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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한길 Dec 29. 2018

진정된 심적 여유

잘 사는 것에 대한 지혜로운 시각

 저희 모두는 '잘 사는 것'에 관심이 많습니다. 그러나 이의 방법론에 대해서 또는 진정한 의미에 대해서는 깊이 고찰하는 경우가 생각보다 드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잘 산다'는 것을 '부자'라는 단어로 인지하고 있습니다. 이는 일부분은 맞지만 전체는 아닙니다.


경제적 여유의 부재 때문에 잘 살지 못하는 사람은 있지만, 경제적 여유가 있다고 해서 모두가 잘 사는 것은 아니죠. 간접적 경험으로서는 뉴스만 보아도 기업간의 전쟁, 또는 부호들간의 대립이 눈에 띄기 마련입니다. 저는 이러한 대립적 상황들의 시작점이 쌍방향적인 심적 여유에서 비롯되었다고 봅니다.


즉, 심적 여유가 빈곤하면 개인의 정신이 혼미해지게 되며, 이러한 모습이 쌍방향적인 면모를 보이면 대립이 발현되는 것이죠. 그렇다면 이러한 대립점들을 최소화 시키는 방향의 시각들을 소개해보도록 하겠습니다.



비교의식의 폐해


 많은 사람들이 무의식적으로 비교를 당연시 여기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어쩌면 저 또한 스스로 인지하지 못하는 비교의식들을 자연스레 진행하고 있지 않나 다시 생각해봅니다.


'저 친구는 나보다 돈이 많네 부럽다.'

'얘는 왜 이렇게 운동을 잘해! 배아프게..'


 사실, 이러한 비교의식들을 새로운 능력을 개발하는 동기요인으로 삼아 새로운 발자취를 이어가는 긍정적인 효과로 활용하는 경우도 존재합니다. 그러나 이는 극히 소수에 불과하며, 다수는 이러한 비교의식들을 한 개인에게 지속함으로서 자격지심에 빠지기도 합니다.


 개인의 능력이나 정서는 후천적 노력을 통해서 충분히 변화시킬 수 있습니다. '박지성'은 남들에 비해 신체적 요건이 부족한 평발임에도 불구하고 유명한 축구선수로 거듭났고, 알리바바의 창립자 '마윈 (Jack Ma)'은 열악한 초기적 주변 환경에도 불구하고 끈질긴 노력 끝에 세계적인 기업가로 성장했습니다. 어쩌면 '운이 좋았다.'라고 표현할 수도 있지만, 사실 '운'이라는 기회도 노력과 준비가 없다면 다가오지 않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비관적인 관념으로 개인의 편견을 표하기도 하는데, 이는 자신 스스로의 열악한 상황을 편히 대변하기 위한 하나의 핑계에 불과합니다. 이러한 모습은 각자의 비교의식에서 긍정적인 과정이나 결과로 이끌어내는 데에 한계를 제공합니다.


비교의식은 '어제의 나 자신'과 '오늘의 나 자신'에게 대입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한 방향이라고 생각됩니다. 타인과 비교하며 스스로에게 쫒기는 삶을 살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하지만 외면하는 모습 보다, 변화된 오늘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며 스스로에게 보상하는 삶을 살아가는 것이 정서적으로도 안전하기도 하며, 또 주변인들에게도 더 큰 동기부여를 심어주기도 합니다.


누군가는 너무 자신에게 투자만 하기도 하고, 어느 누군가는 그 모습이 자신의 모습이 되기를 원치 않아 타인에게만 투자를 하고 정작 자신에게는 투자하지 않기도 합니다. 너무 이기적인 모습은 주변인들을 지치게 하지만, 너무 헌신적인 모습은 스스로를 지치게 하기 마련입니다. 타인에게도 적당히, 스스로에게도 적당히 보상해주세요.


어떠한 보상이든 값이 중요한게 아닙니다. 누구에게든 진심이 담겨진다면 그것으로도 충분하죠. 이를 습관화 한다면 자연스럽게 피해적인 비교의식에서 벗어나있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그릇의 품격


 사람마다 사람을 품을 수 있는 그릇의 넓이에 관련된 자신만의 자아를 보유하고 있습니다. 이는 '인격'이란 단어와 밀접한 관계를 지니고 있습니다. 인격이 필히 요구되는 리더라는 자리는 그 사람의 품격을 대폭 공개하지만, 그 외의 자리라고 해서 인격이나 품격이 불필요하지는 않습니다. 언제나 조화가 중요합니다.


아무리 지도자의 자리를 누군가에 의해 또는 개인의 노력과 상황에 따라 부여받게 될지라도, 그 리더의 그릇이 넓지 못하다면 오래 지속되기 힘들 수 있습니다.


