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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혜나 Feb 14. 2024

독이 든 케이크

너를 죽이려던 나의 손에 들린 너

그 밤을 어떻게 지새웠는지 또렷이 기억난다. 처음엔 부들부들 떨다, 점차 차분해지고 차가워졌다. 인기척이 들리자 자리에 누워 자는 척을 했다. 희진은 술에 잔뜩 취해서 들어와 그대로 뻗어서 잠이 들었다. 누워있는 희진을 아침까지 계속 들여다보았다.

‘눈, 코, 입이 어떻게 하면 이렇게 예쁠까? 긴 생머리도, 큰 키도. 적당한 가슴이랑 엉덩이도. 얘는 왜 이렇게 다 가진 채로 태어났을까?’

그녀를 쳐다보고 있자니 처음엔 부러운 마음이 속에서 거칠게 일렁였다. 그러다 아침이 밝아 올 때쯤엔 생각이 달라졌다.

‘넌 못생겨 본 적이 한 번도 없지. 그러니 누가 밤새 자기를 내려다보며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그 사람이 앞으로 무슨 짓을 할지 전혀 알 수 없겠지.’

아침에 일어나 그녀와 해장국 한 그릇을 맛있게 먹고 아무 일도 없는 듯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다음날부터 나는 그녀만을 위한 초콜릿케이크를 따로 만들기 시작했다.     


그라목손. 찻숟가락 반도 안 되는 양만 먹어도 치사량으로 충분하다. 무색무취 무미. 먹고 나서 당장은 아무 문제가 없다가 서서히 증상이 나타나기 시작해서 열흘 내에 극도로 고통스럽게 죽게 된다는 흔하게 구할 수 있는 제초제. 진한 초콜릿케이크에 섞어도 아무런 티도 나지 않았다. 그녀가 올 것 같은 날 아침이면 초콜릿케이크 한 조각을 따로 만들었다가 저녁이면 쓰레기통에 처박아 버리기를 몇 번이고 계속 반복했다.

며칠 후, 희진은 또다시 지친 기색이 역력한 얼굴을 하고 가게를 찾아왔다. 이젠 주문도 하지 않고 창밖이 내다보이는 자리에 가서 멍한 눈으로 앉아 있었다. 난 그녀를 위해 만들어둔 초콜릿케이크를 말없이 내려다보았다. 잠시 그렇게 서 있다가 여느 손님에게 파는 초콜릿케이크 한 조각을 접시에 담에 아메리카노와 함께 희진에게 가져다주었다. 언제나처럼 초콜릿케이크의 달달함에 빠져 순식간에 한 접시를 비워버린 희진은 다시 초점이 돌아온 눈으로 날 보며 싱긋 웃었다.

“언니, 카카오는 원래 쓴 음식인데 누가 달달함을 더할 생각을 했을까? 이 씁쓸함은 달달함 뒤에 너무 교묘하게 잘 숨어 있는 것 같아.”

아무 대답 없이 초콜릿케이크가 넘어가는 희진의 목을 바라보았다.

“그런데 오늘 언니 왜 이렇게 말이 없어?”

희진이 물었다.

“아. 아니야. 그냥 좀 피곤해서 그러지 뭐.”

그녀의 눈을 피하며 내가 대답했다.

‘희진아. 인제 그만 와. 예쁘게 오래오래 살고 싶으면 이제 오지 마.’

달달함에 흠뻑 빠져 웃고 있는 희진을 보며 마음속으로 이야기했다. 그 예쁜 웃음을 다시 보니 다음번엔 내가 어떤 케이크를 건네게 될지 나도 알 수가 없었다.      


희진이 꽤 오랫동안 가게에 오지 않았다. 벌써 한두 번은 와서 초콜릿케이크를 먹고 갔을 텐데 무슨 일이 있는지 연락도 없었다. 차라리 잘된 일이라고 생각하고 그녀를 잊으려 했다.

“최진희 씨 맞으시죠? 강북경찰서에서 나왔습니다.”

어느 날, 갑자기 형사 두 분이 가게를 찾아왔다.

“네. 저 맞는데 무슨 일이시죠?”

“이희진 씨 아시죠?”

희진의 이름을 듣는 순간, 갑자기 목덜미가 서늘해졌다.  

“네. 알아요.”

애써 태연한 척을 하며 대답했다.

“이희진 씨가 얼마 전 양양에서 사망했습니다.”

심장이 갑자기 바닥에 떨어지는 느낌이었다.

“뭐라고요? 누가요? 왜요?”

방금 들은 말이 제대로 이해가 되지 않아서 형사들에게 재차 물었다.

“이희진 씨 유품에서 최진희 씨에 대한 정보들이 나와서 조사차 나왔습니다. 저희랑 같이 가서 조사에 협조 좀 부탁드립니다.”     

형사들을 따라 경찰서로 향했다. 그곳에서 사건의 정황을 듣고 보니 가게에 오지 않던 시간 동안  희진은 양양에 있었던 모양이었다. 저번에 함께 갔던 게스트하우스에서는 자주 마약 파티를 했고, 파리에서 만났다는 에릭은 사실 마약 밀반입자였다. 희진이 죽던 날, 그녀는 독한 술을 잔뜩 마셨고, 약을 했고, 다음 날 아침 다시 일어나지 못했던 것이다.

경찰 조사를 받으며 희진에 대한 새로운 사실을 많이 알게 되었다. 그녀에게는 가족이 아무도 없었다. 보육원에서 쭉 자라다가 열세 살이 되어서야 프랑스로 입양을 갔는데 그 후로 어떤 삶을 살았는지 아무도 알지 못했다. 5년 전 한국으로 돌아온 희진은 프랑스 부모님 인연이 끊어진 지 오래였다. 함께 마약을 했던 매력적인 전 남자친구 에릭은 구속되었고, 희진의 시신을 수습할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래서 경찰들이 내게까지 찾아오게 된 것이었다.

형사들은 나를 병원의 영안실로 데려갔다. 영화에서나 보던 흰색 천을 덮은 육체가 그곳에 있었다. 천의 얼굴 부분을 들추자 창백하다 못해 싸늘한 희진의 얼굴이 보였다. 믿을 수가 없어서 눈물도 나지 않았다.

“이분이 이희진 씨 맞습니까?” 형사가 물었다.

“네. 맞아요.” 두 손으로 입을 틀어막고 간신히 대답했다.

시신이 희진이 맞다는 사실을 확인하자 얼마 지나지 않아 그녀의 육체는 곧장 화장장으로 향했다. 화장장의 불꽃은 엄청난 열기로 그녀의 이름다웠던 육체를 말끔히 태워 버렸다. 대기실에는 오로지 나만 혼자 앉아 그 광경을 지켜보았다. 타오르는 불꽃 앞에 서서 나는 울어야 하는 것인지, 웃어야 하는 것인지 마음을 정할 수가 없어 멍하니 앉아만 있었다

“고인의 유골을 가져가시겠어요?” 형사가 물었다.

“네? 아... 네.” 잠시 망설이다가 그러겠다고 대답했다.

약간의 시간이 흐른 후, 그녀의 뼛가루가 담긴 나무 상자가 내게 넘겨졌다. 가루만 남은 희진의 육체는 자신을 독살하려 제초제가 든 초콜릿케이크를 만들던 이의 손에 들려 마지막을 맞이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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