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험에서 발견하는 원초적인 존경심의 시작점
제가 해군 병사로서 복무 중에 몸소 경험하면서 터득한 '인간의 원초적인 존경심'의 시작점과 그를 충족시키기 위해 필요한 리더십의 공정성과 품위에 대해 작성해보고자 합니다. 군대를 경험한 많은 분들께서는 불필요한 시스템의 복잡성과 난해성 또는 비유연성 때문에 업무의 실질적인 진행과정 중에 많은 문제점이 발견되는 것을 절실히 경험하셨을 것이라 생각됩니다. 저 또한 군대에서 업무 진행 과정 중에 불필요한 절차들 때문에 '이러한 절차가 과연 필요한 것인가?'라는 생각을 수없이 되뇌어 질문해온 과정들이 존재했습니다. 하지만 군대의 보안을 지키기 위한 철저한 시스템들이 보유한 장점들도 존재하기 마련이죠.
요즘과 같은 4차 산업혁명 시대에서는 '조직의 유연성과 단순화'가 필히 요구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 전에 기존의 철저한 시스템을 연마한 뒤에 '유연성과 단순화'를 구축해 나가야 신속한 업무에 합당되는, 또는 '공정성'이 부여된 시스템을 구축하는 데에 큰 기여를 감당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왜냐하면 'Simplify'를 추구하며 실천한다는 것은 어떠한 관점으로는 오히려 더 세밀하고 정밀한 시스템 구축을 감당할 여력이 존재하느냐에 대한 질문이기도 하기 때문이죠.
고인물의 폐해
상기 본인은 해군 복무 중, 초반에 '백령도'에서 6개월간 근무를 마치고, 정당한 사유로 '인천'에 전입(발령)을 하여 남은 군복무기간을 채우게 되어습니다. 해군의 '백령도'와 '인천' 부대의 큰 차이점은 새로운 병영문화 혁신을 신속히 받아들이는가에 대한 여부입니다. 쉽게 말해, '백령도' 부대는 옛 어른들의 말씀처럼, 옛적 부조리가 가득했던 군대 문화의 잔재가 많이 남아있습니다. 선임(선배)들은 전혀 일을 하지 않고, 어떤 업무든 후임이 도맡아 담당하는 상황이 당연시 여겨졌습니다. 이병시절의 전 백령도에서 아침부터 밤까지 쓰레기통을 들고 뛰어다녔던 경험을 했죠. (뛰지 않다거나 표정이 안좋다거나 하는 이해할 수 없는 사유들 때문에 다양한 방법으로 훈계를 받았습니다.) 무엇이든 좋다 생각되는 것에 있어서 선임들은 사용해도 되는데 후임들은 사용하면 안된다는 등.. 그러한 이해하기 어려운 부조리들로 가득했습니다.
* 위의 백령도 부조리에 대한 예시들은 빙산의 일각이며, 이를 다루기에 너무 많은 양의 불필요한 내용이 요구되므로 자세한 설명은 어느정도 생략하도록 하겠습니다.
백령도는 한국 본토와 조금 먼 섬이라는 지역적 특성 때문에 실질적으로 문제점에 대해서 보고를 해도 웬만하지 않으면 접수도 되지 않았습니다. 때문에 왕고들의 적극적 노력과 희생이 없이는 부패의 잔재가 존재할 수 밖에 없는 문화적 환경을 지니고 있습니다. 이러한 부패한 문화에 이를 갈았던 저는 후임(후배)을 처음 받자마자 '후임은 노예가 아니다'라는 문구를 반복하며 새로운 의식을 심는데에 심혈을 기울입니다. 제 작은 역할의 덕이라고는 말씀드리지 않겠지만, 제가 인천으로 발령을 간 후에 제 후임들이 왕고가 되어 부조리를 조금씩 청산해갔다는 소식을 후임에게 직접, 그리고 기존 간부들에게 접하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상병을 달고 인천에 도착한 저는 그 지역의 새로운 문화에 충격을 겪게 됩니다. 그곳에서는 특별한 개인적 의지 또는 사유 없이는 후임들이 선임들을 따르지 않아도 되는 문화가 봉착되어있었습니다. 저는 감히 구세대 군대와 신세대 군대를 동시에 겪었다고 자부해 말씀드려보고 싶습니다. 이 문화는 백령도와는 정반대되는 문화이며, 그 문화를 개척하는데에 사용되는 방향성과 명분성은 "4차 산업혁명 시대에서의 스스로 개척해가는 병영문화를 만들자"였습니다. 사실, 이러한 시스템은 선임이 되면 될 수록 후임들로 하여금 자신을 따르도록 만들어야 하는 어려움이 존재하지만 그로인해 실로 배울 점은 많았습니다.
