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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애하는 나의 우울에게

by 주혜나

얼마 전 백세희 작가의 부고 기사를 보았다.

사망 원인에 대해 명확히 밝히지 않는 기사를 보며, 마음 한편이 무겁게 내려앉았다. 아직 싱그럽게 웃고 있는 사진 속 젊음이 안타까웠다.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라는 책을 통해 우울과 공존하는 삶을 솔직히 보여주었던 그인데 결국 세상과 이별했다니. 오랜 시간 우울과 동거하며 살아온 사람 중 하나로써, 마음이 착잡했다.
그의 떠남을 애도하며, 나의 이야기를 잠깐 써보려고 한다.


정신건강의학과를 처음 찾았던 그날은 아직도 생생히 기억난다.

병원에 가기 며칠 전부터 심장이 쪼여오고, 가슴 안쪽에 울음이 고여 있는 듯 한 느낌이 들었다. 오랜 경험으로 알 수 있었다. 우울, 네가 또 나를 찾는구나.

아침에 간신히 일어나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고, 미친 듯이 끌어당기는 침대의 자력을 가까스로 벗어나 모자만 눌러쓰고 운전대를 잡았다. 이대로 세상이 끝나버렸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스멀스멀 올라오기에, 아무것도 먹고 싶지 않은 게 당연했다. 손은 떨렸고, 몸은 세상 습기를 다 빨아들인 양 축축 쳐졌다.

처음 '외롭다'라고 느낀 때가 여섯 살, '살고 싶지 않다'라고 느낀 때가 아홉 살이었다. 삼십 년이 넘는 동거의 시간 동안 나는 우울과 투쟁하고, 치열하게 싸웠다. 그리고 매번 기어이 우울을 힘으로 제압하고, 꾹꾹 구겨 가슴속 깊은 곳, 사도세자가 감금된 뒤주만큼이나 삭막할 그곳에 매정하게 쳐 박고 문을 닫아 버렸다. 내 삶의 역사는 우울과 싸워 이긴 승전의 역사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런데 그날은 이상하게 좀 달랐다.

우울, 매번 나타날 때마다 나에게 검은 날개를 한껏 부풀린 채 잡아먹을 듯 덤비는 그 존재가 처음으로 무섭지 않게 느껴졌다. 그동안 단 한 번도 우울을 제대로 쳐다본 적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습관처럼 싸움을 위해 바짝 추켜올리던 가드를 조금 낮추었다. 그렇게 멈춰서 시커먼 나의 우울을 가만히 쳐다보았다. 그것은 작고 초라한 몸뚱이를 벌벌 떨며 다 찢어진 검은 날개를 한껏 펼치고 내 앞에 서 있었다. 처음으로 나의 우울이 측은하게 느껴졌다. 이토록 별 것 아니었단 말인가.

그 순간, 나는 저 측은한 것이 진짜 내가 아니라 이걸 지켜보고 있는 그 존재가 진짜 나라는 것을 깨달았다. 우울과 내가 떨어져 보이다니, 내가 우울한 게 아니라 저 친구가 우울한 것이었다니. 오랜 시간 엉켜있던 머릿속 실타래의 한쪽 끝을 찾은 느낌이었다.

가까운 정신과 중에 평이 좋은 곳을 찾아 차를 몰았다. 불안에 반응하며 떨고 있는 내 심장을 토닥토닥 달래며 나의 가여운 우울에게 이름을 붙여 주었다.

'미친이'

그리고 처음으로 우울에게 인사를 건넸다.

'안녕, 미친아. 뭐가 그리 두렵고 불안한지 잘 모르겠지만, 우리 한번 같이 알아가 보자꾸나.'

그날 나는 의사 앞에 앉아 이렇게 말했다.
“사실 저는 멀쩡한 것 같아요. 그런데 제 안에 우울한 한 녀석이 있어요. 이 친구가 가끔씩 너무 두려워하며 내 온몸을 불안하게 만드는데 그럴 때,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모르겠어요. 가장 문제는 이 친구가 그럴 때면 저는 사회생활을 할 수 없다는 것에요. 어제까지 같이 만나 협업을 하던 사람을 도저히 만날 수가 없어요. 정상적인 모습으로 앉아서 대화할 수가 없으니까요. 아무에게도 연락할 수 없고, 아무 연락도 받을 수가 없어서 곤란해요.”
물론 내가 뱉은 워딩은 조금 달랐겠지만 메시지는 그러했다. 몇 가지 질문을 주고받은 후, 의사는 내게 ‘주기적 양극성 기분장애’ 판정을 내렸다. 그리고 일주일치 약을 받아 병원을 나왔다.

