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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혜나 Mar 01. 2024

간지 나는 엄마

엄마와 자식의 알 수 없는 사랑 이야기

'띵동'

 빈티지 사이트 세일 문자가 왔다. 이번에는 MD초이스 까지도 세일을 한다고 한다. 빈티지를 좋아하는 내게 일 년에 몇 번 없는 희소식이다. 서둘러 사이트에 들어가서 옷을 골라 담는다.

"나도. 나도."

 엄마의 빈티지 사랑을 아는 첫째는 곁에 붙어서 자기 옷도 고른다. 무려 90프로 세일. 두 사람 옷을 잔뜩 담아도 10만 원 남짓이다.

 큰 보따리택배가 왔다. 열댓 개의 옷이 담겨 있으니 그럴만하다. 택배를 뜯어보면 내 옷과 딸아이의 옷이 금방 구분이 된다. 내 옷은 주로 색감이 많아 알록달록하고, 딸아이의 옷은 무채색 계열이 대부분이다.

 녀석은 나의 컬러풀한 양말을 보고 말한다. 

 딸: "어떻게 그런 양말을 신어?"

 나: "왜? 이상해?"

 딸: "아니. 엄마한테 잘 어울려. 근데 난 못 신겠어."

 나: "엄만 입은 옷의 일부분이라도 색감이 있는 게 좋아."

 딸: "음. 그래. 엄마는... 음... 간지가 나지."

  풉. 간지라니. 들어본 지 15년은 되었을법한 단어를 딸 입에서 들으니 묘한 기분이었다. '녀석이 이렇게 큰 건가.' 싶기도 하고, '세월이 가도 그 나이 아이들이 쓰는 단어는 크게 변하지 않는구나.'싶기도 했다.

  그 뒤로 종종 딸의 말이 떠오르면 기분이 좋았다. 딸한테 '간지 나는 사람'이라는 평을 듣는 엄마가 세상에 얼마나 있을까? '엄마는 훌륭해.'라는 말보다 좋게 느껴졌다. '간지'와 '엄마'가 만나다니. 얼마나 간지 나는 조합인가!

 둘째 딸은 요즘 사춘기가 시작되었다. 엄마가 간지 난다고 하기 전까지 2년 정도의 사춘기를 보낸 첫째 덕분에 둘째의 사춘기는 그럭저럭 안 보이는 척 넘어가고 있기는 하지만 여전히 어렵긴 매 한 가지다. 둘째 딸은 방학이 되자 하루종일 침대에 누워 일어날 생각을 하지 않는다. 정오가 다 되어서야 겨우 일어나 점심을 먹고 다시 누워서 하루종일 핸드폰을 붙들고 누워만 있다. 계속 지켜만 보다가 어젯밤엔 거실로 불러 내어 이야기를 했다. "요즘 뭐 힘든 일 있어? 어디 아픈 건 아니지?" 몇 마디 못해서 아이는 눈물을 뚝뚝 흘린다. 뭐가 그리 서러웠는지 한참을 말없이 훌쩍이기만 한다. 뭐라고 위로의 말을 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저 계속해서 '괜찮다. 잘하고 있다. 너는 최고다. 엄마는 네가 너무 자랑스럽다.'이런 말들을 반복했던 것 같다. 아이가 왜 그러는지 정확히 알지 못하기 때문에 딱 맞는 위로의 말도 건넬 수가 없었다. 아이도 사실 자기가 왜 그런지 알지 못할 것이기에 굳이 캐묻지 않았다.

 "우리 시간 날 때마다 데이트 가자. 둘이서만."

