 비행을 하게 되었다. 필자가 다녔던 학교는 입과 후에도 지상학술 교육을 필수로 들어야 했다. 물론 다른 학교들도 마찬가지이고 항공운항학과 학생들은 학과 수업을 듣고 비행을 하지만 말이다. 필자의 학교에선 PPL, IR, CPL, MEL의 지상학술이 있었는데 각 과정에 따라 기간 또한 상이했다. 지금 기억으로는 입과 후에 Private Pilot License과정의 지상학술을 약 2달간 진행한 후 표준화 과정 일주일을 따로 들었던 것 같다. 이 지상학술 과정에서는 항공기상, 운항절차, 비행이론 등등 학과 시험에 대한 전반적인 지식들을 여러 명의 교수님들이 맡아서 강의를 해주신다. 비행을 처음 시작하는 학생이라면 이 과정을 무조건 집중해서 잘 듣길 바란다. 이 과정에서 배우는 지식들은 IR과 MEL 과정을 제외하곤 다른 과정들과 어느 정도 궤를 같이하기 때문에 기초부터 탄탄하게 다져놓는 편이 좋다.
어찌 됐든 정말 고등학교와 같은 지상학술을 다 마치고 나면 드디어 첫 실습비행이 나온다. 이 실습비행은 담당 교관님과 같이 진행하게 되는데 교관님의 성향에 따라 다르지만, 첫 비행부터 기동과 지식들에 대한 많은 요구를 하시는 교관님들이 계신가 하면, 첫 비행이니까 비행이란 어떤 것인지 느끼게 도와주시는 천사 같은 교관님들도 계신다! 다행히 필자의 교관님은 후자 셨기에 어느 정도 부담은 있었지만 흔히 말하는 힘든 교관님 학생들에 비해서 상대적으로 부담이 덜했던 것 같다. 필자의 담당 교관님은 흔히 말하는 천사 교관님이셨고, 실제로 비행을 해보니 정말 못했을 때 빼고는 정말 침착하게 피드백을 해주셨기에 아직도 기억에 많이 남는 분이다. 하지만 그래도 처녀비행 전날, 스케줄이 나왔을 때의 그 긴장과 부담은 아직도 잊지 못한다.
필자가 기억하기에 비행은 꽤나 늦은 시간이었다. 초저녁인 5시, 5시 반 즈음으로 기억하고 있다. 따라서 학생들은 비행을 준비하기 위해 일반적으로 디파쳐 시간의 1시간 30분 전에 나와서 비행을 준비한다. 비행을 준비한다는 것은, 비행계획서를 온라인으로 제출하고, 승인받은 비행계획서를 토대로 담당 교관님과 날씨, 공역, 항로 등 비행의 전반적인 부분에 대해 서로 토의하고 의논하는 Pre Flight Briefing 시간을 갖는 것을 말한다. 물론 첫 비행은 대부분의 학생들이 1시간 30분 전보다 먼저 나가서 기동을 머릿속으로 이미지 트레이닝을 하고 다시 한번 비행에 필요한 기초 지식들을 리뷰하는 경우가 많다.
자 이제 시간이 거의 다 됐으니 비행계획서를 제출해야 한다! 필자의 학교에선 비행계획서는 디파쳐 시간 1시간 전까지 제출하도록 되어있었다. 즉 내 항공기의 디파쳐 시간이 17시라면 15시 59분까지는 제출해야 하는 것이다. 이 비행계획서에는 비행에 필요한 많은 정보들이 들어가 있다. 항공기의 콜사인, 등록기호, 희망 고도, 목적지, 출발 및 도착 시간 등등 내 비행에 관한 거의 모든 것들이 이 한 장에 들어가 있다. 따라서 이를 제출함으로 인해 비행을 허가받고, 관제사 역시 내 항공기의 비행 목적, 목적지, 고도 등을 손쉽게 파악하여 더욱 원활한 관제를 이끌어낼 수 있다. 자 그럼 이제 비행계획서를 제출하였고, 담당 교관님과의 브리핑을 다 끝냈다! 그렇다면 직접 램프로 나가서 항공기를 점검해야 한다. 이는 직접 항공기를 만져보고 체크하며 내 항공기가 비행에 적합한 상태라는 것을 확인하는데, 처음엔 대부분 교관님들이 도와주시지만, 학생조종사 스스로가 먼저 직접 해보는 편이 좋다. 어차피 해당 항공기를 훈련 기간 동안 타야 하기 때문에, 미리미리 어떠한 점을 신경 써서 봐야 하는지 알아 놓으면 좋기 때문이다.