약을 먹으면서 태어나서 처음 겪는 상태를 느꼈다. 슬프지도 기쁘지도 않은 상태. '평온'이라는 게 이런 건가 싶었다. 나는 평생 조금 슬프거나, 조금 기쁘거나, 아주 슬프거나, 아주 기쁜 감정들의 사이를 왔다 갔다 해 왔다는 걸 깨달았다. 기쁘지도 슬프지도 않은 장면은 적어도 내 기억 속엔 한 부분도 남아 있지 않았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렇게 기쁘지도 슬프지도 않은 감정을 갖고 일상을 살아가는 것인지 궁금했지만 뾰족한 답변은 듣지 못했다. 다음 상담을 가서 의사에게 그런 말을 하자 그건 내 착각이라고 단정 지어버렸기 때문이다.

착각 또는 평온, 어쨌든 그런 상태가 되니 내게 또 다른 문제가 생겨났다. 바로 글을 한 문장도 쓸 수 없었던 것이다. 슬픔, 기쁨이 사라지면서 하고 싶은 이야기도 사라졌다. 마음이 고요하기 그지없었는데, 그 고요함 속엔 아무 불꽃도 없었다. 섬 하나 보이지 않는 잔잔한 바다 위를 둥둥 떠다니는 뱃사람의 권태로움이 느껴지는 것만 같았다. 평생 각종 감정을 다채롭게 느끼면 살던, '기분장애자'에게는 그것도 만만치 않게 괴로운 일이었다.

덕분에 나는 알게 되었다. 미친이가 내게 가져다준 것이 불안과 고통만은 아니라는 사실을. 미친이는 사실 나를 지금의 나답게 만들어준 나의 오랜 친구이기도 했던 것이다.

미친이가 두려움에 떨 때면 내 신체와 마음은 괴로웠다. 하지만 덕분에 나의 내면의 상처들을 외면하지 않고 끝없이 직면하며 세상과 인생에 대해 고민을 거듭해야 했다. 세상은 왜 존재하며, 나는 대체 누구이며, 마음과 생각이란 것의 실체는 무엇인지. 그리고 삶이라는 것을 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신은 대체 무엇을 원하는지. 미친이가 내게 일으키는 불안들을 해결하려면 이 질문들에 대한 답을 찾아야만 했다. 모건 스캇펙, 빅터 프랭클, 마이클 싱어, 낸시 애러니, 김주환 등등등. 먼저 그 길을 걸어간 스승들을 찾아 듣고, 읽고, 쓰며 배웠다. 미친이와 내가 분리되어 보였던 처음 그 순간도 그들의 가르침 덕분이었다.

어디 그뿐이랴. 지금의 내가 이십 대의 나보다 한결 좁고 구부정한 어깨를 갖게 된 것, 한참은 낮아진 콧대로 숨을 쉬게 된 것도 미친이 덕분이었다. 폼 나는 일만 하고 싶어 싱크대 앞엔 서지도 않던 애송이가, 개수구에 모인 음식물 쓰레기를 맨손으로 싹싹 긁어 버릴 줄 아는 장년이 된 것은 미친이 가 알려준 가난한 마음에 대한 존경심 때문이었다. 어둠 속에서 이불을 뒤집어쓰고 혼자 우는 사람이 되지 않았더라면, 환하게 웃는 웃음 뒤에 시커먼 구멍을 가져보지 않았더라면, 목구멍이 막혀 전화를 받을 수 없는 슬픔을 겪어보지 않았더라면 어떻게든 살아내려 삶의 가는 끈이라도 단단히 부여잡는 사람들의 위대함을 감히 알지 못했을 것이다.


친애하는 나의 우울, 미친아.

나는 더 이상 너와 싸우지 않는다. 이젠 너를 품에 끌어안고 살아가는 법을 배우고 있다.

너는 이제 나를 잠식하지 않는다. 너의 존재가 점점 희미해지고 있어 감사하지만, 아직도 배울 것이 너무나 많은 나는 부디 네가 내게서 완전히 사라지지 않기를 바란다.

너에게 배운 이 가슴으로 언젠가는 또 다른 누군가를 살게 할 수 있기를, 오늘도 나는 간절히 고대한다.


자신만의 미친이와 함께 살아가는 모든 이들에게,

당신의 인생은 특별한 친구가 주어진 선택받은 인생이라고,

덕분에 남들보다 더 깊은 인생의 맛을 볼 수 있는 거라고.

조용한 응원을 보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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