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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혜나 Feb 07. 2024

단추언니라고?

“손님, 어떡하죠. 너무 죄송합니다. 오늘 저녁 예약이 더블로 되었어요. 손님께서 나중에 예약하셔서 저희가 부득이하게 환불을 진행해야 할 것 같아요. 저희 실수니까 위약금도 지급할게요. 다시 한번 너무 죄송합니다.”


 그날 밤, 며칠 전 힘들게 예약했던 숙소에 도착해서 방이 없다는 말을 들었다. 화가 났지만 위약금까지 얹어주며 난처해하는 사장님에게 더 이상 화를 낼 수가 없었다. 여름휴가철이라 당일에 양양에서 방을 구하는 건 불가능해 보였다. 저녁을 먹으며 반주를 조금 마셔서 당장 집으로 돌아가기도 어려운 일이었다. 차에서 몇 시간쯤 자고 집으로 돌아가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을 때 희진이 조금 떨어진 곳에서 어딘가로 전화를 걸었다.

“언니 방 구했어. 가자. 여기서 조금만 걸어가면 돼.”

몇 분 뒤 전화를 마친 희진이 차로 돌아와 말했다. 희진의 미소 속에 약간의 난처함이 묻어있는 게 보였다. 

“언니 사실 지금 가려는 숙소가 전 남친이 운영하는 게스트하우스야.”

희진이 예쁜 머릿결을 손가락으로 비비 꼬며 말했다. 

“혹시나 해서 물어봤더니 손님방은 없는데 스텝 방 하나 비워 줄 수 있다고 오라고 그러네.”

다른 곳에 시선을 둔 희진의 눈동자가 약간 흔들리고 있는 것 같았다. 

“아. 그래? 거기 가도 너 괜찮은 거야?”

어둠 속에서 희진의 눈빛을 다시 한번 살피며 물었다. 

“응. 괜찮아. 우리 엄청 쿨하게 헤어져서 지금도 가끔 연락하고 지내.”

희진은 여전히 알 수 없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지금 상황이 어쩔 수 없긴 한데…. 너 진짜 괜찮은 거야?”

다시 한번 더 들여다보아도 희진의 눈동자가 무얼 말하는지 알기 힘들었다. 

“응. 괜찮아. 언니 걱정하지 마. 오랜만에 여행하러 왔는데 이렇게 돌아갈 수는 없잖아.”

희진은 한번 활짝 웃고는 백팩을 메고 씩씩하게 앞서서 걸어갔고 별다른 대안이 없던 나는 희진을 뒤따랐다. 


백팩을 메고 조금 걸으니 바닷가에 제법 큰 게스트하우스가 보였다. 게스트하우스에선 파티하는지 시끄러운 음악 소리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오랜만이다.”

 쪽, 쪽. 희진의 전 남자친구이자 호스트는 희진을 보자마자 볼에 입을 맞추고 그녀를 꼭 끌어안았다. 희진은 그의 인사를 받아주면서도 민망한 듯 날 보며 윙크했다. 

“안녕하세요. 에릭입니다. 엠마가 처음 친구를 데려와서 어떤 분이신지 궁금했어요.”

 혼혈인 듯 보이는 그는 매력 있는 웃음을 지으며 내게 악수를 청했다.

 방에 짐을 내려놓으며 희진은 둘 사이를 조금 더 설명해 주었다. 엠마는 희진의 프랑스 이름이었다. 희진은 교환학생으로 파리에 갔었고, 에릭은 그곳에 자리를 잡고 살고 있었다. 둘은 펍에서 우연히 만나 첫눈에 반해 사랑에 빠졌다. 둘이 얼마나 뜨거운 사랑을 했을지는 설명하지 않아도 알 것 같았다. 여느 연인들이 헤어지는 이유로 둘은 이별했고, 그 후로는 친구로 남아 이렇게 가끔 만나는 사이가 되었다고 했다. 과거를 설명하는 희진의 표정이 왠지 난처해 보여서 목이 마르니 시원한 맥주나 한잔 마시러 가자고 일부러 말을 돌렸다. 

 1층에 있는 펍에는 세계 각국의 사람들이 모여 파티를 벌이고 있었다. 쉬지 않고 흘러나오는 시끄러운 음악 소리 속에서 다들 신나게 춤을 추고 큰 소리로 대화를 나누었다. 잠시 화장실에 다녀왔을 때, 희진은 자연스레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있었다. 불어도 영어도 자유롭게 하며 분위기를 주도해 가는 그녀의 모습은 많은 사람 속에서 빛나고 있었다. 그런 그녀 곁으로 다시 다가갈 용기가 없어서 한쪽 구석에서 맥주만 홀짝이다 이내 방으로 들어왔다.     


[언니 먼저 잘게]

잘 준비를 마치고 침대에 누워 희진에게 카톡을 남겼다.

'까톡'

옆 침대에 던져진 희진의 스마트폰이 울렸다. 

단추언니. 

희진의 핸드폰이 울릴 때 화면에 뜬 내 이름이었다. 

‘하. 이게 뭐야? 단추언니?’

순간 내 눈이 의심스러워 희진에게 카톡을 하나 더 보냈다. 그녀의 핸드폰에 다시 떠오른 내 이름은 '단추언니'가 확실했다. 

‘나 참. 이희진. 이게 미쳤나? 정말 어이가 없네.’

단춧구멍. 어릴 적부터 들어오던 내 별명이다. 어떤 아이들은 동그란 얼굴에 뚫린 콧구멍 두 개가 꼭 단춧구멍 같다고 했고, 또 다른 아이들은 내 작은 눈이 단춧구멍 같다고 했다. 항상 외모에 대한 콤플렉스 때문에 사람들과 잘 어울리지 못했다. 다들 뒤로 돌아서면 내 외모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을 것만 같았다. 나만의 아름다운 가게를 차려서 보란 듯이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었다. 그 뒤로 자본금을 마련하려 열심히 일하고 준비했다. 대학을 졸업한 후 하나의 목표를 위해 열심히 달려와서 마침내 나만의 가게를 차렸다. 나는 지금 아름다운 가게 안에서 나만의 삶을 뿌듯하게 살아내고 있었다. 

‘그런데 단.추.언.니.라고? 니가? 감히? 나한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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