가장 낮은 자의 한
인천에 처음 도착하고, 백령도 출신이라는 이름표 때문에 새로운 고충을 겪게 됩니다. 기존의 부대에서 문제점이 있는 수병이 자신의 문제점을 다른 문제점으로 가리기 위해 다른 선임들에게 저를 이간질하고, 증거물은 존재하지 않지만 백령도 출신이라는 꼬리표를 이용해 저를 조용히 묻어갔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다행스럽게도 이간질을 즐겨삼던 그 수병이 후임들과 선임들을 교차해가며 이간질을 진행함으로서 자신의 신뢰성을 다른 수병들에게서 잃게 되고, 자연스레 저에 대한 노고와 신뢰도를 인정받기도 했습니다. 이 또한 새로운 병영문화 혁신을 그릇된 방향으로 자신에게 유리하게 사용하는 한가지 부정적 예시이기도 합니다. 이러한 경험을 겪으며, 저는 '이 곳에서의 새로운 후임자들은 이러한 군대 문화의 변화 과정에서 발생되는 희생자들이 새로이 발생되지 않도록 소통문화를 개척하자'라고 결심하게 됩니다. 그렇게 제가 겪은 가장 낮은자의 한을 되풀이하지 않도록 저희 부서에서는 각자에게 조금이라도 서운한 점이 생기면, 해당자 단둘이 대화를 나누며 즉석에서 풀어가는 문화를 봉착시킵니다.
사실, 저는 유복한 가정환경에서 자라온 배경 때문에, 저보다 실질적으로 사회의 계급이 낮은 사람들을 무의식중에 등한시해온 안타까운 과거가 있었습니다. 예전에 어느 문제가 많은 지역에 주차장이 있어 차를 잠시 주차 또는 정차하려는 데에 어떤 허름한 꼴을 하고 나온 아저씨가 쌍욕을 뱉으며, "xxx 내 집앞이니까 대지마! xxx" 라고 소리질렀을 적에, 무의식 중에 같은 사람으로서 취급을 하지 않았기에 별로 화도 나지 않았던 경험을 했던적이 있었다는 것을 요즘들어 더욱 생각이 납니다.
하지만, 백령도에서 낮은 계급자의 철저한 고통을 뼈저리게 느끼고, 인천에서는 억울한 과정을 통해서 잠시 격리되는 상황을 경험하게 됩니다. 이를 통해 '가끔은 계급의 문제로 고통을 받기도 하고, 가끔은 노력을 불문하고 운에 따라 고통의 과정을 밟는 사람들도 존재할 수 있겠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렇기에 더욱 많은 사람들에게 공정한 리더십의 의지를 공유하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해진 것 같습니다.
정당한 권위 '품위 있는 리더십의 여유'
시간이 지나 병장이 되면서 당시 상병들이 저에게 현재 후임들 사이에 고착화되고 있는 문제점에 대해서 거론하며 직접적인 개선방안을 제시합니다. 감성적인 판단보다 이성적인 판단이 요구된다는 것, 그리고 "어느 누구든지 무엇인가에 대한 전문가다."라는 말을 인지하기에 마음을 가라앉히고 차근히 이야기를 듣습니다.
"최수병님. 최수병님께서 새차를 하시거나, 월 마감을 하실 때에 후임들에겐 적당히 쉬라고 하시면서 혼자 열정적으로 하시면, 후임들 입장에선 티를 잘 안내지만 사실 너무 부담스러워 하는 면이 존재합니다. 가끔은 후임들에게 하는 방법만 알려주십쇼. 후임들도 할줄 알아야 움직이지 않겠습니까? 더 솔직히 말씀드리면 저희도 부담스럽고, 병장까지 달으셨으면 그렇게까지 하실 필요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후임돤리는 이제 저희들이 하겠습니다. 저희들도 애들이 직접 체험해서 배우도록 유도할 겁니다."
"그래 알았다. 지적해줘서 고맙다."
저는 일적으로나 조직 관리차원으로나 솔선수범이라는 관점을 통해 자신의 역할 뿐만 아니라 추가적인 역할을 감당하며 열심히 병영 문화를 혁신하고 있었다고 자부하고 있었지만, 오히려 후임들에게 한수 배웁니다. 먼 기수의 후임들이 느끼는 부담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못했었다는 자신의 관심의 한계점을 인지하게 됩니다. (만약 부담을 느끼지 못하는 후임자가 있따면 그 부분은 엄격히 다룰 필요가 있다고 생각됩니다.)