리더의 인격적 여유가 부재한다면 그룹에 포함된 그룹원들 사이의 대립 또한 강화되어 지도자의 앞길에 큰 구덩이를 만들어 놓기도 합니다. 그룹원들 입장에서 좋은 지도자에 대한 기대치와 현 리더에 대한 평가가 어쩌면 지도자 자격권에 대한 정확한 점수일 수도 있고, 자아성찰 하는데에 좋은 동기요인으로 자리잡히게 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리더들은 이를 간과하며 비판자들의 시야에만 문제점을 제시하기도 합니다. 사실 그룹원들의 비판적인 시선들 또한 개개인의 그릇 문제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리더 입장에서 중요한 것은 자리나 위치에 대한 자격권과 존중권은 타인보단 스스로가 만들어야 주변의 지지도가 높아지기 마련이라는 사실입니다.


 자신만의 자아적인 품격을 지키기 위해선 '참을 忍'자에 인색하기 보다 자연스러워지는 것이 훨씬 현명합니다. 가끔 참는 것을 '소심하다.'라고 오인하여 표현하는 사람들이 부쩍 늘은 것 같습니다. 그러나 참는 것이야 말로 진정한 '대범함'임에는 변화가 없죠. 나이가 들면 들수록 참는 능력을 기르는 것이 얼마나 중요하며, 참아왔던 자신의 그릇들을 남에게 보일 때에 그 모습이 얼마나 큰 영감을 실어다 주는지 점점 깨닫게 되는 것 같습니다.


참고 인내함을 얕보아 공격하는 사람들에게 복수하는 행위를 생각하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그러나 복수하는 행위는 어찌보면 지금까지 인내했던 그릇들을 포기하는 모습을 인정하는 것과 같아 보입니다. 어차피 하나님께서는 스스로가 벌하려 들지 않고 용서하면, 그 문제의 제공자 스스로가 갚아가도록 언젠가 벌을 내리십니다. 이를 인정하면 조금 더 마음의 여유가 생기며, 그릇의 넓이와 품격 또한 성장하게 될 것입니다.



실패의 축복


저희 모두의 소망은 바라는 것을 노력할 때에 한번에 이뤄지는 것일거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 어느것도 생각의 차이를 두거나 패턴의 변화를 준다고 해서 한번에 변화가 이루어지는 것은 없습니다. 큰 성공을 향한 여러 여정이나 과정들이 언제나 작은 성공들로만 이루어져있다라고 장담할 수 없습니다. 안타깝지만 실패는 성공을 위한 불가피한 과정이나 계단 또는 계기입니다.


그러나 실패는 좋은 동기요인이기도 하며 많은 가르침들을 내포하여 선물로 주기도 합니다. 뿐만아니라 많은 실패를 경험한 사람들은 운동을 하면 굳은 살이 베기 듯, 삶의 굳은살이 베겨 다른 실패가 다가와도 쉽게 이겨낼 수 있는 근성을 얻게 됩니다. 성공만을 경험한 사람은 추후에 작은 실패에 충돌하여 버텨내는 능력을 상실하고 한번에 무너지기 마련입니다.


제 외삼촌 이야기입니다. 늘 교우관계도 좋고, 인기도 많았던 학창시절의 그는 서울대에도 한번에 수석으로 입학을 하였었습니다. 서울대에서 서양화과 석사학위까지 마친 그는 자신만의 확고한 철학들을 고집으로 자리잡고 있었습니다. 자신의 말은 무조건 맞고, 타인의 말은 틀렸다는 식의 사고방식이 생긴 것이죠. 때문에 사회의 첫 관문에서 특정 그룹에 의해 문제점을 제기당하여 제명을 당하였습니다. 이가 인생에서 첫 번째의 큰 충격점으로 다가왔던 그는 세상의 모든 시각에 대해 부정적으로 표현하기 시작했고, 모든 면에서 악순환은 반복되고 있었습니다.


실로 많은 사람들이 성공만을 경험한 사람들을 부러워하곤 합니다. 그러나 무엇이든지 꼭 장점만 있는 것은 아니죠. 이처럼 인생에서는 언젠가는 경험하게 될 몇번의 실패가 꼭 존재합니다. 내가 인생에서 큰 책임을 떠맡고 있지 않을 때에 미리 실패를 경험한다면 감사하게 생각해야 할 수도 있습니다.


실패를 경험하여 자아의식을 흐리지만 않는다면 더욱 성숙해지는 계기를 마련하게 됩니다.

'죽이지 못하면, 더 강하게 성장시킬 뿐이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는 心身 모두를 통틀어 이르는 말이죠.


