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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혜나 Dec 14. 2023

고래는 숨을 쉬러 수면으로 올라오지

글쓰기라는 업


선이 하나 있다. 그 선의 양쪽 끝은 서로 다른 방향을 가리키고 있다. 한쪽은 내면을, 한쪽은 외면을 향한다. 한쪽 끝에만 머물 땐 크게 갈등을 겪지 않는다. 그러나 반대로 가는 것을 선택한 순간, 불편함을 느낀다. 내면에서 외면으로, 외면에서 내면으로의 이동은 언제나 쉽지 않다.


  1년 전 너무 무료한 일상에서 벗어나고자 아르바이트를 시작하려다가 우연히 직장을 들어가게 되었다. 고용된 삶을 산다는 건 생각보다 힘든 일이었다. 직장 생활을 하는 동안 나는 글쓰기를 스리슬쩍 놓아 버렸다. 올해 초, 1년만에 직장에서 나왔다. 그리고 무엇을 해야할지 몰라 불안한 시간을 보냈다.  여기저기 기웃거리며 할 일을 찾고 있었는데 정신을 차리고 보니 어느새 나는 다시 쓰고 있었다.  흩어진 시간 속에 이야기들을 주섬주섬 주워가지고 컴퓨터 앞에 앉아 문장을 한 글자씩, 한 단어씩 천천히 지어내기 시작했다.  다시금 책을 읽고, 글을 쓰며 전남 영암군 학산면의 작은 동네에 작은 서점을 열겠다고 마음먹었다. 소로의 월든과 닮은 나의 작은 서점을 내고 싶었다. 구석에서 혼자 조용히 글을 지어도 방해받지 않을 만큼, 하지만 나를 고립에서는 건져 줄 수 있을 만큼의 적은 손님만 오는 커피가 맛있는 작은 서점.


 두 달쯤 혼자 뚝딱뚝딱 인테리어를 하고 있던 중에 전화가 왔다. 직장을 다닐 때 알게 되었던 가까이에 사는 젊은 농부님이었다. 함께 친환경농업을 지원하는 협동조합을 만들어 보자고 제의를 했다. 한 달쯤 대답을 못하고 망설였다. 전 회사를 다니며 친환경농업이라는 이름을 붙인 허울뿐인 정책들에 크게 실망하기도 했고, 내 작은 서점에 대한 내 작은 꿈을 어떻게 해야 할지 방향을 정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하지만 유기적으로 움직이는 농촌에 대한 그림은 대학 때부터 마음 한쪽에 늘 품어 왔던 소망이었다. 이번엔 고용되지 않은 신분으로 친환경농업에 대한 가치를 좀 더 자유롭게 세상에 나눌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 연고 하나 없는 이 시골 마을에서 지역을 잘 아는 사람 하나를 얻는다는 것은 다시없을 지도 모르는 큰 기회이기도 했다. 농부님을 다시 만나 대화를 나누고 함께 협동조합을 세워 보기로 했다. 다만 서점은 포기하지 않기로 했다. 좀 더 천천히 여유 있게 완성해 가기로 마음을 먹었다. 그렇게 또다시 나는 글쓰기가 아닌 일을 손에 잡게 되었다.

 그리 바쁠 것 없을 거라 생각했던 협동조합은 막상 설립하고 보니 일이 생각보다 많았다. 시간은 한정적이기에 자연스레 서점을 완성하는데 들일 수 있는 시간은 적어졌다. 당연히 컴퓨터 앞에 앉아 글을 지을 시간이 없었다. 브런치에도 블로그에도 새로운 글을 올리지 못하는 날이 계속 이어졌다.

 사실 시간이 없어서 글을 못 썼다는 표현을 쓰는 것이 좀 껄끄럽다. 객관적인 시간만을 보았을 때는 충분히 쓸 수 있어야 했기 때문이다. 중간중간 남는 시간, 알맹이 없이 흘려보내는 시간들을 합하면 일주일에 한편 정도는 충분히 쓰고도 남는 시간이었다. 진짜 문제는 거리와 불편한 마음이었다. 외면에 집중하던 내가 내면의 나를 만나러 가는 그 거리. 그 거리를 걸어가는데 만나게 될 필연적인 불편함. 그러기 위해선 짧은 자투리 시간이 아니라 제법 긴 시간이 통째로 필요했다.


 바쁜 시기가 조금 지난 어제, 나는 내면으로 걸어 들어가기 위해 하루를 꼬박 다 썼다. 소설을 읽고, 영화를 보며 외면으로 온통 시선을 돌렸던 나를 달래서 다시 내면을 들여다볼 수 있게끔 노력했다. 그렇게 하루를 꼬박 보내고 저녁이 되었는데도 나는 여전히 글을 쓸 수 있는 스위치가 켜지지 않은 것 같았다. 괴로운 일이었다.