한편으로는 가까운 후임자들에게 걱정도 되었지만, 그 걱정이라는 단어를 통해 제가 후임자들의 능력을 무의식중에 간과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어 이러한 '간과점'과 '少신뢰'로서는 후임들로 하여금 병사들을 총괄하는 능력을 제한한다는 것을 인지하게 됩니다. 이 대화를 통해 제가 서왔던 글들에 대해 제가 스스로 지켜오지 못하고 있었던 점을 깨닫게 되죠. 그리고 전에 작성했던 '진정한 권위'라는 글의 실질적인 의미에 대해 깨닫게 된 계기가 되었습니다.
역사와 기록으로 즉, 글과 말의 정의로만 배운 '진정한 권위'에서 말하는 최상의 리더십인 '똑똑하고 게으른 리더십'의 진정한 의미는 "내려놓음" 이었습니다. 제가 내려놓음으로서 그 역할을 다음 후임자들이 담당하게 도와주는 것이죠. 물론 문제가 발생되면 그 문제를 뒤에서 해결해줄 능력을 갖추는 것 까지 포함으로 요구합니다. 그 요구점을 충족시키기 위한 첫 번째 관문이 '가장 낮은 자의 한'을 경험하거나 깨닫는 것이기에 어려운 숙제입니다. 그렇게 함으로서 소계급자들의 고충까지 간소화시킬 능력을 갖추는 것이죠. 즉, 낮은 자의 고충과 후임을 향한 믿음 또는 신뢰가 밑받침이 되는 귄위자의 여유가 있어야 조직의 탄성이 강해지는 것 같습니다. 언젠가 그 후임자들이 같은 위치가 되면 똑같은 고뇌를 반복하게 될 것이며, 이것이 새로운 긍정적 인수인계를 창출해낼 것이라 생각됩니다.
있는 그대로의 모습 '수준높은 여유'
어릴적에 제가 마음속으로 생각하는 '진정한 리더'와 실제의 '진정한 리더'는 차이가 있습니다. 리더이기 전에 스스로의 모습에 있어서 감춤과 가식이 없어야 투명한 리더가 되는 것이죠. 저는 무거운 표정으로 위압감을 조성하여 말 한마디를 하더라도 후임자들이나 광중들로 하여금 무게를 느끼게 하여 업무를 진행하게 만드는 그러한 리더가 품위라고 생각했었던 적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오히려 사람들은 뒤에서 '무게만 잡는다'라는 표현을 사용합니다. 당연하겠지만 그런 관경을 바라보며, 오히려 떳떳하고 여유있는 품위가 진정한 리더의 자질이라는 것을 배웁니다.
예전에 제가 존경하던 재벌 3세분께서 평소에 만나시면 장난도 잘 하시고 위트도 있으시지만, 중요한 말을 가볍게 툭 던져도 알게 모르게 느껴지는 무게감을 아직도 잊지 못합니다. 그 분께서는 예전에는 양복을 즐겨 입으셨지만, 요즘에는 그냥 가벼운 차림으로 다녀도 그 중압감 만큼은 여전히 무시할 수 없습니다.
리더의 '품격'과 '무게감'은 어떠한 옷차림을 통해 드러난다든지, 쌓아온 정치 경력을 통해 비춰진다든지 하는 것이 아닌, 평소의 자신이 생각해온 관념이나 의지 또는 철학과 진정성의 깊이에 따라 정해집니다. 방향성에 따라 차이는 있겠지만 이것을 소희 '수준'이라고 일컫습니다.
수준높은 사람들은 겉모습으로 자신을 치장하지 않습니다. 겉모습으로 자신을 치장하려는 자세가 상대방에 대한 예의는 맞지만 그러한 사회적 관습에 자연스레 자신의 심리적 한계를 내려놓는 행위로는 큰 시야에 도달하기 어렵습니다. 이는 리더의 투명성에 치명적인 단점을 초래하기도 하죠. 정말 여유있는 사람들은 자신이 이미 수준이 높다는 것을 인지하기에 스스로를 치장하려기보다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노출해도 된다는 자신감으로 투명성을 유지합니다. 스스로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에 한계점을 느낀다면 자신의 관점을 바꾸는 노력을 하는 것이 자아의 자본이며 동시에 진정한 새신이라 생각합니다. 자신의 부족함을 남들에게서 채워지기를 바라기보단 타인의 장점에서 보고 배우는 자세가 모든 인류의 덕목이자 과제입니다.
"익은 곡식들은 고개를 숙인다."는 말처럼 새로운 경험을 통해 세상의 지식에 대해서 다시한번 감탄하며 고개를 숙이게 되는 오묘한 경험을 하게 됨에 감사합니다.
어느 누군가는 제 글에 대해 다른 견해를 품을 수 있지만, 저는 많은 사람들이 이러한 관점에 있어서 숙연한 자세로 리더란 무엇인가에 대해 한번 쯤 재해석해보는 시간을 가지며 발견한 새로운 관경과 시각들이 많아지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도전하며 이 글을 마칩니다.
읽어주셔서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