'스티브 잡스', '마윈' 등... 세상에 이름을 떨친 사람들은 일반인 보다 많은 실패를 경험했다고 합니다. 실패가 많아지면 방법을 찾게 되고, 실패가 더 많아지면 방향을 찾게 됩니다. 실패는 곧 인생의 지도역할을 해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것 같습니다.


많은 도전을 통해 많은 실패를 경험하신 분들에게 이 말을 남겨드리고 싶습니다.

'우리는 아무 일 없던 사람보다 강합니다.' 이 사실을 진정으로 인지하신다면 도전하기를 두려워하는 모습보단 새로운 마음의 쉼터를 찾게 될 것이라 생각됩니다.



안정된 목적성


모든 사람은 어떠한 일을 성사시키기 위해선 목적을 생각해 둡니다.


"이 일을 성사시키면 난 어마어마한 돈을 얻겠지."

"이것만 잘되면 아버지께서 나를 인정해주시겠지."


목적을 두는 행위는 일을 성사시키는 데에 큰 동기요인이 됩니다. 자신이 세워둔 목적 때문에 일을 진행하는 도중에 문제점이 봉차착하여도 이겨나갈 수 있는 힘을 제공합니다. 그러나 중요한 점은 돈은 목적이 되어선 안된다는 점 입니다. 돈이 목적이 되는 순간 인간은 점점 피폐해지기 마련입니다.


제가 아시는 억만장자분의 이야기입니다. 저는 종종 그 분의 곁에서 배움을 추구했던 시절이 있었고, 종종 소식을 듣곤 합니다. 그는 점진적으로 비즈니스를 크게 이끌어 가고 있었습니다. 그의 목표는 주변인들의 삶에 선한 영향력을 발휘하는 것 이었습니다. 그 모습에 당시 많은 사람들이 그를 따랐고, 팀원들은 어떠한 험한 상황에 봉착하더라도 그를 지지하였습니다. 어느 날 그에게 막대한 금액의 제안이 들어왔고, 이는 팀원들에게 매우 불리한 조건을 안겨주는 프로젝트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느 순간 목적성을 잃은 그는 이를 팀원들 몰래 비밀리 진행하기로 합니다. 후에 팀원들을 이러한 사실을 알게 되었고, 위험을 느낀 그는 자신의 신임을 위해 모 기업을 배척하는 모습을 취하듯 연기하였고, 그 소식을 전해들은 모 기업은 프로젝트 진행을 취소하기로 하였습니다. 그는 팀원들의 신뢰와 모기업의 신임 모두를 잃은 채로 모습을 숨겼었습니다.


돈은 과정이 되어야 하며, 목적이 되면 불화가 찾아옵니다. 목적은 가능하면 '동사형'이 되면 좋은 것 같습니다.

어떠한 행동을 하기 위한 목적이 만들어진다면 돈이나 어떠한 물체에 목적을 두어 자신의 사리사욕을 채우진 않게 되기 때문입니다. 돈은 무언가를 위해 존재하기 때문에 돈이 존재하는 목적성 또한 취해줘야 합니다.


돈에게 지배받기 보단 지배하세요. 그 방면이 인생을 살아갈 때에 큰 여유를 제공해줄 것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경청하는 자세 


보통은 듣기보다 말하는 것을 더 좋아합니다. 하지만 여유가 있는 사람들은 상대방에게 맞춰주기 위해 더 많이 듣습니다. 이는 그냥 듣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이 말학자 하는 것을 파악하기 위해 신경을 스고, 상대방이 원하는 질문의 답을 제공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입니다.


혹시 주변에 정말 각광받는 지도자, 리더, 사업가나 인기가 정말 많으신 분이 계신다면 그 분들의 대화방식을 자세히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아마 당신이 무언가를 말하려고 한다면 듣기 위해 노력할 것이고, 최대한 당신이 듣고자 하는 답을 제시하기 위해서 노력할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그들이 주변인들을 자신의 편으로 만드는 지혜인 것 입니다.


사실 경청한다는 것은 생각보다 정말 어렵습니다. 많은 대화가 존재해야 많은 사람들이 말하는 말에서 진정으로 뜻하는 바를 깨닫게 되고, 대화에서의 자유함을 깨달아야만 실질적인 경청을 진행할 수 있습니다.


즉, 상대방의 신임을 얻기 위해서는 상대방이 말하고자 하는 의미에 초점을 맞추어 내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줄여야 하며, 내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줄이기 위해서는 나 자신을 내려놓는 여유를 가져야 합니다.


사람들은 자신을 내려놓는 여유를 가진 사람들을 '자존감 적은 사람' 또는 '자랑할 것이 부재한 사람'으로 치부하곤 하지만, 실질적으로는 '자존감이 풍부한 사람'입니다. 자신의 자존감이 매우 풍족하여 굳이 말이나 행동으로 표현할 필요가 적을 뿐이죠.