이제 모든 점검 과정들이 끝났다. 그러면 이제 항공기의 시동을 걸고 적법한 관제 절차에 따라 활주로로 이동해야 한다. 항공기는 자동차와 다르게 시동을 걸고 활주를 하는 모든 절차가 정해져 있다. Checklist라고 하는 설명서에 나와있는 순서대로 모든 장치를 조작하여 시동을 걸어야 하는데 이 체크리스트를 외우는 것도 처음엔 정말 머리가 많이 아프다. 시동을 걸고, Taxi를 하고 Run up이라는 퍼포먼스 확인 절차 등등 여러 과정들이 있는데 이 절차들에 대한 각각의 체크리스트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심지어 항공기는 시동을 걸기 전에 관제사에게 연락을 하여 허가를 받아야 하는데, 너무 긴장했던 탓인지 그 Call을 절었던 기억도 난다. 지금이야 아무렇지 않게 기계적으로 관제사와 통신을 하지만, 그때는 왜 그렇게 떨렸는지 모르겠고 정말 민망한 기억 중 하나이다. 훈련이 끝나고 그 당시 담당 교관님과 소주 한잔씩 할 때면, 아직도 회자되는 단골 술안주이기도 하다.
자 이제 모든 절차들을 힘겹게 마치고 활주로에 정대했다. 활주로에 정대하고 나면 관제사가 이륙 허가를 내줄 때까지 기다려야 하는데, 당시에도 정말 긴장을 했던 기억이 있다. 그러다 관제사가 ㅇㅇㅇㅇ, Runway 35, Wind calm, Cleared for take off라고 첫 허가를 내줬던 것이 기억난다. 관제사의 지시를 Read back 해주고 교관님께 다시 말해준 후, 파워를 넣고 이륙을 하던 때가 떠오른다. 참 대부분의 조종훈련생들은 처음 훈련을 받을 때 프로펠러 항공기로 훈련을 받게 된다. 이 프로펠러 항공기는 추력을 넣었을 때, Left Turning Tendency라는 것이 존재하는 데 이를 상쇄하기 위해서 오른쪽 방향타를 적당히 밟아서 활주로의 센터라인을 유지하는 것이 이륙을 하는데 있어 관건이다. 이러한 이유로 오른쪽 방향타를 밟아줘야 한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너무 과하게 밟았는지 항공기가 휘청휘청했던 기억이 있다. 하지만 왜 교관 조종사가 함께 동승을 하겠는가, 교관님은 전혀 당황하지 않으시고 어허~ 이러면 안 돼~ 하시면서 방향 컨트롤을 해주셨던걸 보며, 정말 짬바가 왜 중요한지도 알 수 있었다. 자 이제 항공기는 이륙을 위한 속도를 충분히 얻었다! 그러면 이제 조종간을 앞으로 당겨 항공기를 부양시키면 된다. 교관님께 “천천히 당겨봐”라는 말씀을 듣고 서서히 조종간을 앞으로 당겼더니 항공기가 천천히 지축을 박차고 날아오르는데, 그 기분은 몇 년이 지난 지금도 뇌리에 선명히 박혀있다. 십수 년간 원해왔던 꿈을 내 손으로 이루는 순간, 그 순간은 어떤 누구도 평생 잊지 못할 추억일 것이다.
이렇게 항공기를 이륙시킨 후, 필자의 학교에서 사용하던 공역은 공항의 동쪽에 있었기에 관제사에게 훈련공역으로 나가겠다는 허가를 받고 항공기 기수를 돌렸다. 그러자 초저녁 시간 바다에 펼쳐지는 석양은 정말 말로 다 표현하지 못할 정도로 아름다웠다. 끝없이 펼쳐진 바다가 황금빛으로 물드는 것을 보며, 하늘을 날 수 있는 사람이 가질 수 있는 특권이라 생각했으며, 당시엔 정말 행복했었다. (앞으로 어떤 고난이 닥칠지 모르고 말이다.) 그렇게 지정된 고도까지 올라가고 나니, 교관님께서 한번 주변을 둘러보고 사진도 찍고 싶으면 찍으라 하셔서 그때 조종간을 놓고 찍은 사진은 아직도 힘들 때마다 한 번씩 보게 되는 소중한 추억이다. 그 후 훈련 교범에 지정되어 있는 기동들을 연습하는데, 처음 하는 VFR (Visual Flight Rule, 시계비행)에서는 각 기동을 할 때마다 시각 참조 물을 설정하고 기동을 하게 된다. 계기판을 보고 비행을 하는 것이 아닌, 밖을 보면서 항공기의 자세와 고도를 맞추는 연습을 해야 하기 때문에 하늘에 떠 있는 구름, 지상에 있는 참조 물들을 보고 비행을 하게 된다. 그 와중 스팁 턴이라는 기동을 연습하기 위해 교관님께 “저 앞에 보이는 섬을 레퍼런스로 잡고 돌겠습니다.”라고 말하니 “아~ 울릉도?”라고 말씀을 하시기에 우리가 살면서 한 번도 보기 힘든 울릉도를 하늘에서 볼 수 있다는 뭔가 말할 수 없는 쾌감을 느낀 적도 있었다.