 그러자 녀석은 눈물을 뚝뚝 흘리다가 좋다고 배시시 웃었다. 셋 중 누구든 안 그렇겠냐만, 둘째라 미안한 부분이 많이 있다. 첫째는 원하는 걸 바로바로 말하니 원하는 걸 들어주다 보면 둘이 다닐 일이 많았고, 막내는 아직 어려 옆에 끼고 데리고 다녀야 하는 때가 많았다. 둘째는 요구사항이 적고, 하고 싶은 것도 많지 않아서 단 둘이 함께 할 시간이 거의 없었다. 사진첩에도 첫째와 막내와 찍은 사진이 가장 많았다. 그게 늘 마음 한편에 미안했었다. 엄마의 말에 아이가 배시시 웃어 주어서 얼마나 고마웠는지.

 녀석을 도닥여 침대에 눕히고 눈을 감는 것을 보고 방으로 돌아왔다. 세면을 하고 자려고 침대에 누웠는데 남편이 뒤에서 어깨를 도닥이며 말했다.

  "고생했어."

  그 한마디에 눈물이 터졌다.

 "힘들다 정말. 건강한 사랑을 매일 줘야 하는 거, 나는 받아 본 적이 없는데... 그걸 줘야 하니까. 애써서 만들어서 주는데 그게 모자란 게 보일 때마다 너무 마음이 아파.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모르겠어."

 아이들은 자랄수록 불만이 많이 생긴다. 어릴 땐 누가 뭐라 해도 엄마는 자기들 세상의 전부였는데, 다른 세상을 알아갈수록 엄마에게 마음에 안 드는 게 많은 모양이다. 셋의 마음을 골고루 살피려고 매일 노력하는데 아이들은 항상 어딘가에 구멍이 난다. 구멍이 난 걸 알아차릴 때마다 마음이 아프다. 그럴 땐 '난 좀 많이 모자란 엄마'라는 자괴감이 잠시 마음을 스치기도 한다.

 "뭘 어째. 그냥 하는 거지.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 하고, 모자란 건 모자란 데로 그냥 둬야지. 그래야 애들도 스스로 배울 기회가 생기지."

 잠시 소리 내서 울다가 뚝 그치며 스스로에게 소리 내어 말했다.

 종종 이렇게 속상할 때가 있지만 어차피 내가 다 해 줄 수 없다는 것을 잘 안다. 모자란 것 없이 사랑을 듬뿍 받고 자란 것 같은 어른들도 부모에 대한 그 나름의 원망이 다 있는 걸 보았다. (너무 사랑을 받아서 모진 세상을 전혀 겪지 못하게 한 부모를 원망하기도 하더라.)

 이러나저러나 완전한 사랑을 주는 일은 결국 실패할 것이다. 그렇게 결론 내린 지 좀 되었다. 눈물은 가끔, 아이들의 마음에 구멍을 최대한 메워주려 노력하다 보면 진이 빠지고, 지난날이 서글퍼서 잠깐 나는 것뿐이다. 결국 나는 나로서, 너는 너로서 잘 살아 내는 것 -자기 인생을 탄탄하게 세워가며 서로가 서로에게 기댈 어깨를 내어주는 것- 그게 우리가 같이 걸어가야 하는 방향이니까. 얼마나 간지 나는 육아 철학인가. 스스로가 대견해 머리를 한번 쓰다듬었다. 그리고 자버렸다. 한판 울고 났더니 더 깊이 잠이 들었다.


 다음날 일어나 외출준비를 하며 오늘은 어떤 아이템으로 포인트를 줘야 할까 고민한다.

 '화려한 프린팅의 상의? 스카프? 양말? 그래 오늘은 토끼와 곰돌이가 그려진 무지개빛깔 상의다!'


 첫째는 오늘도 간지 나는 엄마가 입은 옷을 위, 아래로 훑어보곤 난해하다는 듯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그러면서 입꼬리는 씩 올라간다.

 스스로가 좋은 엄마인지 아닌지 어떻게 판단할 수 있을까. 그저 오늘 너의 입꼬리에 살짝 걸린 그 웃음이 너와 나를 모두 건강하게 지켜주기를 바랄 뿐이다. 삶은 계속되고, 육아도 계속되고, 내 간지도 계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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