 돈 많은 사람들은 자신이 정말 돈 많다고 자랑하지 않습니다. 마찬가지로 정말 높은 사람들은 자신을 내세우려고 노력하지 않습니다. 이미 충분히 높기 때문이죠.


당신이 현재로서 진정 높은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자신을 열심히 알려야 하는 의무심으로 삶을 살아간다고 표현한다면, 이 방면으로도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큰 사람이 되고 싶으면, 이미 큰 사람이 된 듯 행동해라'라는 말이 있듯이, 당신도 충분히 그럴 수 있습니다. 조금 더 여유로운 자세로 상대방을 대하고 경청해주면 수준있는 사람들은 함께하길 원하게 됩니다.


그렇게 수준 있는 사람들의 모임을 작은 경청이란 실천함을 통해 참여하시면 언젠가 긍정적인 변화가 찾아올 것이라 확신합니다.



비판적 물결의 함정


 비판하는 자세와 시각이 지도자의 능력이라고 인지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비관적인 시각은 정보를 분할하거나 분석할 때에는 분명 긍정적인 역할을 담당합니다.


하지만, 지도자뿐만이 아닌 개개인들이 타인의 인격이나 능력을 판단하는 잣대로서 비판을 활용하고 있다면, 이는 사회의 문화를 이끌어 가는데에 단기적으로만 효력을 발휘할 뿐, 장기적인 효력을 발현시키기에는 어려움이 있습니다.


군대에서의 후임이나, 사회에서의 후배나, 사업에서의 파트너들을 대하는 자세로 비판적인 훈계는 직설적인 시각으로서 당장의 근무과제를 해결하는 데에서만 단기적인 효력을 발생시킵니다. 하지만 장기적인 효력을 위해서는 강한 훈계보다는 '명분'과 나무보다 숲을 인지하게 하는 '큰 시야'에 초점을 맞추는 가르침이 필요합니다.


이것이 기업적인 방면으로 바라보면, 그룹 문화의 유연성과 깊은 연관이 있음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시대의 변화에 따른 흐름을 잡아가기 위한 문화적 혁명으로 해외의 기업들이 새로이 추구해나가는 기업의 유연성은 '단순화 (Simplify)'를 대두합니다. 이는 Facebook, Amazon과 같은 세계적인 대기업들이 추구하는 문화혁명이며, 한국에서도 삼성, LG와 같은 대기업들과 신생 강소기업들이 신중히 벤치마킹을 주도하는 문화 중 하나로 자리잡혀 있습니다.


 이러한 단순화 혁명을 이룩하기 위해서는, 기업의 유연성을 강화시키고, 권위와 자유도를 적절히 조절해야 합니다. 즉, 기업내의 조직원들의 비판하는 문화를 최소화 시키고, 심리적 여유를 통해 개개인의 아이디어를 구축할 기회를 마련하는 방안을 고려하는 것이죠.


현 시대는 기업적인 방면뿐만이 아니라 타인을 비판하는 문화보다는 되도록 많은 사회구성원들이 심리적 유연성이 필히 요구되는 추세입니다. 유연성을 도모하기 위한 많은 개개인의 노력이 양성되면 사회의 다방면적 측면에서도 큰 기여를 담당할 것이라 기대합니다.





 혹시 주변을 둘러다 볼 때에 '저 분은 신중하시기도 하고, 일도 잘하시는데, 여유도 있으셔서 인상도 좋으신 것 같다 생각된다. 참 닮고 싶은 분이다.' 라고 생각드시는 분이 계시는지 궁금합니다.


그러한 분들은 보통 삶에서 배운 철학들을 긍정적인 방면으로 고찰하시고, 인생의 연륜으로 지혜를 터득하셨을 경우가 많습니다. 그들 중에는 인간관계와 사업능력이 투철하신 분들이 많습니다.


 어르신 분들께서 흔히 거론하시는 '물에서 물 흐르듯한 지혜력'이 그들의 진정된 심적 여유를 표명합니다. 저는 여기서 배움을 추구할 때에 새로운 시각이 도출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위의 주제들을 숙지하여 심적 여유를 추구하는 모습은 한명, 두명만으로는 부족하다 생각합니다.


 사랑도 비즈니스도 관계도 쌍방향이 아름답습니다. 이처럼 긍정적인 정서적 철학을 함께 공유함으로서 모두가 추구하는 종착점으로 지정될 때에 진정한 공정사회가 조금씩 이루어지지 않을까 생각해보며 이 글을 마쳐봅니다.


읽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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