이제 할당된 모든 비행시간이 끝나가기에, 훈련공역에서 다시 기수를 돌려 정해진 입항절차를 따라 공항으로 돌아오고 있었다. 일반적으로 필자가 졸업한 학교는 남쪽 공역을 사용하지만, 그 날은 이상하게 북쪽 공역을 사용하기로 되어있었다. 남쪽 공역은 바다와 해안가를 따라 입항을 하는 절차이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난기류가 덜하다. 하지만 북쪽 공역의 입항절차는 산등성이를 따라 들어오게 되어있기 때문에, 더욱 신경을 많이 써야 하고 난기류가 남쪽 공역에 비해 상대적으로 심하다. 물론 지금은 비행시간이 꽤나 많기 때문에 정말 심한 난기류가 아니면 멀미를 잘하지 않지만, 당시에는 비행이 처음이었기에 난기류에 상당히 멀미를 심하게 하며 고생을 했던 기억이 있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밤이 되어 저 멀리 빛나는 활주로와 시내를 본 기억은 너무나 아름다웠던 기억으로 남아 있다. 물론 힘들었던 훈련 비행이지만, 이러한 것들은 사업용 조종사가 된 지금도 가끔 마음의 위안을 주는 아주 소중한 존재들이다.
난기류와 엎치락뒤치락 싸우면서 결국 공항의 관제권 안에 들어오자, 관제사에게 우리의 의도를 전한다. 이 경우 보통 Inbound for Full stop이라는 말을 하게 된다. Full stop이라는 말은 해당 공항에 완전 착륙을 하겠다는 의미이다. 다른 용어로는 Inbound for touch and go라는 표현이 있는데 이 표현은 완전 착륙이 아닌, 활주로에 내린 후 다시 이륙하겠다는 것을 의미하며, 이는 착륙 훈련 시에 많이 사용하곤 한다. 자 어찌 됐든 우리의 의도를 전달하자 관제사는 Cleared to Land라는 지시를 내린다. 이는 착륙 허가를 의미하는데 이 관제를 듣고 나서, 난기류에 더 이상 멀미를 하지 않아도 된다는 안도감과, 나의 첫 비행이 이렇게 끝났다는 아쉬움이 공존하였다. 활주로가 눈앞으로 다가왔을 때, 살짝 무섭기도 했지만 역시 교관님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정말 부드럽게 착륙을 하셨다. 착륙 후 지상 활주를 통해 계류장으로 들어와서 시동을 끄고 나니, “내가 정말 비행이라는 것을 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준비한 대로 완벽하게 하진 못하였지만 어찌 첫 술에 배가 부를 수 있으랴! 다행히 교관님도 크게 뭐라 하지 않으시고, 비행을 할 때 적당한 긴장은 좋지만 너무 과한 긴장은 좋지 않다면서 위로의 말씀을 건네주셨다. 아쉽다면 아쉬웠지만 또 뿌듯함과 설렘을 느낄 수 있었던 나의 첫 비행은 이렇게 끝이 났다.
모든 사람들에게 있어서 처음이란 상당히 소중한 순간이다. 그래서 우리가 첫사랑, 첫 키스와 같은 용어들을 사랑하며 지난 과거에 대한 추억을 회상하고 그리워하는 것이 아닐까. 물론 처음부터 모든 것에 능숙하고 익숙한 사람은 없다. 다들 이렇게 한 걸음씩 배워나가며, 어떠한 분야이든 점점 성장해 나가는 것이 아닐까. 그렇게 보면 이 비행이란 행위는 참 사람 사는 점과 비슷한 요소가 많은 것 같다. 처음에 설레지만 점점 무뎌져 가며, 후에 어떠한 계기로 또다시 처음의 설렘을 찾을 수도 있는 과정인 것 같다. 또한 처음엔 잘 안되지만 나중엔 모든 행동들이 기계적으로, 반사적으로 나오며 익숙해지고, 점점 거기에 더 빠져들어가는 것은 어찌 보면 사람이 사랑을 하는 과정과 많이 닮아있는 것 같다. 굳이 따지고 보면 준비를 많이 하고 노력을 많이 해야 할 수 있다는 점도 비슷한 것 같기도 하다. 롤랑 바르트라는 기호학자의 책인 “사랑의 단상”에 방랑하는 화란인이라는 부분이 있다. 방랑하는 화란인은 바그너의 오페라에서 나온 개념인데 쉽게 얘기하자면, 우리는 어느 한 곳에 정박하지 못하고 이곳저곳을 떠돌아다니며 영원한 사랑을 갈구하는 사람들을 의미한다. 비행도 어느 정도 궤를 같이 하는 것 같다. 우리는 더 좋은 비행, 더 안전한 비행을 위해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더 많은 지식과 기술을 연마한다. 너무 억지스러운 것 같긴 하지만 그래도 한 번만 봐주시길 바란다!
어찌 됐든 오늘은 경험담으로 한번 작성을 해보았다. 사실 시간이 오래되어 디테일 한 부분들까지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그래도 꽤 시간이 흘렀는데도 많은 기억이 나는 것을 보니 그만큼 강렬하고 인상 깊었던 순간이 아닐까 생각한다. 자 그럼 모두들 비행에 성공하는만큼 여러분이 원하는 사랑, 일, 학업 등 모든 면을 이루는 하루가 되시길 바라며 안비 즐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