"아! 닌텐도 팩처럼 샥샥, 바로바로 바꿔 끼울 수 있으면 좋겠다! '띠로링'하고 모드가 바뀌면 참 좋을 텐데."

 침대에 앉아 노트북을 앞에 놓고 머리를 쥐어뜯는 엄마를 보며 아이들은 발치에 서서 킥킥킥 웃었다.

"그럼 쓰지 마. 엄마는 글을 왜 써?"

 중학생인 큰아이가 물었다. 가끔, 아니 자주 아이들은 이렇게 정곡을 찌르는 질문을 한다.

"글쎄. 그러게. 나는 왜 쓰는 걸까?"

 내가 대답했다. 갑자기 생각이 깊은 곳으로 훅 하고 떨어졌다.

"엄마는 글 쓰는 게 재미있어?"

"재미? 음. 아니. 딱히. 재미있을 때도 가끔 있는데 괴로울 때가 더 많지. 지금도 아무 생각 없이 잘 지내다가 글을 쓰려고 하니까 가슴이 막 답답하고 머리가 복잡하고 그렇게 되잖아."

"그럼 글 쓰는 게 좋아?"

"음... 딱히 좋은 지도 잘 모르겠어. 그냥 바깥일만 계속하면 오히려 단순해지고, 우울하지도 않고, 마음도 편해."  

"그럼 대체 왜 쓰는 거야?"

 큰아이가 진짜 이해가 안 간다는 눈빛으로 말했다.

"그러게. 나도 모르겠네. 나는 왜 계속 글쓰기를 붙들고 있는 걸까. 놓지도 못하고 확 붙잡지도 못하고. 미련 같은 걸까."

대답을 하고 보니 갑자기 우울해질 것 같았다.

"그럼 쓰지 마."

 아이는 천진하게 말했다.

"근데 또 안 쓰는 게 안돼.  안 써 봤는데 결국 또다시 쓰고 있잖아. 안 쓰면 뭔가 허전하고 괴로워. 끼니 안 먹고 건너뛰면 허전하고 괴로운 것처럼."

 이때쯤, 나는 거의 울상이 되어 있었다.

"숨어멍. 숨거멍." 시끄러운 내 소리와 아직 켜둔 스탠드 불빛을 피해 옆에서 이불을 뒤집어쓰고 잠을 자던 남편이 이불 속에서 잠꼬대처럼 말을 했다. "뭐라고? 뭐라고 하는 거야?" 내가 말했다. "숨구멍. 숨구멍이라고. 당신 숨구멍." 남편이 이번엔 더 또렷이 말을 했다. "글쓰기가 내 숨구멍이라고? 그러기엔  글이 안 써지면 얼마나 숨이 막히는데." 내가 대답했다. "당신은 주기적으로 숨이 막혀야 살잖아. 새로운 문제를 찾고, 그걸 고민하고, 숨이 막히고, 그러다 정리되면 다시 숨을 쉬고. 그거 없으면 당신은 못 살걸."

 내도록 자는 것 같더니 그간의 대화는 언제 다 들었는지, 아무것도 모르는 것 같더니 내속을 어찌 나보다 더 잘 아는지. 잠꼬대처럼 정답을 말하는 그가 신기하고, 어이 없고, 할 말은 더 없어서 입을 다물었다. 발치에 계속 서 있던 큰아이랑 눈이 마주쳤다. 녀석은 씩 웃더니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제 방으로 가버렸다.

 

스탠드 불을 끄고 스르륵 이불 속으로 들어갔다. 눈을 감으니 고래 한 마리가 머릿속에 떠올랐다. 폐호흡을 하는 고래는 아가미도 없으면서 왜 바다에서 사는 건지. 고래도 이유를 모르겠지. 이유를 몰라도 고래는 깊은 바닷속을 힘차게 유영하고 수면에 올라와 숨을 쉬는 일을 날마다 계속할 것이다. 어린 고래일수록  아래에서 위로 올라오기까지 시간이 걸리고 힘이 들겠지. 때론 생각보다 너무 깊이 내려와서 숨이 막힐지도 모른다. 그러나 힘이 든다고 이 일을 포기하는 아기고래는 없을 것이다. 자라갈수록 그 일을 즐기게 되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들자 슬며시 미소가 지어졌다.  때론 숨을 길게 참기도 하고 수면에 좀 더 머무르기도 하겠지만 고래는 결국 자기만의 리듬을 찾아갈 것이다. 그때가 되면 내려갔다 올라오는 일 정도는 고래에게 아무것도 아닌 일이 될지도 모른다.  

 스르륵 잠이 들면서 정신이 아득해지는 찰나, 수면 위로 드러나 '푸!' 하고 숨을 내쉬는 고래의 분수공이 머릿속을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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